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 주례사 -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한 남녀 마음 이야기
법륜스님 지음, 김점선 그림 / 휴(休)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그러므로 집착을 떠나 언제나 마땅히 해야 할것을 하라. 집착없이 행하는 자가 가장 높은데 이르기 때문이다.

                                                                                                                          -바기바트 기타 中-

‘주례사 서평’을 안 쓸 수가 없다. 너무나 좋은 말씀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세상 이치를 이처럼 직설적이고 단촐하게 꿰뚫다니 속이 다 시원하다. 결혼을 앞둔 연인뿐만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민하는 모든 연령과 세대의 사람들에게 이 책은 귀한 설법이요 법문이다.

사랑은 소유와 집착이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은 언제나 내 곁에만 있어야 하며 절대로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한 인간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집착은 탄생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자유와 사생활을 침해하고 헤어지려고 할라치면 죽여버리겠다는 협박도 서슴지 않는다. 처음 만났을 때의 두려움과 설렘은 사라지고 어느 순간 사랑은 끔찍한 저주이자 견딜 수 없는 구속이 되고 만다.

이 사람 아니면 죽어버리겠다던 연인들이 결혼을 하고 나면 약속이나 한듯 땅을 친다. 까놓고 보니 함께 하던 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애라도 들어서면 진짜 빼지도 박지도 못한다. 우스갯소리로 ‘인생 끝났다'고도 한다. 하지만 사람이 바뀐 게 결코 아니다. 다만 그 사람의 그러한 본 모습을 자신이 보지 못한 것일 뿐이다. 축복 받아야 할 두 사람의 결혼이 견뎌내야 할 일상이 돼버린 가정에 행복이 들어설 공간이 있을 리가 없다. 불화는 자식에게 되물림되고 종내에는 사회를 병들게 한다. 이 모든 결혼의 불행은 마음의 준비가 안 된 탓이다.

흔히들 결혼은 낭만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말한다. 이때의 ‘현실'은 대개 결혼으로 인해  주어질 수밖에 없는, 따라서 받아들이고 견뎌내야 할  새로운 삶의 조건이다. 둘이 살 집도 마련하고,  자녀 출산 및 교육 계획도 세워야 한다. 돈 관리는 누가 할지 정하고 집안 대소사도 빠뜨리지 않고 챙겨야 한다.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으면서 알콩달콩 살겠다는 꿈은  정신없이 바쁜 일상, 금전적 압박 등 여러 가지 현실적 이유로 점차 희미해지기 시작한다. 바꿀 수도, 벗어날 수도 없는 결혼의 현실이 시작되는 것이다.

하지만 결혼생활이 이렇게 수동적으로 주어진 현실에 불과하다면 사랑은 짐이 되고 가정은 지옥으로 변하고 만다. 결혼의 현실은 사랑하는 두 사람이 얼마든지 능동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 당장은 돈도 부족하고 애 낳을 형편도 안될 수 있다. 이런저런 현실적 제약에 신혼부터 한숨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노력한다면 주어진 현실이 얼마나 힘드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것을 받아들이는 두 사람의 마음이다. 고통은 고통대로 기쁨은 기쁨대로 끌어 안으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누구보다 소중한 존재가 되어주어야 한다. 그토록 사랑해서 결혼했는데도 행복하지 않다면 도대체 결혼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사랑 좋아하시네, 라고 웃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욕심을 버리고 상대를 배려할 때 결혼의 수동적 현실은 행복한 일상으로 다시 태어난다. 스님은 사람들이 사랑의 감정이 아니라 이해관계에 기반해 결혼했기 때문에 그토록 불행한 것이라고 말한다.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만 따지고 결혼했기 때문에 결국에는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서로의 마음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내 성에 안 차면 그냥 끝이다. 거기서 더 나가면 자식 때문에, 돈 때문에 그냥 함께 살고 마는 비극이 벌어지고 마는 것이다.

욕심은 곧 내가 원하는 상대방의 모습을 일방적으로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내가 원하는 모습만 상대방이 보여주길 원하는 것이다. 몸매는 항상 날씬했으면 좋겠고 돈도 많이 벌어와야 한다. 자녀를 자상하게 대하는 동시에 배우자에게 가끔 편지와 선물도 줄 줄 아는 센스도 갖춰야 한다. 그런데 모든 요구 조건을 서로 충족시키면서 살아가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충족될 수 없는 욕심을 붙들고 있어본들 화가 될 뿐이다. 그냥 내려놓아야 한다. 마음속이 욕심으로 가득한데 어떻게 배려가 가능하겠는가.

외롭다고 결혼하는 것도 문제다. 서로 기대기만 해서는 결혼 생활이 유지될 수가 없다. 살다보면 둘 다 힘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느 한 쪽이 힘들면 좀 덜 힘든 다른 한 쪽을 보듬어주고, 또 보듬어주던 쪽이 힘들면 다른 쪽에서 위로해주는 상호 협력에 기반한 의존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게 안되면 상대방은 어느 순간 감당하기 힘든 존재가 된다. 결혼해서 함께 살지만 떼놓고 보면 둘은 전혀 다른 개인이다. 각자 자기 삶의 영역에서 감당해야 할 고통이 있고 자신만의 관심사가 있을 수밖에 없다. 고통은 나누되 프라이버시는 존중 받아야 한다. 따로 설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안되니까 결혼생활이 답답하다,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와 같은 말이 나온다.

사람이 바뀌는 게 아니라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떠나는 것까지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스님은 말한다. 다소 과격한 배려론이 아닌가 싶은데 꼭 그렇지도 않다. 결국 내가 행복할 수 있어야 결혼생활도 행복하기 때문이다. 바람 피운 상대를 저주하면서 절대 이혼해주지 않겠다고 맞서봤자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아이의 정신 건강만 나빠질 뿐이다. 가정의 화목을 위해서라도 모든 책임을 과감히 자신에게로 돌릴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 배우자의 유무보다 중요한 건 미움을 털어내고 자신을 위해 또 자식을 위해 새로운 삶을 꾸려나가는 일이다. 얕은 수행으로는 절대 도달할 수 없는 경지다. 어쨌든 미워하고 저주해봤자 비참해지는 건 자기 자신일 뿐이다.

모든 일에는 이치가 있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는 법이다. 상대방에게 하나라도 더 얻어내려는 욕심이 가정의 불화를, 평소에 배우자에게 소홀했던 것이 간통과 외도를 부른다. 돈 많은 늙은 남자와 결혼한 젊은 여자가 남편과 친구처럼 소통하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이치의 작용이다. 이것을 거부하려고 하면 결혼생활이 결코 유지될 수 없다고  스님은 정문일침을 놓는다.

나를 어떻게 바꾸냐에 따라 결혼생활이 달라진다. 상대방에 대한 기대가 무너졌다고 실망만 할 게 아니라 도대체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를 정확히 들여다봐야 한다. 말도 안 되는 요구 사항을 자꾸만 고집하거나 먼 미래의 희망 사항을 지금 당장 이뤄야 될 사안처럼  강조해선 곤란할 것이다. 모든 갈등의 씨앗이 자기 안에 있듯 행복한 결혼생활의 씨앗도 자기 안에 있다. 이 책은 그 씨앗의 파종부터 재배에 이르기까지를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지침서다. 사랑하는 사람과 꼭 함께 읽고 싶다. 그런 날이 어서 오길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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