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이 무엇을 하든 아이들 역시 따르게 돼 있다.
쓰레기를 내다 버리는 것처럼 간단한 일이든 혹은 책 작업을 위해 유카탄에 동행하는 것처럼 복잡한 일이든
아이를 어른의 일에 끼워주는 건
그 아이가 자신보다 큰 뭔가의 일부임을 체험하게 해주는 것이다.
아이들은 ‘우리’의 일부로 가족 구성원과 연결돼 있다.
따라서 아이들의 행동이 도움이 될 수도,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
반면, 우리가 아이들을 위해 그들만을 위한 활동을 선택한다면
앞에서 말한 회원권을 서서히 빼앗아 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이들은 다른 가족 구성원과 엄연히 다르며,
가족의 일이나 어른들의 활동에서 배제된 일종의 VIP라고 알려주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로지를 이런 식으로 대했다. 우리 집에서 로지의 역할은 레고를 갖고 놀고 교육용 동영상을 시청하며 잘 차려진 식사(소스를 뺀 파스타와 버터 바른 토스트 등)를 먹는 것뿐이라고 가르쳤다.
이에 비해 내 역할은 로지를 위해 청소, 요리와 빨래를 도맡고, 데리고 다니면서 다양한 활동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내가 아침에 신발을 신으란다고 해서 로지가 그 말에 따를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내가 요리한 브로콜리 따위 먹지 않고, 우리 둘 다 진이 빠졌더라도 잠자리에 들지 않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여러 가지 면에서 로지는 회사의 CEO요 나는 로지의 이벤트 매니저 같았다. 로지가 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하루하루의 계획을 세우는 매니저 말이다.
하지만 테레사의 아침 일상을 목격하고 아이 위주 활동에 대해 수잔과 이야기 나눈 뒤 고민을 거듭한 나는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이제 다시는 유아로 북적이는 스낵바에서 치즈 피자 한 조각을 10달러나 주고 사서 결국 내가 먹어 치우는 상황은 만들지 않으리라.
다시는 로지가 유튜브 동영상을 보는 동안 빨래를 해치우지 않으리라.
다시는 아이 저녁 식사로 특별 요리를 해주지 않으리라.
나는 로지의 이벤트 매니저 노릇을 그만두고 아이를 내 세계에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또, 로지를 즐겁게 해주는 건 그만두고 그저 아이와 함께하는 법을 배우기로 했다.
그래서 챈 카아잘 마을에서 돌아온 뒤 세 개의 거대한 혁신을 단행했다.
★ 로지의 스케줄을 완전히 뜯어고쳤다.
주말은 물론, 어린이집이 끝난 뒤의 시간도 로지에게는 가족 회원권을 획득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우리 가족이 집안일을 할 때 곁에 머물면서 어른의 세계에 흡수될 수 있는 기회 말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 위주의 활동은 대부분 취소했다.
어린이 박물관, 동물원이나 놀이센터 같은 데는 더 이상 가지 않았다.
...
로지를 데려다주기만 해서 아이가 다른 가족과 시간을 보내게 했다. 이를 통해 나는
로지가 엄마 아빠로부터 떨어져 있는 시간을 상당히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런 일정도 없을 때는
로지가 태어나기 전, 매트와 즐겨 하던 활동처럼
모든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이벤트를 선택했다.
로지 위주로 로지만을 위해 하는 활동과는 달랐다.
엄연히 어른의 활동이었고 로지는 참가자였다.
로지가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 집안일을 하는 대신
이제 깨서 곁에 있을 때만 가사 활동을 했다.
토요일 아침마다 우리는 온 가족이 다 같이 아침 식사로 뭔가 재밌는 걸 만들고 청소를 한다.
일요일 아침에도 다 같이 빨래를 하고 오후에는 장을 보러 간다.
그럼 로지가 잠들었을 때는 뭘 하냐고?
그야 당연히 휴식이다.
책도 읽고 산책도 하고 넷플릭스도 보고 남편과 어느 누구의 방해도 없이 긴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어떤 때는 아주 오랫동안 목욕을 하거나 낮잠을 자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