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네 아빠 어딨니? - 듀나 작가 데뷔 30주년 기념 리뉴얼판
듀나 지음 / 북스피어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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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에 듀나가 있었다.

한국 에스에프의 전성시대가 도래하기 전에 듀나가 있었다. 에스에프뿐이랴. 듀나는, 김대중 선생이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고 전두환 씨가 광주 민주화 운동 유혈 진압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되던 그해부터 판타지, 미스터리, 호러 등 각종 장르의 작품을 연재하였다. 한국 장르소설의 개척자라고 불러도 무방하겠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태초에 듀나가 있었다”니 지나치게 추어올린다고 느끼는 형제자매님도 계실 듯하다. 물론 이는 과장된 표현이며 여기에는 개인사적 맥락이 숨어 있다. 아니, 숨어 있는 건 아니고 처음 얘기하는 거니까 그냥 있다고 해야겠다. 그 얘기를 한 자락 해볼까 한다.

때는 2005년, <내 이름은 김삼순>에 등장한 책 <모모>가 순식간에 20만 부 이상 팔리며 호황인 듯 보였지만 도서정가제를 둘러싼 갈등이 여전한 가운데 대형 출판사의 매출은 증가하였으나 “중소형 출판사와 동네서점들은 고사 직전(경향)”이라는 출판뉴스가 횡행하던 시절이었다.

그 무렵 나는 출판사를 창업했다. 이렇다 할 준비 없이 첫 책 하나만 들고 벌인 일이었다. 막연히 힘들 거라는 예상을 했지만 현실은 예상보다 더 지난했다. ‘언제 망할지 알 수 없는 신생 출판사’에 아무도 작품을 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판권을 문의해도 답신조차 받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듀나 작가가 쓴 게시판 글을 보게 되었다. 이러저러한 아이디어가 있어서 소설로 써볼까 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덮어놓고 듀나 작가에게 메일을 보냈다. 장황한 읍소가 담겨 있었는데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그 소설, 북스피어에서 출간하면 어떻겠습니까?” 잘 만들어 볼 테니 저한테 주세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얼마든지 출판사를 선택해서 책을 출간할 수 있을 정도의 네임드 작가가 뭐가 아쉬워서 북스피어 같은 듣보잡이랑 계약을 한단 말인가. 답장도 안 올 줄 알았다. 한데 바로 왔다, 답장이. 계약하자고. 이게 웬 떡인가 싶더라. 되풀이하지만 당시에는 뭐라도 하나 얻어걸렸으면 하는 심정으로 여기저기 오퍼를 넣을 때였으니까.

와, 신난다. 그(녀)는 ‘얼굴 없는 작가’로 여자인지 남자인지 1명인지 3명인지 지구인인지 외계인인지, 아니 이건 아닌가 하여튼 몽땅 베일에 싸인 채 발표하는 글만 볼 수 있었으니 그, 그럼 계약할 때 듀나 작가랑 만날 수 있는 걸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으나. 음. 만나기는커녕 통화 한번 못했다. 그저 메일만 몇 번 주고받았을 따름이다.

그래도 어쨌거나 북스피어에서 듀나의 책이 출간되었다. 감격해하며 영화평론가 정성일 선생에게 3매짜리 추천사를 부탁했는데 무려 33매짜리 추천사를 보내주는 바람에 ‘ㄸㄹㅇ인가’ 싶어 당혹스러워하다가 ‘아아, 추천사가 소설만큼 재밌잖아’ 하며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정성일 선생이 사는 곳을 향해 감사의 마음을 담아 33번 절했던 기억이 난다.

그게 벌써 17년 전 일이구나. 그 사이에 한국 에스에프는 질적으로도 양적으로도 장족의 발전을 거듭하여 김보영김창규배명훈정소연김초엽천선란 등의 걸출한 작가를 배출하고 각종 차트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부커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바야흐로 전성기를 맞이한 것이다. 게다가 올해는 듀나 작가의 데뷔 30주년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지난 두 달 동안 표지를 새롭게 만들고 본문을 다시 작업해서 리뉴얼한 책을 이번에 출간하였다.

듀나를 다시 들여다볼 시간이다.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변변찮아 보이는 출판사의 대표로 출간할 책이 없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두말없이 원고를 주었던 듀나 작가님, 데뷔 30주년을 축하드립니다! 덕분에 북스피어도 살아남아서 곧 20주년을 맞이할 수 있겠어요. 고맙습니다.

삼송 김 사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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