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생명에 대해 도박을 벌여서 죽음으로부터 이익을 챙기는 행위가 도덕적으로 불미스럽다면, 사망 채권에도 앞에서 살펴보았던 다양한 관행, 즉 청소부 보험·말기환금·데스풀·순수하게 투기적 성격의 생명보험 거래와 똑같은 결점이 있다. 사망 채권에는 익명성과 추상성이 있으므로 도덕적 민감성이 잠식당하는 현상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 일단 생명보험 증권을 거대한 패키지로 묶고 썰고 쪼개서 연금기금과 대학기부금 펀드로 판매한다면, 어떤 투자가도 특정 개인의 사망으로 근원적인 이익을 얻지는 않는다. 국가의 보건정책, 환경 기준, 식습관과 운동습관의 향상으로 건강이 좋아지고 수명이 늘어나면 의문의 여지없이 사망 채권 가격은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가능성에 거슬러서 도박을 하는 편이 에이즈에 걸린 뉴욕 사람이나 아이다호 주에 거주하는 목장주가 죽을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것보다는 덜 괴로울 것 같다. 과연 그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