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프리즘
손원평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9월

보는 각도에 따라 빛이 자리를 이동하며 영롱하게 반짝이는 책 『프리즘』.

책표지가 너무너무 이뻐서 한참 이리 돌렸다 저리 돌렸다하며 반사되는 빛을 구경했더랬다.

『프리즘』이라는 제목과 너무 잘 어울리는 책표지가 아닌가 싶다.

물론 책내용도 마찬가지인데, 네 남녀의 만남, 서로를 향한 마음, 사랑, 그리고 이별을 다양한 빛깔로 비추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제일 처음으로 등장하는 '예진'은 조심스러운 것 같아보여도 좋아하는 사람에게 그 마음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스타일이다. 주변 사람들이 딱봐도 '예진이는 걔를 좋아하는구나' 하고 알 수 있을만큼.

두 번째로 등장하는 '도원'은 언제나 시작과 동시에 끝을 생각하는 사랑을 한다. 그래서 새로운 사랑을 두려워하고 조심스러워한다.

세 번째로 등장하는 '호계'는 사랑을 온전히 마음 속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어 한다. 그래서 온힘을 다해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해하기도 하고, 자신의 감정을 잘못 진단하는 경우도 있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재인'은 겉보기엔 자유로운 영혼처럼 보이지만 실은 대단히 조심스럽고 의외로 얽매인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누가봐도 안정적이지 않은, 아슬아슬한 연애와 사랑을 이어나가는 상황.

공통점이라고는 눈씻고 찾아볼 수 없는 네 남녀는 우연히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남녀로(예진&도원), 베이커리 사장과 직원으로(재인&호계), 오픈 채팅방의 정모에서(호계&예진), 그리고 과거 음악 밴드를 통해서(재인&도원) 각각 서로 알게되고, 후에 공연관람에서 다같이 마주치게 된다.

빛의 각도에 따라 선명도와 색의 물결이 바뀌는 프리즘처럼, 공연관람 전후로 그들의 감정 색깔은 엄청난 변화를 겪는데....

예진은 빛을 무지개로 만들어내는 그 마법 장난감이 좋았다.

대청소를 한 다음날이었다. 예진은 한참 프리즘을 찾다가 그것이 높은 선반 위에 우뚝 선 탑처럼 빛나고 있는 걸 발견했다. (중략) 프리즘은 아슬아슬하게 덜컹대며 예진 쪽으로 조금씩 자리를 옮겼다. 이제 다 됐다고 생각한 순간, 악- 비명 소리가 먼저 터져나왔다. 잔혹한 타격감에 발이 얼얼했다. 이어서 뜨끈한 느낌이 났다. 프리즘의 날카로운 모서리가 수직으로 긁으며 발등 위로 떨어진 거다. (중략) 그렇게 애정을 쏟았는데 돌아오는 건 도리어 상처와 아픔이라니. 그때 느낀 감정은 어른의 언어로는 배신감이었다. 너무 날카롭고 아름다운 건 결국 속성을 뒤바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걸까. 답없는 상념만 남았다. 그 뒤 예진은 프리즘을 두 번 다시 가지고 놀지 않았다. p12~13

여름을 인연으로 다시 새로운 여름이 오기까지 그들은 서로를 알아가고, 사랑하고, 아파하고, 치유하면서 옛 감정의 색깔은 날려버리고 새로운 감정의 색깔을 마음에 새로 입힌다. 주인공들이 마음 아픈 과거를 벗어나 한단계씩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누군가에겐 '한철'로 지나갈 수 있는 사랑일지라도 다른 사람에겐 '영원'일 수 있다는 것을 보면서 사랑의 교훈을 한 번 더 되새길 수 있었고, 서로가 뿜어내는 감정의 색깔이 이렇게나 다를 수 있구나 하는걸 이 책을 통해 오랜만에 느낀 것 같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하나씩 꺼내든 물건들을 늘어놓다가 예진은 피라미드 모양의 프리즘을 발견하고 호흡을 멈췄다. 기억 속 그 모양 그대로, 아름답고 날카로웠다.

예진은 프리즘을 조심스레 집어들어 흰 벽에 대고 햇빛을 통과시켰다. 작은 조각이 뻗어내는 아름다운 빛깔. 길고 짧은 파장의 빛이 벽 위로 자연스럽게 용해되어 색깔은 분명하지만색 간의 경계는 흐릿한 부드러운 무지개를 만들어낸다. p260~2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