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피아니스트이자 작가이기도 한 제레미 덴크의 책. 처음 피아노를 배우던 시절에서 대학원을 졸업할 무렵까지, 학생 시절을 위주로 쓴 회고록이다. 덴크는 어린 시절부터 주목 받았지만 섣부르게 명성을 좇지않고 박사과정까지 거치며 꽤 오랜 기간 배움의 길을 걸었다. 다 읽고보니 한글 제목이 퍽 잘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었다.학생 시절의 에세이가 중심이지만 피아노 강사 경력을 살려 배움과 가르침 두 가지를 책 한 권에 담았다. 약간은 욕심이 많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미국에선 이정도 볼륨의 책은 흔하니까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다. 1교시 화성, 2교시 선율, 3교시 리듬이라는 큰 주제 아래 홀수 장에선 학생 시절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에세이 형식으로 들려주고 짝수 장에선 음악적 지식을 독자에게 전달한다. 장마다 제시하는 플레이리스트가 있고, 설명은 플레이리스트에 수록된 작품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책 마지막에는 부록으로 플레이리스트로 고른 작품들을 감상할만한 음반이나 영상을 추천한다.홀수장은 애호가들 모두가 궁금해할 만한 연주자의 성장담이라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었는데, 짝수장에선 화성 부분이 좀 어려워서 음악을 여러 번 틀고 따라 들었다. 직접 연주를 하는 사람이라면 편하게 알아들을 부분이지만 듣기만 하던 사람에겐 확실히 선율이나 리듬과는 살짝 다른 차원일지도. 가장 좋았던 부분들은 공부하는 작품에 대해 작가 특유의 감성적 필력으로 적어내린 단상들. 줄을 많이 그었는데 다 읽고 보니 슈베르트에 대한 이야기에 줄을 많이 쳤다. 2018년 내한 리사이틀을 예매했다가 가지 못 했는데 그날 프로그램이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 D960이 있던 것도 기억나고, 워낙 슈베르트 작품들을 좋아하니까. 451쪽화성은 순식간에 장조에서 단조로 넘어갈 수 있다. 불빛이 깜빡이듯 조를 바꾼다. 행동이 돌보다 물에 더 가깝다. 선율은 이보다 안정적이지만 자기애가 강해서 몇 번이고 계속 흥얼거린다. 그러나 리듬은 붙들 수 있는 무엇, 기댈 수 있는 무엇을 제공한다. 변화에 저항하면서 따분함에도 저항한다. 클럽에서 춤추는 친구들을 보면 비트가 그들 주위에 보호의 공간을, 힘의 장을 만드는 것을 볼 수 있다. 덕분에 그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다. 구조가 피난처를 만들면서 자유를 허락하는 것이다. 그리고 음악이 우리가 잠시나마 그 안에서 지낼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겠는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쓴 리뷰이지만 책 진짜 추천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