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 세븐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한희선 옮김 / 북스피어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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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의 식사 구성에 불만을 표현한 입원환자를 직원이 금속파이프로 구타하고, 병문안을 온 지인에게 병원의 현실을 알리려 했던 환자를 폭행하는 바람에 급사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병원은 사건 이전부터 병상보다 많은 환자를 입원시켰고, 치료라는 명목으로 원장 가족의 기업에서 환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했으며, 사망한 환자를 불법으로 해부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애당초 해당 병원의 원장은 내과 의사로서 정신과 의사 경력이 없었지만, 정신과가 다른 진료과에 비해 인건비가 적게 들어 이익률이 좋은 사업이라는 점에 착안, 내과에서 정신과로 변경하여 무자격으로 환자를 진료해 왔습니다. 환자를 구타하여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상근의는 원장을 포함하여 3명뿐.

 


전화 통화와 면회를 제한함으로써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던 병원 내의 각종 사건들이 세상에 드러난 건 ‘아사히 신문’의 보도 덕분이었습니다. 일본 도치기 현 우쓰노미야 시의 ‘우쓰노미야 병원’에서 발생한 정신과 환자 린치 치사 및 무자격 진료 사건은 일본 의료 역사에서 가장 대표적인 인권 침해 사건 가운데 하나입니다.

 


‘레벨 7’이라는 제목 때문에 게임을 기반으로 한 작품이라 짐작하기 쉽지만 『레벨 7』은 위 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사회파 미스터리입니다. 그것도 선악의 구도가 분명한 작품이지요. 미야베 미유키 작가는 현대물에서든 시대물에서든 등장인물을 선악으로 구별하는 것을 피해 왔다고 할까, 명백하게 나쁜 놈을 작품 속에 등장시키는 경우가 드물었습니다.



한데 『레벨 7』의 세계관은 왜 달랐을까요. 이 작품을 집필할 당시 일본에서 출간된 미스터리들 가운데 ‘불행한 성장 과정이 범행의 원인이었다’라는 식으로 범인에게 서사를 부여하는 작품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유도 모른 채 미움받는 놈이 되는 인간도 있다잔뜩 있다마치 제비뽑기에서 꽝을 뽑는 사람 쪽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처럼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모두 바보 취급당했으니까라면서 살인을 저지를까말도 안 된다결국은 전부 변명이다.”




『레벨 7』은 전화 상담원 신교지가 “레벨 7까지 가 본다, 돌아올 수 없을까”라는 말을 남긴 채 실종된 고교생 미사오를 찾는 이야기입니다. 이 수수께끼 같은 말에서 ‘레벨 7’은 ‘망각’을 의미하는 키워드이며, 미사오가 왜 굳이 ‘레벨 7까지 가보려 했는지’를 추적하는 신교지는 미야베 미유키 소설 특유의 허술한 탐정(스기무라 사부로를 떠올리게 하는) 캐릭터지요.



하드보일드 소설에서는 거액의 돈과 함께 사라진 인물을 추적하는 탐정이 직접 발로 뛰며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도시 뒤편의 부패한 권력과 도덕적 타락을 목격하지만 사회의 근본적인 부패는 해결되지 않은 채 주인공이 씁쓸함을 느끼며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죠. 『레벨 7』에서 신교지의 행동 패턴은 하드보일드 소설의 주인공이 선택하는 전형적인 형태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실 『레벨 7』을 리뉴얼해서 재출간하자고 생각한 계기가 있었습니다. 이 소설은 출간 당시 게임을 기반으로 한 소설로 인식되어 판매가 부진했습니다. 제목 때문이겠지요. 한데 곧 한국어판 계약이 만료되거든요. 선택지는 두 가지입니다. 절판시키든지, 아니면 비용을 지불하고 재계약을 하든지. 원래는 절판시킬 작정이었어요. 그리하여 절판을 앞두고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읽어보았습니다. 시작부터 긴장감이 감돌아 페이지를 넘기는 손을 멈출 수 없더군요. 과장이 아닙니다. 마치 기억을 잃은 소설 속 주인공처럼, 과거에 제 손으로 만들었던 이 작품의 줄거리가 전혀 기억나지 않아서 신작을 읽는 기분으로 라스트 신까지 단숨에 도달했습니다.



걸작이란 이런 것이구나. 시간이 지나도 전혀 색이 바래거나 퇴색하지 않는구나. 읽기를 마친 후에는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아직 미야베 미유키를 읽지 않은 분들이 꼭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절판 대신 재계약을 택했습니다. 기존에 상하권이었던 판본은 합본으로 바꾸며 판형을 다시 짜고 문장도 손을 보았습니다. 게임적 느낌이 조금이나마 지워지도록 제목은 『레벨 7』 을 『레벨 세븐』으로 바꿨습니다. 이러한 작업을 하는 내내 얼마나 즐겁던지. 봄이 도래하여 옷장에 처박혀 있던 봄옷을 꺼내 입었는데 안주머니에서 잊어버리고 있던 비상금을 발견한 기분이라고 할까. 이 비상금이 유용하게 쓰일지 허투루 쓰일지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모쪼록 유용하게 쓰일 수 있기를.



꽃 피는 봄을 맞이하며,

마포 김 사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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