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계량스푼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아이들의 순수함이란 때론 가장 무서운 것이다, 라는 것을 가슴깊이 깨닫게 해준 책이 아닐까.


 이 책은 초등학교 4학년이라는 아주 어리고 순수한, 그러나 어떠한 사건을 계기로 마음에 큰 상처를 받을 수 밖에 없었던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초등학교 2학년 시절, 두려움 때문에 피아노대회 무대에 나서지 않으려는 소꿉친구 후미를 도우려 하던 도중 자신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덕분에 후미는 무사히 피아노 대회를 마칠 수 있게 되지만, 주인공의 어머니는 주인공의 능력을 '무서운 능력'이라 칭하며 다시는 사용하지 않아줄 것을 부탁한다.

 그리고 초등학교 4학년, 학교에서 키우던 토끼가 잔인하게 잘려나가고 학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하필이면 그 사건을 처음 발견한 것은 주인공의 친구 후미. 많은 독서 덕분에 아는 것이 많고, 항상 모두에게 친절하고 붙임성이 좋던 후미는 그 사건을 계기로 PTSD 증상을 보이며 완전히 마음을 닫아버린다. 주변 사람들의 어떠한 말에도 대답하지 않고, 시선을 맞추지 않는 후미의 눈은 아무것도 비추지 않은 채 공허하게 비어있다.

 주인공은 소중한 후미를 이렇게 만든 토끼 살해사건의 범인, 이치카와 유타에게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여 벌을 주고자 결심한다. 그러던 중 주인공이 능력을 사용하는 것을 우려한 어머니를 통해 자신과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먼 친척 아키야마 교수를 만나게 되고, 교수와 함께 이야기를 하며 이치카와 유타에게 어떤 벌을 줄지 조금씩 해답을 찾아가는 것이 책의 주된 내용이었다.


 조건게임제시능력. 말 그대로 ~하지 않으면 ~ 하게 될 것이다. 라는 내용을 통해 능력을 사용한 상대가 자신의 말에 그대로 따르게 하거나, 그러지 못할 경우 벌을 받게 하는 아주 간단한 이론이다. 물론 사용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규칙에 따라야 하고, 한번 사용한 상대에게는 다시 사용하지 못하는 등 제약조건도 많다. 책의 대부분은 이 게임의 조건을 설명하는 형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솔직하게 말하자면 책의 중반부에는 그리 쉽게 몰입할 수가 없었다.

― 분명 이전에 읽었던 작가의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에서도 이런 비슷한 감상을 했던 기억이 나는데... 이쯤되면 작가의 특성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


 하지만 아키야마 교수와의 대화에서 굉장히 눈에 띄는 것은 주인공이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정들이었다. 어른이 되어 다양한 일을 겪어온 아키야마 교수는, 주인공이 이치카와 유타를 벌함으로써 벌어질 일들에 책임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주인공은 아이이기에 책임감을 느끼고, 고뇌하고, 마음 한 구석에서 자신을 콕콕 찔러오는 양심의 가책 때문에 쉽사리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이 때 까지만 해도 몰랐었지. 아이의 이런 순수함을 믿다가 결말 부분에서 거하게 뒤통수를 맞을거라곤.

 

 아무튼 아키야마 교수의 앞에서는 ―도무지 아이의 생각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깊이 고민하고, 학교생활을 하면서는 후미에 대한 미안한 감정과 걱정으로 감정이 북받혀 오르는 제 나이 또래의 모습을 보이는 주인공을 보면서 나 또한 고민을 해보지 않을수가 없었다.

 내가 주인공이라면 이치카와 유타에게 어떤 벌을 주고자 했을까?


 참 어려운 문제였다. 그도 그럴것이, 이치카와 유타의 사고방식이나 가치관은 일반적인 사람들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었다. 토끼를 그렇게 만든 것에 아무런 죄책감도 없었고, 그 무엇에도 반성을 하는 기색이 없었다. 가장 두려워하는 것으로 벌을 주고 싶었지만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거기에 아키야마 교수는 '돈'이라는 힌트를 주고, 이 힌트는 책의 결말에 정말 막대한...아주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정말 다시 생각해도 소름이 끼칠 수 밖에 없는 반전...

 비록 지금까지 읽은 것은 두 권 뿐이지만, 초반에 질질 끌리는 듯한 느낌이 있음에도 츠지미야 미즈키의 책을 도무지 손에서 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이런 반전들 때문일 것이다. 한 번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에서 당해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마음을 굳게 먹고 나름대로 추측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 작가는 완전히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나를 놀라게 한다. 


 책 속에는 원래는 토끼세공이 달린 세 개의 계량스푼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원래는 후미의 것이었던 이 계량스푼 중 하나를, 후미는 주인공에게 선물로 준다. 사실 후미의 토끼사랑을 알 수 있는 토끼모양의 세공 말고는 특별히 하는 역할이 없었기에 이 책의 제목이 어째서 '나의 계량스푼'인지 궁금했는데...

 책을 읽고 난 뒤로는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사건 이후로 주인공의 손에 모두 들어온 세 개의 계량스푼은, 주인공에게는 부적이 아니었을까. 자신 때문에 후미가 마음을 닫아버렸다는 죄책감과, 반드시 복수를 해주고 말겠다는 자신의 각오를 모두 담은. 아키야마교수와의 상담 도중 수도 없이 느꼈던 공포에도 불구하고 결심을 하게 해주었던 마지막 방어선 같은. 그런 느낌의 부적 말이다.


후미의 손가가 태양빛을 받아 가느다란 무지갯빛을 띠며 빛났다. 눈부신 빛이 걸을 때마다 조금씩 변화했다. 짤랑짤랑 소리를 내면서, 아키야마가 건넨 계량스푼이 그 손 안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문장 자체도 굉장히 예뻤지만, 나는 마지막 장면의 이 부분이 세상을 외면하던 후미의 마음이 조금씩 빛을 다시 찾아가는 것을 묘사한듯한 기분이 들었다. 주인공이 모든것을 이겨낼 수 있도록 힘이 되어주었던 이 계량스푼이, 이번에는 이것을 다시 손에 쥔 후미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기를.



 내 책 읽는 순서가 엉망징창이라 아직까지는 볼 수 없었지만, 이 책은 츠지미야 미즈키의 츠나구, 얼음고래 등 다른 작품의 스핀오프 격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다른 작품속에서 활약하던 주인공들, 심지어는 주인공의 소꿉친구 후미조차도 소설속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고.

 이 작가에게 이렇게 매력을 느끼고 단단히 꼬리를 잡힌 이상, 다음 재미는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읽으며 이 책 속의 인물들의 과거 이야기를 하나하나 찾아가는 것에서 찾아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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