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황후 시대물이 이렇게 재미있을 리가 없어! 3
션 타오 지음, 김원희 옮김 / 북스피어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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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동사서독>에서 임청하의 무기는 검이 아니라 밤새 술잔을 기울이며 읊조리던 서글픈 시() 한 구절이었습니다. <영웅>의 이연걸은 진시황의 칼끝 앞에서 열 걸음 거리를 유지한 채, 칼이 아닌 시로 황제의 영혼을 압도하며 기싸움을 벌이지요.

 


<시인 황후>는 동양 판타지가 보여준 시검일체(詩劍一體)의 설정을 글자 그대로의 파괴력을 지닌 실체로 밀어붙인 소설입니다. 이 제국에서 시를 짓는 행위는 낭만적인 풍류의 영역이 아니에요. 문장 속에 담긴 감정을 물리적으로 치환하는 마법입니다. 시로 실제로 사람을 때려죽일 수 있고,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에서 풍부한 과일이 주렁주렁 열리게 할 수도 있지요.

 


때문에 이 나라에서는 어릴 때부터 시를 읽습니다.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되면 곧장 시부터 공부합니다. 아아 꽤 낭만적이지 않습니까. 한데 문제가 있어요. 여성이 읽고 쓰는 행위는 법으로 금지시켰다는 겁니다. 고대 왕국의 법이 그렇다고 합니다. 당연히 시는 남성 권력층만이 향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태생적 불리함을 딛고 황태자의 후궁이 된 흙수저 웨이가 제국 최고의 시인 테렌의 지속적인 학대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금기시된 읽기와 쓰기를 배우기 시작합니다. 지옥 같은 폭력으로부터 벗어나는 동시에 인성파탄폭력남발빌런인 테렌이 권력의 정점에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여성에게는 읽고 쓰는 행위조차 불법이고 시는 오직 권력층만이 향유할 수 있는 세계에서 문장을 읊는 일은 곧 저항이자 목숨을 건 반역입니다. 작가는 마법의 기괴한 주문 대신 언어에 온기를 불어넣으며, 시를 폭정에 대항하는 무기이자 차가운 궁정 안에서 인간성을 지켜내는 연대의 도구로 그려내지요.

 




<시인 황후>는 작가 션 타오의 데뷔작으로 소개되었지만 실은 아홉 번째 장편소설입니다. 그녀는 중국 장시성에서 태어나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주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동양의 고전 서사와 서양의 판타지 문학을 동시에 접하며 자랐고, 일곱 살이 되던 무렵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품었다고 합니다. 동서양을 넘나드는 문학적 감수성을 지닌 그녀의 본업은 컴퓨터 구조를 다루는 이공계 엔지니어입니다. 대략 10년 동안 낮에는 코드를 만지고, 밤에는 판타지 세계를 창조하는 삶을 살아왔지요.

 


하지만 일곱 살의 순수한 꿈이 책으로 출간되기까지의 여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션 타오는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선 이후, 무려 여덟 권의 장편소설을 완성했음에도 출판사들의 외면을 받으며 서랍 속에 묻어야 했습니다. 철저히 시장의 트렌드만을 쫓다가 실패를 거듭했던 그녀는, 아홉 번째 작품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시장이 원하는 글이 아니라 내가 정말 잘 알고 있는 내 뿌리의 이야기(중국 역사와 고전 시)를 쓰자고 결심합니다.

 


그렇게 자신의 정체성을 담아 쓴 <시인 황후>17개국 독자를 사로잡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여덟 번의 거절을 당하면서도 아홉 번째 책을 써 내려간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하고 싶었던 말 중에 하나는 이것입니다.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힘이 된다.” 실제로 <시인 황후>는 언어가 얼마나 강력한 힘을 지니는지를 끊임없이 상기시키는데, 로 나쁜놈 때려잡는 안티 로맨스 판타지가 궁금하다는 형제자매님들은 슬슬 거들떠봐 주시길.

 


오랜만에 영미권 벽돌 판타지 책 만드느라 즐거웠던,

마포 김 사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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