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 끔찍한 노릇은 이미 여행을 온 이상은 방 안에 틀어박혀 파리로 돌아갈 기차만 기다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여행 때면 늘 하던 대로 문화 유적지를 돌아보거나 거리를 산책하면서 여행 온 것을 입증해야 했다. 나는 올트라르노 거리와 보볼리 정원에 갔고, 산미켈란젤로 광장과 산미니아토까지 몇 시간동안을 걸었다. 문이 열려 있는 성당마다 들어가서 세 가지 소원을 빌었다(셋 중의 하나쯤은 이루어지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물론 세 가지 소원은 모두 A와 관련된 것이었다). 나는 서늘하고 조용한 성당 구석에 앉아 내가 만들어낸 수많은 각본 중 하나를 세세하게 그려보았다(그 사람과 함께 피렌체로 여행을 온다든지, 십년 후에 공항에서 우연히 다시 만난다든지 하는 것들이었다). 이런 상념들이 아침부터 밤까지 어디서나 끊임없이나를 따라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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