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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마음이 안녕하기를 - 때로는 빛나고 가끔은 쓸쓸하지만
김재연 지음, 김효정 사진 / 인디고(글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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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타블로의 꿈꾸는 라디오>, <김C의 뮤직쇼> 김재연 작가의 따뜻한 글과 밤삼킨별 김효정 작가의 감성적인 사진이 만나 오늘 하루도 힘껏 버티고 있는 우리의 매일을 위로하는 에세이'

 

손글씨 쓰는 라디오 작가 김재연. 그녀는 라디오 작가가 세상에 퍼져있는 이야기를 잘 골라내어 좋은 이야기를 다시 잘 퍼트리는 멋진 직업이라고 말한다.

책을 읽으면서 그 말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작가가 들려주는 이런 이야기들을 하나 둘 모아 나도 누군가에게 전해주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김효정 작가의 감성 가득한 사진과 김재연 작가의 글, 따뜻한 색감이 가득한 표지에서부터 느껴지는 기운. 그만큼  '너의 마음이 안녕하기를'은 따뜻한 봄과도 같은, 봄에 잘 어울리는 감성에세이였다.

 

'라디오 작가가 하는 일은 이런것.

세상에 퍼져 있는 이야기에 관심 갖기.

누군가와기억고 싶은 좋은 이야기 골라내기.

그걸 다시 세상에 잘 퍼뜨리기.' (16p)

 

 

 

 

'때로는

빛나고

가끔은

쓸쓸하지만

너의 마음이 안녕하기를'

 

책에서 내내 든 생각은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을 만큼 포근하고 따뜻하다였다.

실제로 이 책은 <김C의 뮤직쇼> ‘생각 없는 생각’ 이라는 데일리 코너를 통해 청취자들에게 깊은 공감과 따뜻한 위로가 되어준 이야기들을 다듬고 더한 책이다.

많은 사람에게서 공감을 이끌어낸만큼 책 안에는 두고두고 읽어볼 수 있을정도의 글이 가득했다.​

​거기다 보기만해도 눈이 행복해지는 예쁜 사진들을 더해 눈길을 잡아끈다. 나도 한 사람의 내면의 생각을 가까이 들여다보면서 점차 공감하고 위로를 받았다.

추천사의 김C의 말처럼 가만히 혼자 말해보고 적어보면 좋을 글들이 가득해서 생각보다 읽는 속도는 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천천히 읽는만큼 읽을 수 있는 것이 많아 좋기만 했다.

 

- 그녀는 이번 책을 통해 우리가 행복해야 할 이유들에 대해 잔잔히 묻는다.​ (이병률 시인의 추천사 中 11p)

- 그녀가 쓴 글을 소리 내 읽던 기쁨이 아직 남아있다. 좀 쑥스러워도 혼자만의 시간일 때 나지막이 소리 내 이 책을 읽어보시라 (김C의 추천사 中 13p)

 

 

 

 

책장이 하나 둘 넘어가면서 메모가 많아져 갔다. 표시해뒀다 한번쯤 다시 펼쳐보고 싶어져서,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덧붙여 이야기해주고 싶어서...

촉촉히 젖어드는 봄비처럼. 이야기가 점점 내게 스며들어갔다.

 

 

 

죽기 전날 알렉스는

앵무새 특유의 목소리로 혀를 굴리며

박사에게 마지막으로 세 마디 말을 남겼다.

"잘 지내."

"다음에 또 봐."

"사랑해."  (41p)

 

읽으면서 제일 슬펐던 알렉스 에피소드. 앵무새보다 많은 단어를 알고있음에도 표현하는 말이 적었기에 더 먹먹하게 봤다.

짧은 글 속의 긴 여운이랄까...

작은 표현이라도 많은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법인데 그걸 점점 잊어가고 있는 것 같다.

 

내재된 감성을 툭툭 건드려 일깨우고 토닥거려준 이야기들. 사실 이야기자체는 이렇게 특별한 것이 없다.

보통의 사람. 보통의 일.

하지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하고 주변에서 일어날법하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글. 오히려 그런 글이기에 더욱더 공감할 수 있었다.

 

 

 

시를 쓰는 사람들은 참 이상한 취미가 있다.

지금은 봄도 아니고

또 가을도 아닌데

문장 하나로 사람의 마음을 참 뒤숭숭하게 만든다.

 

그나저나 어떤 바람이 됐을까.

방금 나를 지나간 바람은. (72p)

 

나무에 바람이 불면 녹색바람, 꽃에 바람이 불면 꽃바람이라고 말하는 시.

나도 덩달아 뒤숭숭하게 만들어놓았지만 작가는 담담한 듯 위와같이 서술한다. 이런 문체에서 즐거움과 아련함을 동시에 느낀다면 아이러니할까..

위로와 공감 그리고 그냥 넘겨버릴 문장이 아니라 한번 생각할 수 있게 유도하는 글. 그래서 읽는 내내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밖에도 신경을 많이 쓴 듯한 편집이 정성스러운 이 글에 더욱 잘 어울려서 기억에 남았다.

아래의 사진처럼 이렇게 소제목들의 세심한 배치가 눈에 띌때마다 조용히 미소를 머금고 볼 수 있었다. 마치 조용한 배려같아 보여서...

 

 

 

 

 

제목부터 마음이 안녕하기를 바란다라고 했던 책. 그래서일까. 이야기의 끝에서 작가는 같은말을 한다.

 

 

 

곰이 푹신한 나뭇잎을 모아다 겨울잠 준비를 하는 것처럼

다람쥐가 도토리를 모아다 겨울 양식을 미리 땅에 묻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 역시

부지런히 겨울 맞을 채비를 한다.

 

따뜻해질 준비를 한다. (278p)

 

작지만 일상을 견디게 하는 힘. 따뜻한 시선, 서로의 공감. 작가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너의 마음이 안녕하기를'은 따뜻하고 섬세한 감성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던 글이었다.

천천히 책장을 넘겨야하는 이야기였음에도 어느새 아쉽게 마지막 장을 넘기고 있었다.

마치 어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듯 조곤조곤하게 속삭이는 듯한 글은 마음 한켠을 따뜻하게 만들어 위로와 힘이 되어준다.

 

따뜻한 봄날 마음이 더 따뜻해지길 바란다면 조용히 이 책을 집어들어 읽어볼 것을 권유해본다.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는 따뜻한 마음이 바로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버틸 수 있는 위로와 힘이 되어주기를 나도 작가와 함께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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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고래뼈 요람
김유정 지음 / 황금가지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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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회 황금드래곤 문학상 수상 작가 김유정의 신작 소설선 '고래뼈 요람'​은 단편인 '진저와 시나몬', 중편인 '고래뼈 요람'의 두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감성 판타지라는 이름에 걸맞게 내재된 감성을 툭툭 건드리는 듯 했던 두 이야기는 천천히 읽어봐야 그 참맛을 느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 단편 '진저와 시나몬'

 

 -  “이름이 없거나 익명이거나 예명인 자들은 그렇게 떠돌 것이다.”

가짜 이름으로 살아가는 두 남녀의 달고도 씁쓸한 감성 단편 「진저와 시나몬」

 

생강계피(ginger cinnamon) 차를 떠올리게 하는 단편 '진저와 시나몬'은 질문자의 질문 하나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최근에 누군가와 감정적인 교류를 가져본 적이 있느냐'

 

그리고 이어지는 케이트의 이야기.

진저색 붉은 머리의 경찰인 케이트는 24시 레스토랑에서 웨이트리스 시나몬을 만난다. 시나몬은 겉으로는 통통 튀고 발랄한 성격으로 케이트와는 정 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얼핏 어울리지 않는 요상한 조합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두 사람은 '진저와 시나몬'이라는 팀명을 이루며 제법 잘 어울려 지낸다.

 

하지만 둘 다 진명은 가르쳐주지 않는다. 별명같은 케이트로 불리길 원하는 남자, 그리고 극의 역할같은 시나몬이라고 불리길 원하는 여자 단지 그것 뿐이다.

소설에서는 어느 것 하나 확실하게 정체를 드러낼 법한 단어가 없었다. 심지어 케이트가 여자친구를 지칭하는 말도 '그녀'였다.

케이트와 시나몬은 제법 친해졌으면서도 여전히 타인의 이름을 가진 관계일 뿐이다. 낯선 타인. 그래서 더욱 자신의 마음을 적당히 비춰볼 수 있는 그런 관계.

소설의 중반쯤부터 시나몬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레즈비언이라는 자아정체성을 드러내고 무언가에 쫓겨가는 듯 하면서...

하지만 그녀의 짐은 오로지 그녀 자신만의 것이었다. 케이트는 철저히 타인이므로 그녀의 주위를 배회할 수밖에 없었다. 케이트에게 이미 시나몬은 하나의 의미가 되어버렸지만 시나몬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 관계 맺어진 것은 진명이 아닌 가명이기에 두 사람은 철저히 혼자일 수 밖에 없었다.

 

 

 

 

그는,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두 사람의 관계는 점점 균열을 드러낸다. 처음엔 아무 의미없었던 조그만 틈이 갈수록 벌어져 케이트와 시나몬의 사이에 메울 수 없는 깊은 벼랑이 있는 것 같았다. 시나몬에게는 아무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시나몬은 케이트를 밀어낸다. 케이트는 그녀를 거쳐간 수 많은 타인 중 하나일 뿐이었다.​

 

시나몬에게 케이트라는 사람의 의미는 그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해방될 구실에 불과했다. 그게 누구든 상관없었던 것이다. 가늘게 이어갈 관계가 필요했을 뿐.

 

달고 씁쓸한 시나몬처럼 이야기의 분위기도 그러했다.

 

그녀는 그의 머릿속 지하실에 보존되었고 그를 살게 했다. 케이트의 시나몬으로 존재했다. 이름이 없거나 익명이거나 예명인 자들은 그렇게 떠돌 것이다.

 

이름이 없다는 것. 그 사람에 대해 모른다는 것은 자신의 기준과 생각에 맞춰 그 사람을 생각한다는 의미다.

케이트는 자신만의 시나몬을 끝까지 기다리고 있다. 정작 진짜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시나몬이라는 여자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기억은 그렇게나 불확실하다.

 

마지막에 케이트의 독백은 그것을 인정한다. 자신만의 시나몬은 자신의 머릿속에만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처음엔 이름으로 엮이면 그 사람과 엮이는 것이 된다 뭐 이런이야기인가..?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훨씬 더 심오한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타인과의 관계. 그리고 관계의 불확실성.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뭐하나 속시원히 그게 진정한 정체라고 말할 수 없었다. 익명 그리고 가명에 의존해 서로에게 선을 긋고 있어서 철저히 타인처럼 관계하며 살아간다. 케이트와 시나몬은 결국 서로에게 타인인 것이었다.

 

 

 

* 중편 '고래뼈 요람'

 

- “우리 마을의 하늘에는 뼈만 남은 거대한 고래가 살고 있다.”

어느 날 문득 하늘에서 떨어진 한 소녀의 정체는?

죽음의 세계를 뛰어넘는 삶에 대한 집요한 믿음을 간직한 작품 「고래뼈 요람」

하늘에 커다란 고래뼈가 떠있다.

꿈의 세계. 뼈만 남은 거대한 고래 엔이 떠다니는 이상한 마을. 얼핏보면 평화로워 보이는 마을.

 

어느 날 그 평화롭던 마을에 사소한 규칙 하나가 깨졌다. 여관에 이름표도 내용물도 없는 트렁크 하나가 도착한 것.

미스테리하면서 알쏭달쏭한 분위기. 초반 이런 내용들때문에 읽기가 힘들었다. 대체 이 분위기는 뭐고 이 마을의 정체는 무엇인가 고래뼈의 정체는 뭘까? 수많은 의문들이 뒤따랐지만 무엇하나 확실한 것이 없었다. 의미심장한 문장들도 그렇고... 

그리고 뒤이어 등장한 하늘에서 떨어진 소녀. 빈 트렁크의 주인인 듯 엔(=고래뼈의 이름)의 근처 하늘에서 사람이 떨어진 기묘한 소녀는 마치 공기인 것처럼 아무런 무게가 느껴지지 않기도 하고 옷이 물에 젖지도 않는다. 이 소녀의 등장으로 크리스티안의 숨통이 막힐 정도로 평온하던 일상이 흔들린다. 하늘에서 떨어진 크리스티아네는 크리스티안과 이름마저 비슷하고 백발을 가진 외모마저 흡사하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크리스티아네는 밤중에 가만히 멈춰있는 사람들을 보고 이곳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된다. 

 

 

낮의 시간은 끝났다. 이제 달빛과 별빛만이 검은 주단 같은 밤하늘 위에 희끄무레하게 깜박이고 있었다.

(중략)

당신들은 죽은 이들이었구나.

그리고 아마 나도.

 

크리스티아네가 자신이 머무는 곳이 죽은자의 마을이라는 것을 깨닫고 며칠 후 트렁크가 돌아왔다.

하지만 크리스티아네는 아직 죽지 않은 그저 길을 잃고 마을에 떨어진 상태로 이방인처럼 마을에서 떠도는 존재다.

 

"네가 누군지 알 것 같아."

 

크리스티아네는 크리스티안과 평온한 일상을 보내지만 점차 얽혀있는 인연의 끈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크리스티안과 크리스티아네의 관계도...

이어진 감정. 서로에게 닿지 않았던 감정. 고래뼈가 떠있는 곳에서 둘은 비로소 서로를 마주한다.

그동안은 마치 고래뼈가 나를 짓누르는 것처럼 너무 갑갑했다. 때문에 서서히 관계가 밝혀지고 일의 인과가 드러나면서부터는 이야기가 흥미를 더해갔다.

하지만 이야기가 후반을 향해갈 수록 세계의 균열도 같이 찾아온다.

 

엔이 잠들어 있는 동안 그 짧은동안만을 빌려 존재하는 마을.

 

금방이라도 깨어질 듯 불안한 평화. 마치 빙판위를 걷듯 크리스티아네는 걸어갔다. 사연있는 자들이 모여 사는 마을.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린 상실감에 자신의 의미이자 기도였던 크리스티안을 찾아온 크리스티아네.

 

빈 트렁크에서 나온 기차표는 세계의 종말을 고했다.

그동안 해묵었던 갈등이 서서히 풀리고 서로의 마음을 알아가지만 고래뼈가 있는 이 세계는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넘어가야 해. 넌 살아 있고 난 이제 죽었어. 너는 나의 꿈이고 기도지만, 나는 너의 병이고 어둠이야. 나는 너의 주변을 보이지 않게 도는 달이고 너는 나 없이도 스스로 회전하는 세상이야. 그러니 넌 우리처럼 되면 안 돼. 서로 소중한 존재였는데도 헤어지고, 발버둥쳐도 불행에 사로잡힌 우리처럼 되면 절대로......"

 

그리고 이별의 순간 크리스티안이 간신히 건넨 고백의 한마디. '...... 나는 네가 와 주어 기뻤다.'

30년을 건너뛰어 전해진 연애편지가 아련한 분위기를 더했다. 마침내 크리스티아네가 기차를 타고 떠나자 마을은 무너져내린다.

 

 

'고래뼈 요람'의 두 소설은 관계가 키워드였던 듯하다.

가명으로 맺어진 관계, 비슷한 이름을 따서 지은 두 사람의 관계...

상큼발랄하게 끝나지 않았던 감성판타지이지만 긴 여운을 느낄 수 있었다. 두 이야기 모두 상통하는 바가 있어 읽으면서 이야기가 굉장히 잘 어울렸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읽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천천히 읽어보면 여운이 길게 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작품이다. 조용하고 잔잔하지만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깊은 물처럼... 이 소설도 그런 잔잔한 분위기를 한껏 맛보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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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례 이야기 1 - 개정증보판
지수현 지음 / 테라스북(Terrace Book)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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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그 여자, 쌀례의 이야기!​

1943년 싸릿골 봉 초시 댁 열네 살 쌀례는 꽃가마 대신 기차를 타고 경성으로 시집을 간다. 암울한 시대적 배경. 살기위해 선택했던 길 혼례.

​흉흉한 소문에 급하게 팔려가듯 혼인길에 오른 쌀례(성례)는 기차를 타고 가다 봉변을 당하지만 어느 학생의 도움으로 무사히 상황을 넘긴다.

그렇게 만신창이로 도착한 시댁. 그 곳에서 쌀례는 열넷의 나이이지만 열​두살같다며 집에서 키우는 바둑이마냥 어린아이 취급을 당하고 얼굴도 모르는 남편이라는 작자는 보이지도 않는다. 오밤중에 처음으로 맞이한 서방님​은 그녀더러 자꾸 고향 집으로 다시 돌아가라 한다. 돌아갈 곳이 없다 사정하여 결국 혼례는 올리게 되었지만 여전히 둘의 사이는 데면데면하다.

선재에게 들이밀어진 쌀례는 친일파 아버지 밑에서 조선어 야학을 운영하며 반항한 벌이었다. 6살 어린 아내. 여자가 되려면 10년은 족히 남은 것 같은 아이.

하지만 금주와 함께 있던 것을 본 쌀례가 상처받은 듯 뛰쳐나간 이후 선재는 그 쌀알같은 계집애가 조금씩 신경쓰이기 시작한다.​

 

 

 

'쌀례 이야기'는 현재 개정 증보판이 나온 상태다. 이번에 새로 출간된 개정증보판에는 몇 몇 에피소드가 추가된다고 한다. 드라마 제작이 확정되어 새롭게 개정판이 나온 것 같은데 추가되었다는 에피소드가 궁금하다. 왼쪽이 구판 오른쪽이 개정 증보판의 표지로 일러스트는 지수현 작가님이 직접 그리셨다고 한다.
동글동글한 눈동자가 어린아이의 천진함을 가지고 있는 쌀례와 굉장히 잘 맞는 이미지였다. 작품 분위기는 쌀례처럼 마냥 순수하고 밝지는 않았지만...

아무도 편들어주지 않는 곳 시댁에서도 개에게 정을 붙이며 살아갔고 힘든 일이 있으면 아궁이 앞에 앉아 한 솥 가득 밥을 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던 쌀례.
쌀례는 힘든 상황에서도 꿋꿋히 버티며 살아간다.​ 금주와의 일 이후 선재는 어린 아내에게 '어른이 될 때까지'라는 조건을 붙여 협상을 제안하고 ​말로는 서방님을 따르겠다고 하지만 한 마디도 지지 않던 쌀례를 설득해 글을 가르쳐준다. ​

꽉 막힌 집에서 살던 쌀례는 여자도 배울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이제껏 한번도 생각치 못한 일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에 선재는 쌀례의 대답에 간단하게 답해준다.
 
"왜 이렇게까지 제게 글을 가르치시려는 거지요? 어제까지도 이런 말씀 없으셨잖아요?"
(중략)
"재미있을 것 같아서."​    (1권 119-120p)​
아마 이때부터 선재는 어린 아내에게 점점 마음이 기울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이 일을 계기로 쌀례가 멋진여성으로 탈바꿈 할 것이라는 걸 예측할 수 있었다.​ 배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적극적이고 강한 여성으로 그 시대의 당당했던 여성상으로 그려질 것 같았다.
 
그렇게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두 사람은 진정한 부부의 연을 맺게 된다.
 
"쌀례 씨. 아니, 성례 씨."
"예? 예."
"나하고, 혼인해 주시겠습니까?"
혼인한 지 7년 만에 남자는 묻고 있었다. (1권 280p)
 
하지만 그렇게 단란했던 것도 한 때의 일일 뿐, 한국전쟁으로 쌀례는 선재와 헤어지게 된다.​
일제시대, 한국전쟁​ 그리고 전쟁이후의 시기까지. 이 책에서 취하고 있는 시대적 배경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쌀례는 그 중심에 서 있었다.
​그 파란만장한 삶을 뭐라 말할 수 있을까? 쌀례 이야기를 통해 그 시대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그 시대 사람들의 고난을 잠시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
일제 강점기의 막바지, 6.25 피난길 그리고 노아의 방주. 돈과 권력으로 다른 사람의 인생을 조종하는 사람들...
그 혼란한 시기. 쌀례는 그래도 꿋꿋하고 당당하게 살아남았다.

 
그건 하소연이 아니라 쌀례에게 자랑이고 무용담이며 혹은 경고였다. (1권 513p)
살기 위해 살아가기 위해 미용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쌀례. 그 시절 사치를 조장한다는 뒷말을 들으면서도 쌀례는 열심히 살아갔다.
다시만난 찬경에게 이겨냈다고 담담하게 말하며...
 
그런데 1권 후반부부터 짠내나기 시작하는 남조 윤찬경은 '쌀례 이야기'의 아련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단단히 한 몫을 했다.
아씨마님인 쌀례를 통해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되지만 그의 출생부터 비뚤어진 상황은 찬경을 계속 몰아붙인다.
거렁뱅이로 살다 쌀례의 서방님을 대신해 사지에 갔다오고 그 빚을 받기위해 찾아간 곳에선 다시 거부당한다. 그 후 입대하여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도 살아돌아와 서방님을 잃은 쌀례를 보살피려 하지만 강력한 거부에 찬경은 밀려나기만 한다. 거침없고 저

 

돌적인 성격이지만 쌀례 앞에서 한없이 약해지던 그런 찬경의 모습은 아련하게만 보였다.
 

 
쌀례가 마음을 받아주는 것 까지는 바라지 않았지만 찬경이 조금 더 행복해졌으면 했던 나에겐 소설을 읽는 내내 계속 찬경이 생각났다.
중반부부터 증발해버려 비중이 확 줄어든 선재의 탓도 있겠지만 나는 선재보다 찬경이 더욱 매력적인 인물로 보였다.

소설을 읽으면서 중간중간 이런 생각이 계속 들었다. 
무슨 고생을 얼마나 더 하려고 아직 1권이지?라는 생각. 그만큼 치열한 삶의 기록을 엿보는 느낌이 들었다.


 
휴전 이후 쌀례는 혼자 아이와 살기위해 여자를 포기했다. 괜찮은 여자 같은건 필요없다고..
그 때의 세상에는 여자라는 사실이 저주같을 때였다. 남자들이 많이 죽고 살아남은 남자들은 살아남은 여자들을 약간의 돈, 혹은 쌀만 있으면 얼마든지, 누구든지 품에 안을 수 있다고 하는 세상이었다. 남편 없는 젊은 여자, 애 딸린 과부는 가책 없이 희롱할 수 있는 존재였다. (1권 520p)

쌀례가 힘겹게 이끌어가는 이야기는 ​2권 초반부부터 주춤거리기 시작한다. 쌀례가 사고로 기억을 잃어버린 것.
때문에 물러터진 것처럼 갑갑한 면도 보인다. 찬경과 함께 지내면서 꽤 괜찮은 남자라고 생각하게 된 것도 그렇고... 다시 검사가 되어 복귀한 선재를 보면서도 누군지 못알아보지만 어쩐지 익숙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렇고...
후반부 쯤엔 기억을 되찾지만 쌀례가 기억을 잃은 후부터는 이야기가 좀 늘어지는 느낌이었다. 찬경과의 이야기가 계속 나와서 오히려 찬경을 더 안쓰럽게 만들기도 했고...

기억을 되찾고 다시 마주하게 된 쌀례가 두 남자를 보며 한 첫 마디
 
"...... 식사들은 하셨어요?" (2권 364p)
지독히 쌀례다웠다. 평생 쌀알 모자라는 법 없이 풍요롭게 살라는 뜻을 담아 붙여진 아명이었지만 그만큼 그녀와 어울리는 이름이 없었다.
​쌀례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윤기흐르는 쌀밥이 생각났다. 어려웠던 시기. 그 때 따뜻한 밥 한 그릇은 굶주린 영혼의 위로였고 살아갈 힘의 원천이었다.

아씨마님. 쌀례 밥순이 성례. 한 여자를 일컫었던 모든 단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조왕신의 부엌에 정안수를 떠놓고 기도하고 밥을 하면서 힘을 얻었던 쌀례는 어쩌면 그 시절 가장 강한 여성이 아니었을까?

2권에서 쌀례의 기억상실 부분이 아쉬웠지만 가슴먹먹한 여운이 남았던 책이었다.

경이 오라버니 찬경도 그렇고 쌀례도 선재도 하나같이 먹먹한 감정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그들에게 섣불리 동정심을 느낄 수는 없었다.
안됐다고 말하기에는 열심히 살았던 그들에게 실례가 될 것이기에...

그리고 작가후기​에 나왔던 한 문장

'그 어두운 시절이 누군가에겐 빛나는 청춘의 한 자락이었겠구나'

쌀례이야기에 딱 맞는 정의같았다. 힘든시절이 누군가에게는 빛나는 청춘이었던 것 처럼. 그 시절 쌀례의 이야기는 마냥 암담한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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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여고 탐정단 : 탐정은 연애 금지 블랙 로맨스 클럽
박하익 지음 / 황금가지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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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만 주십시오! 무엇이든 해결해 드립니다.”
지상 최고 똘기 충만한 여고생 탐정단이 온다!

 

한국형 학원 미스터리 소설 '선암여고 탐정단'의 두 번째 시리즈 탐정은 연애금지!

드라마의 원작소설로 유쾌발랄한 여고생 탐정단일 것이란 기대를 안고 시작했습니다. 이름그대로 똘기 충만한 여고생들의 유쾌한 이야기였어요.

첫 번째 시리즈인 방과후의 미스터리는 읽어보지 못했지만 읽기 불편하다거나 그런건 전혀 없었어요. 오히려 전편을 안 본 것에대한 아쉬움이 짙게 남았습니다. 그만큼 재밌게 읽었답니다.

 

선암여고 탐정단의 두번째 이야기는 기숙사 여학생 귀신 사건, 원위크 걸그룹 사건, 돌아온 책가방 사건 이렇게 세 가지의 사건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탐정단의 리더 미도, 소심하지만 다양한 잡학지식에 능한 하재, 골수 모범생 채율, 붙임성 있고 시원시원한 탐정단의 얼굴마담 예희, 약간 둔한면이 있는 행동파 성윤.

개성넘치는 탐정단의 다섯 멤버들과 함께하는 이야기는 시간가는 줄 모를정도였어요. 특히 첫번째 에피소드부터 작가님의 위트넘치는 문체가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했습니다.

 

'기숙사 여학생 귀신 사건'에서는 성적순으로 들어갈 수 있는 학교 내의 기숙사에서 벌어지는 일을 해결하는 탐정단의 모습이 나옵니다.

탐정단 멤버 채율이 소문이 무성했던 귀신을 목격하고, 그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하재는 신묘한 존재 카발리스트 킴으로써의 능력을 마음껏 펼치죠.

도입부에서 하재의 캐릭터가 너무 매력적인 사기꾼같이 그려져서 킥킥거리며 즐겁게 봤어요.

진골, 성골, 상류층, 중류층, 하류층, 최하류층, 교실백정같은 충격적이고도 불편한 단어들이 나왔던 이야기지만 그만큼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어서 오히려 더 공감이 많이 되었던 이야기입니다. 카발리스트 킴과 학생들간의 계급 그리고 부조리가 가득한 이야기. 분위기는 사뭇 심각하지만 그 분위기를 환기시켜주는 작가님식의 개그는 중간중간 웃음을 주면서 쉬어가게끔 배려해주는 느낌이었어요.

"여기가 호그와트였다면 네놈들은 슬리데린 기숙사였을 거야. 이번에는 또 무슨일을 꾸미는 거야?"(73p)

열심히 읽다가 이 장면에서 웃음이 터졌어요. 어쩌면 이런 공감가는 표현을! 그 밖에도 재미있는 대화들이 많았답니다.

 

두 번째 '원위크 걸그룹 사건'에서는 탐정단이 아이돌 그룹 슈가걸즈과 얽히게 됩니다. 원위크 걸그룹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해 한달여 동안 슈가걸즈와 지내면서 화려한 아이돌의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를 듣게되는 탐정단. 걸그룹 멤버인 래인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학교 내의 사건 뿐만이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활약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탐정단의 멤버들은 좌충우돌 부딪쳐가며 성장해나가죠. 여기서부터는 채율과 사진작가 라온의 미묘한 로맨스구도도 시작됐어요. (블랙 로맨스 클럽이니까요!)

 

마지막 '돌아온 책가방 사건'은 게임 중독이었던 한 소년이 실종되고 1년 후 실종되었던 소년의 책가방만 학교로 돌아오면서 시작됩니다.

이 책에서 제일 크고 위험한 사건이었죠. 그래서 탐정단의 활약도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실종된 소년이 빠져있던 게임 '헌드레드'속에서 주로 어울렸던 파티원을 만나 수사를 하기도하고 현실세계에서도 정보들을 수집해가면서 본격적으로 조사를 합니다. 그 결과 탐정단은 사건을 해결하고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이렇게 선암여고 탐정단은 5명의 여고생들이 학교 내외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접하고 그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풀어나갑니다.

책 속에 나오는 선암여고는 우리사회의 축소판이라고 봐도 좋을만큼 친숙하고도 현실적이예요. 여고생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음에도 작은 사회가 잘 녹아들어 있었다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책에 나오는 게임 세계관도 굉장히 매력적이라서 소설을 읽으면서도 게임충동에 사로잡힐 정도였습니다. 

학생은 공부가 전부다라는 어른들의 말에 의문을 던지는 듯한 선암여고 탐정단. 하지만 결코 무겁지만은 않아서 읽는 내내 유쾌한 감정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탐정단의 그 불도저같은 추진력과 호기로움은 통쾌하기까지 했어요.

 

작가님이 바라본 10대 소녀들의 세계 또한 위화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민감하기 쉬운 고등학교 2학년은 문과와 이과로 나뉘고 점점 미래에대해 생각해야 할 때죠. 이런 점은 선암여고 탐정단의 세 가지 에피소드에서 공통적으로 다뤄지고 있습니다. 탐정단의 멤버들은 각자 현실에 아프게 부딪쳐가며 성장해나가요. 왕따였던 하재가 카발리스트 킴이라는 이름을 빌어 또래 친구들 사이로 뛰어들고 연예인을 꿈꿨던 예희가 원위크 걸그룹 사건을 통해 진정한 자신의 꿈을 찾는 것, 채율커플과 미도커플의 감정변화 등 탐정단이 서로 투닥거려가며 성장해 나가는 모습은 읽는 내내 뿌듯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그밖에도 블랙 로맨스 클럽이라는 이름을 달고나온 책 답게 커플들의 풋풋함도 엿볼 수 있었어요. 군대에 가 있는 동안 채율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사인한 사진을 동봉해 가치있는 사진이니 반송하는 대신 잘 받아챙겨서 경매사이트에 내놓으라는 말을하는 라온을 보고 채율,라온커플의 귀여운 행동에 웃음짓기도 했어요. 제목이 탐정은 연애금지이지만 이렇게 간질간질한 연애담이 적절히 나옵니다. 아마 다음권이 나오면 모두의 관계에 더 진전이 있지 않을까요..?

 

선암여고 탐정단은 어떻게 보면 지극히 평범하고 친근한 사건들과 인물들이기에 깊은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 같아요. 책장이 술술 넘어가서 에피소드가 더 없다는 게 아쉬웠습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읽고 책을 덮어야지.. 하다가 책 덮기가 굉장히 힘들었어요. 다음 이야기가 나올 때까지 목이빠져라 기다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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