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은 이상하게 동지가 지나도 밤이 계속 길어지고, 아침 7시 출근시간이 어두워져만 갔다. 이상한 일이지.

이제 우주 법칙까지 바뀌나 궁금해하며 이십여일이 지나니 역시 어리석은 한 인간의 착각이라는 게 드러났다.

인간 세상이 변하고 시끄러울 뿐 이미 해는 길어져 있었고 아침 7시는 환하게 밝아왔다.

 

그럼 이제 봄이 올 차롄가?

기분이 좋아진 김에 날씨가 풀려보여서 내복을 벗었다가 얼른 다시 입었다.

날은 훤해졌지만 봄은 아직 멀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이제 막 겨울의 가장 한 가운데로 들어서는 시점이다.

 

봄이 오지 않는다고 중세 유럽에서는 200명의 마녀를 화형으로 죽였다.

마녀들이 겨울을 붙잡고 놓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모두 죽이고 나니 과연 봄이 왔다.

마녀를 죽이기 전 이미 고문을 통하여 그녀들이 마녀임을 자백했기 때문에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엄청난 수의 마녀가 동네마다 활개치고 다닌다는 소문이 무성하였다.

긴 긴 세월동안 마녀의 활동은 계속되었고 종교회의는 심증만으로도 그녀들을 화형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인들 그녀들이 마녀가 아님을 동네 사람들은 정말 몰랐을까????

대부분 그랬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찌보면 요즘도 그런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고 세상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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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에스키모인들에겐 늑대를 잡는 전통 방법이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한 겨울 눈밭을 헤매는 굶주린 늑대를 잡는 방법이다.


그들은 날카로운 칼날에 피를 묻힌 후 얼린다.

얼린 칼의 자루를 밑으로, 피묻은 칼날을 위로 하여 눈속에 단단히 꼽아놓으면,

이윽고 피냄새를 맡은 배고픈 늑대가 나타난다.


주위를 경계한 늑대는 피로 얼어붙은 칼날을 핡기 시작한다.

아무도 없다.

칼날은 녹고 늑대의 혀는 잘려나가고,

얼어서 감각이 없어진 그놈은 계속 칼날을 핥아대고 그의 혀에서는 피가 흐른다.

자기의 피를 먹다가,

결국 혀는 갈갈이 갈라지고 마지막 피를  핥으며 늑대는 죽는다.

 

이 장면은 어느 종교에서 인간이 죄를 탐하다가 결국 자멸한다는 예화로 나온 것이었다.


나는 분노했다. 

죽어가는 늑대의 모습에서 예화가 말하고자 하는 죄지은 내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그런 짓. 그런 방법. 그런 식으로 누구를 죽이는 것, 

그런 장면을 지켜본다는 것은 인간이 해서는 안되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확히 이런 지점에서 사람들은 갈리게 된다.

그게 뭐가 어떤데, 그럼 늑대가 가축들을 잡아먹게 두는 게 옳단 말이야? 

아니 이건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

현명하군, 힘 안들이고. 위험하지도 않고. 

아니긴 뭐가 아냐? 그럼 다른  방법을 말해봐.


이런 경우 대화는 불가능하고 불필요하다.

'차이' '다름'을 넘어서 전혀 다른 사람이었음을 느낄 뿐이다.

같은 사람인줄 알고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이상해서 보니 그 사람의 그림자가 없더라는 식으로 놀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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