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아리랑 1
정찬주 지음 / 다연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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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40주년을 맞이했다.

매해마다 뜻깊은 날이지만, 10주년 단위로 딱 떨어지는 날이면 더 특별한 느낌을 갖는 것 같다.

이 책은 그런 40주년을 맞이하여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출간된 소설이다.

읽으면서 얼마나 숨차고 답답하고 먹먹하고 손에 땀을 쥐게 하던지.

이경철 문학평론가님의 서평 내용처럼 '이게 기록인가, 소설 작품인가' 묻게 하면서도 개결한 맛과 품위가 뭔지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광주 아리랑』은 5월 14일부터 5월 27일, 즉 14일간의 광주민주화운동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수많은 인물들과, 현장, 그리고 시간대와 날짜별로 짜임새있게 그리고 숨 가쁘게 그려나간다.

보통 주인공은 한명 내지 다섯 내외로만 두고 주인공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가며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편인데(예를들면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루고 있는 영화 '택시운전사' 같은 경우처럼.) 이 책은 나오는 모든 인물이 주인공이다.

등장하는 인물만 해도 식당 주방장, 요리사, 시장 상인, 운전수, 페인트공, 용접공, 가구공, 선반공, 방직공장 여공, 예비군, 예비군 소대장, 대대장, 장교, 대학교 교직원과 수위, 비운동권 학생, 영업사원, 재수생, 구두닦이, 농사꾼, 기자, 신부, 목사 등 엄청 다양하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까닭은 80년 5월에 계엄군과 맞서 싸웠던 한 분 한 분을 '광주 5.18 역사로서의 소설'에 주인공이자 증인으로 영원히 기리고 싶었던 작가의 마음이 숨겨져 있다.

그 마음을 알고 봐서 그런지, 14일동안 수없이 죽어간 많은 주인공들을 보며 마음이 너무 힘들고 괴로웠다.

『광주 아리랑』은 12.12사태 이후 전두환이 보안사령관 등 요직을 맡으면서 잠복해 있던 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빗발쳤고 '계엄령을 철회하라' , '전두환 물러가라', '정치일정 단축하라', '노동자 생존권 보장하라', '군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라' 등을 내걸며 시위가 봇물 터지듯 일어난 상황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광주에서는 민주화를 위한 집회인 '민주성회'가 한창이었고 횃불시위 행렬이 도청 광장에서 출발할 무렵, 전북 금마 7공수여단에서는 공수대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회식을 하면서 "작전은 화려한 휴가처럼! 건배!"를 외치고 있었는데...

'작전은 화려한 휴가처럼'이라고 건배사를 한 것은 고된 시위진압 훈련을 끝냈으니 휴가를 즐기듯 시위 시민, 학생을 상대로 산짐승몰이 방식으로 인간 사냥에 나서자는 말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진압은....

끌려온 학생들은 모두 상의가 벗긴 채 허리띠를 풀고 신발을 신지 않은 전쟁포로의 몰골이었다. 얼굴이 부은 학생, 이마에 멍이 든 학생, 콧대가 주저앉은 학생, 머리가 찢긴 학생, 다리를 저는 학생 등을 보는 순간 서명원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p174

금남로 거리의 공기는 매캐했다. 특히 18일 이후 도청 앞 공기는 더 심했다. 눈이 따갑고 목구멍까지 메스꺼웠다. 최루탄 가스가 원형 분수대 주변을 스멀스멀 맴돌았다. p224

죄없는 학생들을 총칼로 찔러 죽이고 몽둥이로 두들겨 트럭으로 실어가며, 부녀자를 발가벗겨 총칼로 찌르는 놈들이 이 누구란 말입니까? 이들이 공산당과 다를 바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중략) 죄없이 학생들과 시민이 수없이 죽었으며 지금도 계속 연행 당하고 있습니다. 이 자들이 있는 한 동포의 죽음은 계속될 것입니다. 지금 서울을 비롯하여 도처에서 애국 시민의 궐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p246

11공수여단 61대대와 62대대 공수부대는 특공조를 편성 공격해 버스 유리창을 깨부순 뒤 차 안에 최루탄을 던지며 운전수와 시위 시민 들을 끌어냈다. 현장에 붉은 피가 뿌려졌다. 그래도 시민군중은 공수부대 저지선 20미터까지 나아갔다. 이제는 공수부대원들과 시민들이 육박전을 벌였다. 시민 군중 가운데 부상자가 수십명 속출했다. 오후 7시 45분쯤에는 전투용 장갑차가 나타났다. p290

그때였다. 바퀴 달린 시위 장갑차 한 대가 도청 분수대 쪽으로 달렸다. 장갑차 뚜껑을 열고 한 청년이 용감하게 상체를 드러냈다. 머리에 흰 띠를 두른 청년은 윗옷을 벗고 태극기를 흔들었다. 도청 광장을 지키고 있던 공수부대원들이 그 청년을 향해 가차 없이 집중사격을 했다. 목에 총을 맞은 듯 청년의 머리가 푹 꺾였다. p341

정말 지옥이 따로 없는 광경이었다. 부상자들을 싣고 오는 차량으로 병원 앞 도로가 차량통행이 불가능할 정도였다고 적혀있다.

게다가 피가 부족하여 헌혈을 해 달라고 호소하는 헌혈차가 돌아다니기까지 했다고 하니. 정말 얼마나 심각했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정말 책 속의 모든 사건들과 인물들이 진실을 밝히고 전하기 위해 아우성을 보인다.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소설들이 참 많은데 이 책도 그 소설들과 함께 길이길이 기억되어 그 날의 진실을 계속 전해주었으면 좋겠다.

시민들은 구호를 외쳤고 학생들은 훌라송을 불렀다.

그러다가도 시민과 학생이 이심전심으로 마음이 모아지면 아리랑을 목 놓아 합창했다.

아리랑은 날마다 거리의 분위기에 따라서 달라졌다.

민주화를 위한 평화집화 때는 학생들이 열망의 아리랑을 불렀고, 공수부대의 만행이 극에 달했을 때는 시민들이 공포의 아리랑을 불렀다.

또 공수부대와 총격전을 치를 때는 시민군들이 분노의 아리랑을 불렀고, 공수부대의 총에 시민들이 희생당했을 때는 부모 형제들이 통곡의 아리랑을 불렀다.

그런가 하면 공수부대를 물리쳤을 때는 시민 모두가 감격의 아리랑을 불렀고, 도청을 탈환했을 때는 해방의 아리랑을 불렀으며, 계엄군이 다시 진입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자 탄식의 아리랑을 불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주시민들은 도청 광장에 다시 모여 부활의 아리랑을 부를 날이 올 것이라고 믿었다.

2권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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