에덴의 동쪽 -하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26
존 스타인벡 지음, 이성호 옮김 / 범우사 / 199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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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무지하게 재밌게 읽었다는 이야기를 먼저 하고싶다.(나는 에덴의동쪽 영화를 본적이 없다.)

이 소설은 아주 독특한 인물설정을 취하고 복잡한 이해관계를 만들고 있다.

이복형제 찰스와 아담은 서로 완전히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자라났다. 형 아담은 소심하고 힘없고 언제나 동생에게 지며 동생을 다이아몬드를 좋아하듯 묘한 감정으로 좋아했지만 동시에 그를 매우 두려워했고,(작가는 이렇게 작품 내내 복잡한 심리를 표현해냈다.) 동생 찰스는 강하고 언제나 형을 이겼기에 형을 보호하는 마음과 동시에 경멸 비슷한 감정도 가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둘이 게임을 하다 처음으로 아담이 이기는 일이 발생하자, 찰스는 노기띤 얼굴로 그를 마구 두드려 패고 만다.

그후 아담이 한번 더 얻어맞은 일이 있는데, 그것은 아버지가 아담만 데리고 산책을 나가 군대 얘기를 하고 돌아온 후이다. 찰스는 무슨 얘기를 했냐고 꼬치꼬치 캐물은 후에 격노해서 아버지의 생일 선물 이야기를 한다. 자기는 큰 돈들 들여 아버지께 칼을 사 드렸는데 아버지는 단 한번도 그 칼을 쓰신 적이 없다고, 그런데 형이 공짜로 주워온 잡종개만큼은 항상 곁에 두고 계시다며 찰스는 아담을 죽어라고 때린다.

여기서 찰스와 아담은 각각 카인과 아벨을 대변하는 인간상이다.(내 주관적 해석이 아니라 소설 내에도 직접적으로 카인과 아벨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카인은 악, 아벨은 선을 나타내지만 작가는 사실 그 어느 편도 들고 있지 않다.

"좋다, 말해주지. 아니, 사랑하지 않았다. 어떤 때에는 겁을 먹었고, 어떤 때에는- 그렇지, 어떤 때에는 나는 아버지를 존경했다. 자, 이제 왜 알고 싶었는지 나에게 말해라."

찰스는 그의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어." 그가 말했다.

"내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어. 아버지는 이 세상의 누구보다도 형을 사랑했어."

"나는 그걸 믿을 수가 없어."

"형은 믿을 필요가 없어. 아버지는 형이 갖다 드린 것이면 무엇이고 좋아하셨어. 반대로 나는 미워하셨지. 내가 드린 것은 무엇이고 싫어하셨어. 내가 드린 주머니칼만 해도 그래. 난 나무 한 짐을 해서 팔아가지고 그 칼을 샀었어. 그런데도 아버지는 그것을 워싱턴에 가지고 가지 않았어. 그것은 지금도 아버지의 서랍 속에 있어. 그런데 형은 강아지를 드렸지. 비용도 들이지 않았었지. 그 강아지 사진을 보여주지. 장례식에 찍은거야. 한 대령이 그놈을 안고 있었어. 강아지는 보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했어. 장례식이 끝난 뒤 쏘아 죽였지."

동생의 어조가 격렬하여 아담은 어리둥절해졌다. "나는 모르겠다." 아담이 말했다. "네가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나는 모르겠다."

"나는 아버지를 사랑했어요." 찰스가 말했다. 아담이 기억하기로는 처음으로 찰스는 울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담의 두 아들 아론과 카알조차도 각각 아벨과 카인의 인간형이 된다. 아론은 언제나 만인에게 사랑받고, 카알은 그 사랑을 자기도 받고싶어 아론을 질투하는 인간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거기서 끝이 아니다. 아론과 카알은 아담와 찰스와 많은 면에서 비슷하지만 절대로 같지가 않다. 작가는 이런 점에서 카알을 부각시키고 있다. 아담과 찰스에서는 아담의 얘기를 주로 하던 작가가, 이번에는 카알의 얘기를 주로 한다.

카알은 자신이 시기한다는 것과, 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을 고치고 자기도 형과 같은 착한 사람이 되려고 계속 <노력한다.>

그 노력이 자꾸 물거품이 되고 또 그의 잔인성이 고개를 들지만, 그는 계속 고뇌하고 반성하며 자신의 길을 찾아가려고 <애쓴다.>

소설 중 이런 대화 내용이 있다. 창세기 4장 7절에는 '카인은 죄를 다스릴지니라'라는 구절이 있다고 한다. '죄를 다스려라' 혹은 '죄를 다스릴지니라'라고 번역이 되는데, 사실은 이것이 이런 명령, 운명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고, 히브리어로 본래 '그대는 죄를 다스릴 수도 있다'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다스려라', '다스릴지니라', '다스릴 수도 있다' 세 가지 말은 별 차이가 없는 듯 하지만, 이 마지막 '다스릴 수도 있다'는 것은 인간이 명령이나 운명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선택'으로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따라서 인간이 신보다 앞설 수 있다는 엄청난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작가가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바로 카알의 '선택'인 것이다. 카알은 결코 선량하지는 않다. 그러나 그는 선과 악을 동시에 가지고 끊임없이 번뇌하고 반성하며 본인의 악을 없애보려고 애쓴다. 이것이 그가 카인이나 찰스와는 다른 점이고, 작가가 표현하고픈 인간애이다.

소설 마지막에서 아담이 용서를 비는 카알에게 하는 마지막 말은 이것이다. "팀쉘:그의 뜻에 따라."

나는 이 '팀쉘'이라는 말이 정확하게 번역이 안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의 뜻에 따라'는 너무 애매하다. '팀쉘'은 소설 중 인물들이 창세기 4장 '그대는 죄를 다스릴 수도 있다'에 관하여 이야기하다 나오는 단어이다.

따라서 '팀쉘'은 '~할 수도 있다'와 같은 선택의 뜻일 것이다. 아담은 창세기 4장처럼 카알, 즉 카인에게 '너는 죄를 다스릴 수도 있다'며 인생의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굉장히 멋진 말이라고 생각되는데 내가 표현을 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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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의 동쪽 -상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26
존 스타인벡 지음, 이성호 옮김 / 범우사 / 199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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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무지하게 재밌게 읽었다는 이야기를 먼저 하고싶다.(나는 에덴의동쪽 영화를 본적이 없다.)

이 소설은 아주 독특한 인물설정을 취하고 복잡한 이해관계를 만들고 있다.

이복형제 찰스와 아담은 서로 완전히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자라났다. 형 아담은 소심하고 힘없고 언제나 동생에게 지며 동생을 다이아몬드를 좋아하듯 묘한 감정으로 좋아했지만 동시에 그를 매우 두려워했고,(작가는 이렇게 작품 내내 복잡한 심리를 표현해냈다.) 동생 찰스는 강하고 언제나 형을 이겼기에 형을 보호하는 마음과 동시에 경멸 비슷한 감정도 가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둘이 게임을 하다 처음으로 아담이 이기는 일이 발생하자, 찰스는 노기띤 얼굴로 그를 마구 두드려 패고 만다.

그후 아담이 한번 더 얻어맞은 일이 있는데, 그것은 아버지가 아담만 데리고 산책을 나가 군대 얘기를 하고 돌아온 후이다. 찰스는 무슨 얘기를 했냐고 꼬치꼬치 캐물은 후에 격노해서 아버지의 생일 선물 이야기를 한다. 자기는 큰 돈들 들여 아버지께 칼을 사 드렸는데 아버지는 단 한번도 그 칼을 쓰신 적이 없다고, 그런데 형이 공짜로 주워온 잡종개만큼은 항상 곁에 두고 계시다며 찰스는 아담을 죽어라고 때린다.

여기서 찰스와 아담은 각각 카인과 아벨을 대변하는 인간상이다.(내 주관적 해석이 아니라 소설 내에도 직접적으로 카인과 아벨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카인은 악, 아벨은 선을 나타내지만 작가는 사실 그 어느 편도 들고 있지 않다.

"좋다, 말해주지. 아니, 사랑하지 않았다. 어떤 때에는 겁을 먹었고, 어떤 때에는- 그렇지, 어떤 때에는 나는 아버지를 존경했다. 자, 이제 왜 알고 싶었는지 나에게 말해라."

찰스는 그의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어." 그가 말했다.

"내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어. 아버지는 이 세상의 누구보다도 형을 사랑했어."

"나는 그걸 믿을 수가 없어."

"형은 믿을 필요가 없어. 아버지는 형이 갖다 드린 것이면 무엇이고 좋아하셨어. 반대로 나는 미워하셨지. 내가 드린 것은 무엇이고 싫어하셨어. 내가 드린 주머니칼만 해도 그래. 난 나무 한 짐을 해서 팔아가지고 그 칼을 샀었어. 그런데도 아버지는 그것을 워싱턴에 가지고 가지 않았어. 그것은 지금도 아버지의 서랍 속에 있어. 그런데 형은 강아지를 드렸지. 비용도 들이지 않았었지. 그 강아지 사진을 보여주지. 장례식에 찍은거야. 한 대령이 그놈을 안고 있었어. 강아지는 보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했어. 장례식이 끝난 뒤 쏘아 죽였지."

동생의 어조가 격렬하여 아담은 어리둥절해졌다. "나는 모르겠다." 아담이 말했다. "네가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나는 모르겠다."

"나는 아버지를 사랑했어요." 찰스가 말했다. 아담이 기억하기로는 처음으로 찰스는 울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담의 두 아들 아론과 카알조차도 각각 아벨과 카인의 인간형이 된다. 아론은 언제나 만인에게 사랑받고, 카알은 그 사랑을 자기도 받고싶어 아론을 질투하는 인간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거기서 끝이 아니다. 아론과 카알은 아담와 찰스와 많은 면에서 비슷하지만 절대로 같지가 않다. 작가는 이런 점에서 카알을 부각시키고 있다. 아담과 찰스에서는 아담의 얘기를 주로 하던 작가가, 이번에는 카알의 얘기를 주로 한다.

카알은 자신이 시기한다는 것과, 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을 고치고 자기도 형과 같은 착한 사람이 되려고 계속 <노력한다.>

그 노력이 자꾸 물거품이 되고 또 그의 잔인성이 고개를 들지만, 그는 계속 고뇌하고 반성하며 자신의 길을 찾아가려고 <애쓴다.>

소설 중 이런 대화 내용이 있다. 창세기 4장 7절에는 '카인은 죄를 다스릴지니라'라는 구절이 있다고 한다. '죄를 다스려라' 혹은 '죄를 다스릴지니라'라고 번역이 되는데, 사실은 이것이 이런 명령, 운명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고, 히브리어로 본래 '그대는 죄를 다스릴 수도 있다'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다스려라', '다스릴지니라', '다스릴 수도 있다' 세 가지 말은 별 차이가 없는 듯 하지만, 이 마지막 '다스릴 수도 있다'는 것은 인간이 명령이나 운명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선택'으로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따라서 인간이 신보다 앞설 수 있다는 엄청난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작가가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바로 카알의 '선택'인 것이다. 카알은 결코 선량하지는 않다. 그러나 그는 선과 악을 동시에 가지고 끊임없이 번뇌하고 반성하며 본인의 악을 없애보려고 애쓴다. 이것이 그가 카인이나 찰스와는 다른 점이고, 작가가 표현하고픈 인간애이다.

소설 마지막에서 아담이 용서를 비는 카알에게 하는 마지막 말은 이것이다. "팀쉘:그의 뜻에 따라."

나는 이 '팀쉘'이라는 말이 정확하게 번역이 안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의 뜻에 따라'는 너무 애매하다. '팀쉘'은 소설 중 인물들이 창세기 4장 '그대는 죄를 다스릴 수도 있다'에 관하여 이야기하다 나오는 단어이다.

따라서 '팀쉘'은 '~할 수도 있다'와 같은 선택의 뜻일 것이다. 아담은 창세기 4장처럼 카알, 즉 카인에게 '너는 죄를 다스릴 수도 있다'며 인생의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굉장히 멋진 말이라고 생각되는데 내가 표현을 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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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빈치 코드 1
댄 브라운 지음, 양선아 옮김, 이창식 번역 감수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다빈치 코드의 명성은 이미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다.

미디어와 주위 사람들에서 들리는 소리로 '엄청 재미있는 책'이라는 인식이 박혀 언젠가 한번 꼭 읽어보리라 별렀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괜찮긴 했지만 기대에는 확실히 못 미쳤다.

내가 뭘 기대를 했는지...

좀 더 장중하고 미스터리한 신비로움을 품고 있으리라 예상했는데, 책 뒤 표지에 신문들 비평처럼 너무 전형적인 헐리웃 블록버스터 형식이라 느꼈다.

주인공 남자 여자가 어찌저찌해 사건에 엮이고, 어떻게 요리조리 잡힐뻔한 상황 다 빠져나가면서 갑자기 번뜩번뜩 암호를 알아낸다. 읽으면서 가끔 너무하다는 생각이-_-....

결론은 결국 둘이 하루종일 붙어다니면서 고생 다 한 바람에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결국 찾던 목표물은 스토리가 처음 시작하던 원점에 있었다.

그래도 읽으면서 정말 '우와~' 소리가 나오는 부분들은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암호를 딱딱 맞춰놨는지.. 신기했다. 근데 암호 푸는게 맨날 거꾸로 하면 되고, 어쩌다 껴맞추면 되고. 아무데서나 너무 과도한 의미를 찾으려 하는게 아닌지... 개인적으로 그런걸 싫어해서. 꿈보다 해몽 같은거.

항상 소설 읽을때 묘사 부분에서 머리가 아프다. 어떻게 생겼는지 글로 푸는 것보다 그림 한장 보여주는게 훨씬 나을텐데... 기둥이 있고 로즈 라인이 남쪽 어디를 따라가고.. 동쪽 방향으로 빠져 나와서 남쪽 방향으로 가려면 뭐 오른쪽으로 가야한다느니 어쩌느니... 상당히 머리 아팠다. 공간지각능력이 떨어져서 그런지.

더군다나 그림 같은걸 분석하는게 많이 나와서, 그림을 글로 상상하는게 참 힘들었다.

들리는 명성보단 확실히 별로인것 같다. 별 2.5개 주고싶은데 반올림해서 3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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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빈치 코드 2
댄 브라운 지음, 양선아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다빈치 코드의 명성은 이미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다.

미디어와 주위 사람들에서 들리는 소리로 '엄청 재미있는 책'이라는 인식이 박혀 언젠가 한번 꼭 읽어보리라 별렀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괜찮긴 했지만 기대에는 확실히 못 미쳤다.

내가 뭘 기대를 했는지...

좀 더 장중하고 미스터리한 신비로움을 품고 있으리라 예상했는데, 책 뒤 표지에 신문들 비평처럼 너무 전형적인 헐리웃 블록버스터 형식이라 느꼈다.

주인공 남자 여자가 어찌저찌해 사건에 엮이고, 어떻게 요리조리 잡힐뻔한 상황 다 빠져나가면서 갑자기 번뜩번뜩 암호를 알아낸다. 읽으면서 가끔 너무하다는 생각이-_-....

결론은 결국 둘이 하루종일 붙어다니면서 고생 다 한 바람에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결국 찾던 목표물은 스토리가 처음 시작하던 원점에 있었다.

그래도 읽으면서 정말 '우와~' 소리가 나오는 부분들은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암호를 딱딱 맞춰놨는지.. 신기했다. 근데 암호 푸는게 맨날 거꾸로 하면 되고, 어쩌다 껴맞추면 되고. 아무데서나 너무 과도한 의미를 찾으려 하는게 아닌지... 개인적으로 그런걸 싫어해서. 꿈보다 해몽 같은거.

항상 소설 읽을때 묘사 부분에서 머리가 아프다. 어떻게 생겼는지 글로 푸는 것보다 그림 한장 보여주는게 훨씬 나을텐데... 기둥이 있고 로즈 라인이 남쪽 어디를 따라가고.. 동쪽 방향으로 빠져 나와서 남쪽 방향으로 가려면 뭐 오른쪽으로 가야한다느니 어쩌느니... 상당히 머리 아팠다. 공간지각능력이 떨어져서 그런지.

더군다나 그림 같은걸 분석하는게 많이 나와서, 그림을 글로 상상하는게 참 힘들었다.

들리는 명성보단 확실히 별로인것 같다. 별 2.5개 주고싶은데 반올림해서 3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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