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한중록 (패브릭 양장) - 1795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혜경궁 홍씨 지음, 박병성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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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록은 1795년(정조 19년) 혜경궁 홍씨가 지은 회고록으로 그녀의 출생부터 세자빈으로 간택된 일화, 궁중 이야기, 그리고 정적들의 모함으로 가족이 화를 입게 된 전말 등을 기록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 당시 사도세자와 영조의 사이, 그리고 사도세자가 당한 참변의 진상을 폭로한다는 점에서 역사의 보조 자료적 가치가 높은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는 책이다.

혜경궁 홍씨가 적은 한중록의 문장과 표현들은 궁중의 여인답게 아주 고상하고 우아하고 또 순하게 적혀있다. 하지만 드문드문 보이는 억울함, 안타까움, 슬픔들을 통해서 사실은 할 말이 엄청 많았지만 참고 또 참으며 내용을 많이 걸러내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9월 28일 초간택 후, 10월 28일 재간택 날 세자빈으로 뽑힌 혜경궁 홍씨. 당시 어전에 올라갔을 때 영조가 구슬발 안으로 들어와 어루만져 사랑하고 기뻐했다고 한다.

그 후 정월 초아흐렛날에 세자빈으로 책봉되고 11일에 혼인하여 사도세자와 부부가 된 그녀는 영조, 인원왕후, 정성왕후, 선희궁, 시누이들의 모든 사랑을 받으며 지낸다.

궁중소설이나 드라마를 보면 항상 시기, 질투, 배신 등의 암투가 난무하는데... 혜경궁 홍씨는 들어온 순간부터 모두의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는게 새삼 신기하면서도 놀라웠다.

이제 사도세자 이야기를 잠깐 할까 하는데, 그는 영조 11년, 을묘년 정월에 태어났다. 태어났을 때부터 기질과 용모가 뛰어나고 특이하였다고 혜경궁 홍씨는 기록하고 있는데~ 넉 달 만에 걷고 여섯 달 만에 영묘의 부름에 대답하고, 일곱 달 만에 동서남북을 가리켰으며, 두 살에 글자를 배워 60여 자를 썼단다. 이 이야길 하면서 혜경궁 홍씨는 은근슬쩍 이런 말도 기록하고 있다.

경모궁(사도세자)께서는 체구가 커서 웅장하시고 천성이 효성스러우며 우애가 있고 총명하시니, 만일 부모님 곁을 떠나지 않게 하여 모든 일을 자애와 가르치심으로 병행하엿더라면, 너그럽고 어진 도량과 재능의 성취가 참으로 놀라웠을 것이다. 하지만 일이 그렇게 되지 못하고 일찍이 멀리 떠나 계신 것이 작은 일이 크게 되어, 마침내 말하기 어려운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것은 천운의 불행함과 국운의 망극함이며, 사람의 힘으로는 도무지 어쩔 수 없으려니와 나의 원통함은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p84

영조는 사도세자를 멀리 떨어진 저승전에 기거하게 하고, 정무 보고를 하는 날 신하들 앞에서 망신을 주고, 신하가 올린 상서를 대리청정하게 해서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면 제대로 결단도 못내린다며 꾸중하고~ 반대로 결정하면 혼자 결정내렸다고 꾸중하고...

기대가 컸던 만큼 너무 옥죄고, 엄하게 대했던 것 같다. 그리고 자신의 기대에 못미치자 깔보고, 망신주고, 차별하고 말이야!! 내가 사도제라도 어긋났을 것이다. 정말 영조는 아버지로서 최악의 아버지였던 것 같다.

결국 마음의 병을 얻어 미쳐날뛰다, 뒤주에 갇히게 된 사도세자..

8일 후 뒤주 안에서 세상을 떠나게 된다.

목숨을 끊으려 하였지만 아들 정조를 위해 참고 참아 목숨을 보전하고 하늘만 부르짖었던 혜경궁 홍씨.

모든 비극을 지켜봐야했던 그녀의 삶을 돌아보며 참 마음이 많이 아팠고, 참 슬픈 역사였구나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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