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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보세요
커트 보니것 지음, 이원열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2월
평점 :
- 보니것 입문용으로 추천
- 쉽게, 하지만 작가의 특징은 그대로
커트 보니것의 작품세계를 말하는 대표적인 키워드는 '블랙 유머'이다. 약간은 허술한 듯한 (그래서 더 혼란스러운) 플롯, 허당끼 있는 개그, 그러다가 문득 날카롭게 빛나는 풍자가 특징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개그를 재밌다고 받아들일 독자층이 두텁지는 않을 것 같다는 의문을 늘 품고 살았다. 얼마 전 독서모임에서 대표작인 《고양이 요람》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참 많은 분들이...힘겨워 하셨기도 했고....
그럼에도 작년에만 총 세 종의 작품이 출간되었다는 건 보니것만의 독특한 정서를 받아들이고 즐기는 사람들이 많기는 하다는 뜻이겠지. (다들 어디있나요....만나고 싶어요...)
그 중에서 작년에 마지막에 출간된 책이 바로 《카메라를 보세요 Look at the birdie》!
미발표 단편집이고, SF적인 작품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는 소개글부터 보고 읽기 시작했는데, 서문부터 약간...응?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작가 경력 초창기에, 장편이 출간되기 전에, 대중 잡지를 대상으로, 생계를 위해 판 단편들이라고?
이런 이야기를 도입부부터 깔아놓고 가는데는 이유가 있었다.
...전체적으로 보니것 치고는 밍밍하고 좀 심심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거든.
하지만 책장이 휙휙 잘도 넘어가고, 이 양반 특유의 한 방은 모두 갖춘 단편들이다. 의외로 서민적인 이야기가 많고, 악인의 면모를 묘사할 때는 얼마 전 읽은 에드거 엘런 포 처럼 으스스하고 기분나쁜 묘사가 많다. 약간 찐득한 마술같은 느낌이 들어서 신선했다. 게다가 해피 엔딩(적어도 긍정적인 엔딩)도 있다!
작품별 짤막한 평은 아래에.
작품별 짤막한 평은 아래에.
대표적인 SF적 단편은 이야기는 수신자의 무의식을 악의적으로 파고드는 장치 '비밀돌이'에 대한 이야기, <비밀돌이>와 개미만한 외계인의 도착을 그린 <작고 착한 사람들>, 약 한 방울이면 진실을 다 털어놓을 수 있다는 <에드 루비 키 클럽> 정도를 꼽을 수 있겠다. <거울의 방>은 최면술사를 체포하는 과정을 다루었는데, 과학소설보다는 환상소설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지만, 정신 의학에 최면을 도입한 것이 집필 당시 핫한 트렌드 였다고.
<푸바> 도저히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 된 일상에 새롭게 열린 에덴
<지붕에서 소리쳐요> 일상과 이웃을 소재로 소설을 써 대박이 났으나, 부메랑처럼 일상을 망가트린 부부의 이야기
<셀마를 위한 노래> 소시민과 평범한 사람의 힘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보니것식 유머
<안녕, 레드> 씁쓸한 결말, 제일 보니것 아닌 듯 ㅎㅎㅎ?
<작은 물방울> 습관에 대한 유쾌한 블랙 코미디
<개미 화석> 소련의 사상검증과 문화 압제를 비판
<신문 배달 소년의 명예> 살인범 수사하러 가서 할 일을 까먹은 형사 양반
<카메라를 보세요> 정말 훌륭하신 전문직 종사자 양반의 기술.
<우주의 왕과 여왕> 보니것다운 로맨스!!!
<설명 잘 하는 사람> 복수인가 파멸인가...?
평소 커트 보니것의 팬을 자처하지만, 은근히 많은 (장편 소설'만' 14권) 작품 수 덕에 장편은 반 밖에 못 읽은지라 아...빨리 더 읽어야지,하고 늘 조바심만 냈다. 미발표 단편집이 번역되어 나온다고 하길래 아니 이 책이 왜 벌써 나오나, 소개할 책이 훨씬 더 많을텐데...하고 국내 출간작을 다시금 찾아본다. 내가 갖고 있는 책과 국내 출간된 보니것의 작품 목록이 은근히 빗겨나간다. 번역서도 상당히 많이 나왔는데, 아아....아직도 전작을 다 읽으려면 멀었구나 싶어 아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