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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 딕 1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83
허먼 멜빌 지음, 황유원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8월
평점 :
어떤 책은 알게된 순간부터 확 꽂혀서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내겐 여러 책 중 하나가 바로 『모비 딕』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펼치기 힘든 분위기를 풀풀 풍겨대는 통에 '언젠간 꼭 읽어봐야지' 라는 생각만 하고 미뤄두고 있던 책이었는데, 너무 감사하게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 리꿍 도서로 책그늘님과 함께 분량을 나눠가며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이렇게 완독까지 마무리 할 수 있게 되었다.
『모비 딕』은 자신을 '이슈미얼'이라고 불러달라는 한 남자가 흰 고래 모비 딕에 다리를 잃은 후 복수에 미친 에이해브 선장이 이끄는 포경선 피쿼드호에 승선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다양한 모험과 사건들을 다룬다. 뿐만 아니라 고래의 두개골, 분수공, 턱, 이빨, 꼬리, 이마 지느러미 등 여러 부위의 해부학적 특성과 고래의 서식지, 고래의 고고학적· 화석학적·원시적 관점 등 고래학의 세세한 정보들과 고래사냥에 대한 기술적인 내용들까지 엄청 광활하게 다루고 있는 책이다.
그래서 소설 같기도 하면서 학술서 같기도 하고, 재밌어서 쭉쭉 넘어가다가도 장광설에 턱턱 멈춰지기도 한다.
어원과 발췌문으로 시작하는 도입부를 지나서 자신이 선원으로 바다에 나가는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하는 화자 이슈미얼과 인사를 나누고, 이슈미얼이 물기둥 여인숙에서 만난 작살잡이 퀴퀘그와 함께 피쿼드호에 올라 출항하면 그때부터 진짜 항해 모험이 시작되는데, 모비 딕에 대한 설명과 에이해브 선장의 등장은 책의 중간지점부터 나오기 때문에 약간의 인내심이 요구된다.
에이해브 선장은 피쿼드호의 선원들을 모으고 누구라도 모비 딕을 먼저 발견하는 자에게 스페인 금화를 주기로 약속하며 모비 딕을 죽이기 위한 복수심을 드러내는데, 사실 이 부분만 봤을 때는 모비 딕이 그냥 항해하고 있던 에이해브 선장네를 공격해서 다리를 앗아간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진실은 먼저 덤비고 공격한건 에이해브 선장이었고 모비 딕은 자신이 살기위해 인간을 죽일 수 밖에 없었던 것.
모비 딕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 집(바다)에 함부로 쳐들어와서 자신을 공격하고 죽이려 하는 이상한 생물체들에게 공포심을 느끼는게 당연하지 않을까? 그래서 그들에게 겁을 주거나 공격하여 공포심을 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인간의 욕심 때문에 평화롭게 지내던 모비 딕을 포함한 많은 고래들에게 피해를 주고 스트레스를 주고 죽음을 안겨주고...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아직도 고래잡이가 허용되는 나라가 있다는게 마음아프게 다가왔다.
모비 딕에 대한 집착과 복수의 광기에 사로잡힌 에이해브 선장은 선원들과 함께 모비 딕을 쫓아 대서양과 인도양을 지나 북태평양까지 간 다음 적도 부근에서 모비 딕과 마지막 전투를 벌이다 죽음에 이르고, 침몰한 피쿼드호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이슈미얼을 보여주며 장엄한 항해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방대한 고래학과 고래잡이 기술들 설명 못지않게 에이해브 선장과 모비 딕의 추격전 및 전투, 선장과 선원들간의 다툼, 포경선끼리의 기싸움, 인간의 욕심에 대해서도 잘 표현되어 있는 『모비 딕』.
이 모든 이야기는 포경선을 탄 경험이 있는 작가 허먼멜빌이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