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자책] 할매가 돌아왔다 (개정판)
김범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0월
평점 :
염병에 걸려 죽었다는 할머니가 67년만에 부활했다. 민족의 배신자, 일본 순사와 바람나 도망친 할머니. 그럼에도 다시 옛 가족을 찾아온 할머니. 한순간에 집안은 발칵 뒤집히고 할아버지는 쌍욕을 하며 할머니를 내쫓으려 한다. 갓난 아이들을 버리고 갔다고 원망하는 자식들도 마찬가지. 그 때 할머니는 말한다. '너희에게 줄 유산이 있다, 한국 돈으로 60억쯤 되겠구나.' 하고. 그리고 모든 것의 위에 있는 돈의 힘은 가족들의 태도를 확 바꿔놓는다. 다시는 상종하고 싶지 않은 할머니에서 집안의 구원자이자 희망으로 변한 것이다.
책은 굉장히 잘 읽힌다. 한번 읽으려고 잡은 순간 책장의 반이 날아가버렸다. 무슨 소리냐면 그만큼 유산 60억의 행방을 두고 줄다리기를 잘한다는 소리다. 대체 일본 택시 회사를 처분해서 손에 쥐었다는 돈은 진실이긴 한 걸까. 일본에 살았지만 일본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할머니, 과거의 행적이 묘연한 할머니. 60억의 행방을 두고 가족들이 몰아세우자 오히려 더 당당하게 자신감을 내비치는 할머니. 때문에 60억의 행방이 너무 궁금해져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책의 내용을 모두 스포일러 할 수는 없지만 여기 나오는 할머니는 정말 심상치 않은 삶을 살아온 것 같으면서도 주변에 있는 누군가같기도 했다. 묘하게 느껴지는 요즘같지 않은 문체에, 물건들을 보고 좀 당황스러웠는데 이 책은 2012년에 나온 소설의 개정판이었다. 그럼에도 소설 속 상황들은 낯설지 않고, 이 땅에 제니 할머니는 아직도 존재하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의도치 않았지만 피해자로 몰린 사람들 말이다.
소설 속 주인공을 포함해, 남자들이 너무 찌질하게 나와서 이건 대놓고 그렇게 묘사한건가 싶기도 했는데 크게 보자면 신파라는 장르로 발돋움 시키기 위한 장치가 아니었나 싶다. 할머니의 기구한 사연을 위한 장치, 그리고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여자들을 부각시키는 장치로 독립운동을 했다지만 제 여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할아버지가 있었고,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더니 가정생계엔 일절 보탬이 되지 않고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가 있었으며, 35살로 직장도 없이 옛 여자친구에게 아직 미련을 가지고 피씨방을 전전하는 아들이 있었다.
그런 극단적인 장치들이 있기는 했지만 뒷부분에 가족들이 조금씩 변화하는 부분에는 이 맛을 위해 장치들을 그렇게 깔아두었구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신파를 좋아하지 않아서, 여태 읽었던 소설 중 손꼽을 정도로 찌질한 주인공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초반에는 참 취향에 맞지 않았던 책인데 결말부는 마음에 들었다.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사과를 받는 장면이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긴 하지만.. 그래서인지 나는 제니 할머니의 60억이 정말로 있다고 믿고싶은 쪽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