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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온갖 미사여구가 많이 사용 된 한국이나 일본 소설과는 달리 문장이 짧게 끊어지는 유럽의 소설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너무 완고하고, 자신만의 기준이 뚜렷한 오베를 보며 답답한 나머지 초반 100페이지 가량은 책을 따라가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재미가 없다고, 실망을 표했던 과거의 평가는 아무래도 뒤엎어야 할것 같다. 조금씩, 오베라는 남자의 인생에 대해 알아갈수록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책 속으로 빨려들어갔으니.
오베는 매일 아침을 동네를 시찰하며 시작한다. 방문객 주차 구역에 불법주차된 차가 있는지 확인하고, 재활용이 제대로 되어 이는지도 확인하고, 차량이 통제된 거주자 구역을 달리는 차가 있으면 화를 낸다. 게다가 그에게는 특이한 선입견이 있었으니. 바로 그 사람이 몰고 있는 차종만으로 그 사람에 대한 평가를 내린다는 것이었다. 같은 지역에 살았다간 하루만에 질식해버릴 정도로 원리원칙을 중요시하는 성격 덕분에 하루도 이웃 주민들과의 마찰이 끊이지 않는다.
이런 오베의 삶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오베의 집 앞에 새로 이사온 외국인 부부에 의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한다. 트레일러를 후진시켜준 것을 계기로 단번에 오베와의 거리를 좁혀와서는, 선을 긋고 뻣뻣하게 대하는 오베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가까워져간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오베라는 사람에 대해 왜 저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의구심이 생길 무렵, 오베의 과거 이야기가 시작된다. 한 챕터씩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조금씩 오베라는 사람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되면서 초반의 이해할 수 없었던 행동들이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여담이지만, '오베라는 남자~'로 소제목이 시작되는 챕터는 오베의 현재 이야기를, '오베였던 남자~'로 소제목이 시작되는 챕터는 오베의 과거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현재와 과거가 몇 차례 반복되던 끝에서야 오베가 처해있는 상황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아내를 잃고, 직장마저 잃어, 삶을 지탱하던 이유를 모두 잃은 오베. 결국 오베는 아내의 곁으로 가고자 결심한다. 모든 일을 언제나 그래왔듯 완벽하게 처리해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눈을 감으려는 순간.
어김없이 사건은 벌어진다.
마치 먼저 세상을 뜬 아내가 이 곳으로 오지 말라고, 오베를 밀어내기라도 하듯이. 오베로서는 굉장히 짜증나는 일이 아닐 수가 없지만, 읽는 독자로써는 웃음이 터져 나올 수 밖에 없을 정도로 굉장히 어이없는 사건들이 아닐수가 없다.
이 책은 크게 두 가지 이야기로 구성이 되어있다. 지금의 까칠한 오베를 만들기 까지 그가 겪어온 사건들을 서술하는 과거와, 자살을 하려고 할 때마다 사건에 휘말리고,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근처의 이웃들과 조금씩 가까워지는 오베의 현재.
과거의 오베는 조금 요령이 없을 뿐, '까칠하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아이를 밴 아내가 버스사고를 당하게 되면서, 조금도 약자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 사회에 조금씩 화가 났을 뿐이었다. 인정도, 영혼도 없이, 그저 주어진 일만을 처리하려 드는 하얀 셔츠의 사람들. 그리고 그런 사람들과 수십년간 대처해 온 오베의 삶. 그러나 단 한 번도 이길 수 없었던 과거의 날들.
그러나 상황은 변하기 시작한다. 한때는 절친한 친구였지만, 생에 최대의 원수이기도 했던 루네를 위해 움직이기로 결심한 순간. 그동안 오베가 귀찮다고만 생각해왔던 이웃들과 힘을 합쳐 하얀 셔츠의 사내를 무찌르는 장면은 오베의 인생을 따라가면서 느꼈던 묵직한 갑갑함을 한순간에 날려보낼 정도로 통쾌하기까지 하다.
그 뒤로 오베의 삶은 눈에 띄게 변한다. 오베의 삶에 변화를 가져온 파르바네와 패트릭 가족의 집에 왕래하며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는다. 또한 책을 시작하면서부터 그와 함께한 고양이와 마치 가족처럼 함께 지내기 시작하면서, 먼저 떠난 아내를 대신하여 공허한 마음을 채워줄 다른 의미의 가족을 만나게 된다. 그렇게 무채색이었던 오베의 삶은 조금씩 색을 더해나간다.
그리고 그토록 원했던 결말을, 아내의 곁으로 가는 마지막을 맞는다. 이전과는 달리 많은 사람들의 사이에서, 굉장히 평온한 얼굴로.
비록 마지막에 오베의 장례식 장면을 보며 예상치 못하게 펑펑 울기는 했지만, 오베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해피엔딩이 아니었을까 싶다. 적어도 그의 임종을 지켜봐주고, ― 오베는 싫어했을 테지만 ― 평생을 그리던 아내의 곁으로 마침내 도달할 수 있었을테니.
책을 손에서 놓는 순간까지도, 시도때도 없이 오베의 눈 앞에 등장했던 고양이에게 자꾸만 눈길이 갔다. 오베에게는 불쾌한 손님이 아닐 수 없었지만, 아내가 굉장히 사랑했던 고양이. 마지막까지 오베의 임종을 지켰던 고양이. 이 고양이는, 사방에 높은 담을 쌓고 그저 아내에게 가는 것만을 생각하던 오베를 걱정한 소냐가 보낸 것은 아니었을까.
사실 되짚어 생각해보면 오베는 남들이 말하는 것 처럼 까칠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저 자기 자신만의 원칙과 철칙이 확고하여 그걸 지키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일 뿐. 아닌 척, 퉁명스러운 척 이웃들을 대하지만 결국 단 한번도 이웃들의 도움을 거절한 적이 없다. 그렇게 상냥했기 때문에 59년이라는 인생을 살면서 남들보다 크게 상처를 받았고, 그 결과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을 뿐.
정말 마지막 200페이지를 읽는 동안에는 책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차마 리뷰에서는 다 다룰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소설 속 장치들과 사람사이의 관계, 그리고 그의 긴 인생까지. 이 소설이 왜 나오기가 무섭게 그렇게 호평을 얻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책을 읽고 난 지금도 생생한 이 여운을 다른 사람들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 책은 정말 추천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책을 읽으면서 오베의 인간적인 면모와 아내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던 구절을 인용하며 리뷰글을 마친다.
오베가 잠시 자기 신발을 바라보았다. 신음 소리를 냈다. 눈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묘석에서 눈을 더 털어냈다. 조심스레 그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보고싶어." 그가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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