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의 발견부터 불꽃의 두 사람이 걸어온 과정과, 느껴왔던 감정들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는 이 책은 읽는 내내 내게 놀라움, 부끄러움, 그리고 분노등 굉장히 다양한 감정을 가져다 주었다.
가장 먼저, 이 사건을 가장 먼저 인지하고, 사회에 알리고, 해결을 위해 고군분투 하던 것이 지금의 나보다도 훨씬 어린 두 명의 여대생이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전공, 논술, 시험.... 이들이 대학생임을 알리는 단어들이 튀어나올 때마다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저 공모전을 위해 시작했던 취재에서 이런 끔찍한 실상을 목격했을 때, 나였으면 어떻게 대처했을까.
아마 경찰에 신고하는 시도정도는 하려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이후는 글쎄.... 이들처럼 사회적 이슈로 공론화 하고, 더 나아가 피해자들을 추적해나가며 적극적으로 돕고자 나서는 것은 지금의 나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이들은 그걸 해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존경스러운데, 동시에 나를 부끄럽게 만든 것은 이들의 태도였다. 끝까지 피해자를 먼저 생각하고 피해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모습들. 그 모습들을 보는데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나도, 그리고 우리나라 언론도, 가해자를 악마화하며 욕설을 퍼붓는 동안 그 뒷면에 숨어있을 피해자들에 대해선 어느 누구도 생각해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같은 여성의 문제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결국 나는 '남'이라는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었다.
앞에서 잠시 강남역 살인사건, 그리고 불법촬영 카메라 이야기를 했다. 그때쯤 한창 페이스북에서 가까운 사람들이 논쟁하는 모습을 목격했는데, 그 당시에 나를 가장 화나게 했던건 학교 후배가 썼던 글이었다.
나는 여동생을 아끼고, 여동생과 사이도 좋은데, 왜 이런 나까지 싸잡아 잠재적 가해자 취급을 하느냐 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 의견에 설득을 하고, 보다 더 정제된 말로 반박하는 모습을 보았기에 그 속에 섞여 논쟁하지는 않았지만, 그 무책임한 말이 너무나도 싫었다. 그래서 그저 툭 던지듯이, 이런 글을 올렸던 기록이 남아있더라.
다음 피해자는 내가 되는게 아닐까 불안에 떠는 사람들을 앞에 두고, 그저 일반화 당하는 현실에만 불쾌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부럽다
이때만 해도 이런 생각을 했던 내가, 강남역 살인사건은 나에게 닥쳐오는 현실적인 위협으로 인식했던 내가, 왜 N번방 사태에 대해서는 그래지 못했을까. 이 책은, 그런 나에게 다시한번 경각심을 갖게 해주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한창 이슈화 되었을 때만큼 주목받지 못하고 조금씩 잊혀지고 있지만, N번방 사건은 아직 해결된 것이 아니기에. 성별을 떠나 한 '인간'이 착취당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문제를 느끼지 못하고 함께 즐겼음에도 여전히 잡히지 못한 수많은 가해자들이 있고, 그나마 검거된 가해자들 또한 자신의 죄에 합당한 처벌을 받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에서 피해자들은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 분명한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러게 왜 원인을 제공해서...'라는 비난마저 듣고 있다. 그 사실이 나를 분노하게 했다.
분노해서, 뭐가 바뀌냐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엔 나라는 사람 개인의 힘은 너무나도 미약하지만, 적어도 기억할 수는 있으니까. 오늘부터는 언제까지고 기억하고, 관심을 갖고자 한다. 소리 낼 기회가 주어진다면 소리를 내야겠다. 이렇게 누군가가 몸을 불태우며 알리려 하고, 바로잡으려 하지 않아도, 죄질에 맞는 무거운 처벌을 받는 것이 당연해지는 날이 올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