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에반스 - 재즈의 초상 현대 예술의 거장
피터 페팅거 지음, 황덕호 옮김 / 을유문화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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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쪽짜리 양장본 가득히 빼곡하게, 빌 에반스의 커리어를 차곡차곡 기록한 대장정. 

빌 에반스의 탄생에서부터 학창시절, 고전음악을 전공하다가 재즈 연주자로 들어선 과정, 군 제대 후 전문 재즈 연주자로 진로를 바꾼 것을 시작으로 사망시까지의 연주 일정과 녹음, 발매한 음반에 대해, 연대기 순으로 아주 상세한 자료를 담고 있다. 게다가 전문 연주자답게 이론과 기법에 대한 해설도 곁들인다.


락 음악을 가장 즐기고, 고전 음악 중에서는 피아노 독주나 협주를 가장 즐기고, 재즈는 이제 걸음마 수준이지만 그나마 빌 에반스가 가장 친숙한지라, 자신만만하게 책장을 펼쳤다.

하지만 8장 즈음부터는 읽는 내가 조금씩 헤매기 시작한다.

마일즈 데이비스와의 만남, 첫번째 트리오를 결성한 과정 등의 빌 에반스의 "이야기"도 흥미로웠지만, 빼곡한 "정보 전달"에 치중하는 책인가? 싶어 괜히 부담되고, 아직도 한참 남은 페이지가 버거워지기 시작하는 것 아니겠는가.

누구 누구와 트리오를 구성해 어느 레이블에서 음반을 냈다거나 어느 공연장 라이브를 녹음했다거나 그 음반들이 어떤 평을 받았다거나....끝없이 반복되는 정보성 이야기들을 읽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

"이 책 전체가 라이너 노트잖아?"

그렇다. 150장이 넘는 디스코그라피를 전부 정리하며 기존의 오류를 꼼꼼히 살피고, 상당수의 작업 과정을 확인해 책에 담으며 빌 에반스와 동료들이 연주한 "소리"를 글로만 설명한 것이 아니라 "음반을 당장 가져와 들으면서 읽으라"는 것이 저자의 의도이겠구나 싶었다.

그래, 이 책은 700쪽짜리 라이너 노트(해설지)구나.

그래서 일단 책을 내려놓고, 오디오를 켰다. 그리고 책장을 천천히 넘겨가며, 한 페이지에 소개된 여러 곡 중에 저자 페팅거가 유달리 칭찬한 곡이나 자세히 설명한 곡을 찾아 듣기 시작했다. 게다가 항상 바흐나 베토벤을 탐구하며 피아노 연주의 원류를 거슬러 올라 소리를 탐구하던 연주자를 고전음악 연주자가 나서서 집필을 했으니! 음악을 들으며 낯설게 느껴지던 연주 기법과 악흥 구성에 대한 설명을 들으니 잘 읽히지 않던 문장들이 훨씬 더 부드럽게 들어왔다.


저자의 노고에 감사한다는 말이 참 뻔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 책을 읽고서는 정말, 피터 페팅거의 꼼꼼한 조사와 엄청난 열정에 깊이 감사한다. 특히 빌 에반스의 골수 팬부터 다양한 층위의 리스너들을 만족시킬만한 책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무슨 앨범부터 들어야 할 지 모르겠거나, 음반을 들었더니 좋기는 좋은데 뭐가 좋은지 설명하기 힘든 초보 감상자에게도 훌륭한 지침이 될 책임은 보장한다. 일단 나부터도 지난 며칠간 평소에 자주 듣지 않던 에반스의 음반들을 구석구석 살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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