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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오베는 59세다.

  그는 사브를 몬다.

p.7

  이토록 단도직입적이고 실용적인(마치 오베처럼) 소설의 첫 문장. 오베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의 사람이 있으면, 마치 그 사람은 강도고 자기 집게손가락은 경찰용 권총이라도 되는 양 겨루는 남자’다. 그는 철저히 원칙을 따르는 사람이며, 자기 할 일은 자기가 하는 남자다. 그래서 그는 제 손으로 겨울용 타이어 하나 제대로 갈지 못하는 작자들로 넘쳐나는 세상에 대해 분노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상대를 가리지 않고 철저하게(!) 까칠한 오베가 초반엔 좀 밉살스럽기도 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엔 분명 공감 가는 구석이 있다.

 (...) 한때 여기에는 숲이 있었지만 이제는 집들뿐이다. 물론 다 융자를 낀 집들. 그게 오늘날 일을 하는 방식이었다. 신용카드로 쇼핑을 하고 전기차를 몰고 다니며 전구 하나 바꾸려고 수리공을 고용했다. 딸각딸각 맞추는 조립식 마루를 깔고 전기 벽난로를 설치한 뒤 그럭저럭 살아간다. 급박한 상황에도 벽에 못 하나 박지 못하는 사회. 이게 지금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이었다.

​p.45


  오베는 잡담에 끼어드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이런 경향이 최소한 오늘날에는 심각한 성격적 결함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주변에 어슬렁거리는 영감탱이 아무나와 무슨 주제로든 수다를 떨 수 있어야 했다. 순전히 그게 ‘사근사근한’ 태도라는 이유만으로.

p.56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고집스러운 노인네로 여기겠지만, 오히려 그런 고집스러움이 그의 삶에 어떤 진정성을 부여한다. 한결같은 삶의 방식이 주는 감동. 그는 누군가를 고자질하지 않으며, 말수는 점점 줄였지만 실천은 늘렸고, 자신이 꿈꾸던 집을 손수 지었었던 그런 남자다. 모든 것이 이렇게 쉽고도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오베의 인생은 묵직하게 우리의 마음을 누른다.


  사실 오베라는 남자가 처음부터 혼자였던 것은 아니다. 그의 옆에는 소냐라는 여자가 있었다.

  젊은 날의 오베는 기차역에서 우연히 본 소냐에게 첫눈에 반한다. 벌써부터 지나치게 과묵하고 융통성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이 남자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조차 요령을 피울 줄 몰랐다. 그저 묵묵히 소냐의 말을 들어주고,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그녀를 기다릴 뿐이었다. 마치 그게 자신의 소명인 것처럼. 소냐의 이야기를 들을 때 오베는 ‘난생 처음으로 자기가 이 세상에서 유일한 남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곤 했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오베와 소냐는 양 극단에 있는 사람들이다. 오베는 답이 명확히 떨어지는 수학을 좋아하고, 틈만나면 무언가를 수리하며, 세상을 불신한다. 소냐는 항상 책에 둘러싸여 있고, 목적 없는 여행을 사랑하며,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이토록 다른 이 둘을 자석처럼 붙여준 한 가지는 바로 소냐가 오베 자신조차 알지 못하는 그의 잠재력을 발견하고야만 여자였다는 것이다. 그녀는 흑백의 삶을 살던 오베에게 색깔을 부여한 여자, 그의 ‘운명’ 자체가 된 여자였다.


 


(...)그는 정의와, 페어플레이와, 근면한 노동과, 옳은 것이 옳은 것이 되어야 하는 세계를 확고하게 믿는 남자였다. 훈장이나 학위나 칭찬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그래야 마땅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종류의 남자들은 이제 더 이상 그리 많이 나오지 않는다는 걸 소냐는 알았다. 그래서 그녀는 이 남자를 꼭 붙잡았다. 아마 그는 그녀에게 시도 써주지 않을 테고 사랑의 세레나데로 부르지 않을 것이며 비싼 선물을 들고 집에 찾아오지도 않을 테다. 하지만 다른 어떤 소년도 그녀가 말하는 동안 옆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게 좋다는 이유로 매일 몇 시간 동안 다른 방향으로 가지는 않았다.

p.206

  자신을 유일하게 (그리고 자기 자신보다 더) 이해했던 소냐가 죽고 나서, 오베의 삶이 무너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오베는 가장 자신다운 방법으로 소냐 곁으로 가기 위한 준비를 한다. 그러나 새로 이사 온 이웃 부부(오베가 가장 싫어하는, 트레일러 한 대조차 제대로 후진시키지 못하는 부류의 인간들)와의 인연을 시작으로 그의 자살 계획은 자꾸만 미뤄진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철벽남' 오베는 어느새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이젠 훨씬 많은 사람들이 오베의 삶을 구성한다. 이제는 아주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다가오는 가지각색의 이웃들을 바라보며 오베는 생각한다. 소냐라면 분명히 이런 상황을 좋아했을 것이라고. 행복해 했을 거라고. 어쩌면 이런 것이 그녀가 바라던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오베의 유일한 색깔이었던 자신이 죽은 이후에도 그의 삶이 흑백으로 되돌아가지 않는 것.

​  정말 소중한 사람은, 곁에 있거나 없거나 나의 삶과 함께한다. 죽음이 곧 부재를 뜻하는 것이 아니듯이. 오베라고 불리우는 남자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는 소냐라고 불리우던 여자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그녀를 만난 이후부터 그의 삶은 평생 그녀와 함께했기 때문에.


 

* 표지에도 등장하는, 영화로 치면 씬 스틸러급인 고양이. 고양이 키우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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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king Fortune 메이킹 포춘 - 김청경의 터치가 당신의 운명을 바꾼다
김청경 지음 / 페이퍼북(Paperbook)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페이퍼북 마지막 미션! 메이크업 아티스트 김청경씨의 책 <메이킹 포춘>.

너무나 강렬한 첫 표지였다. 얼핏 영화 <내가 사는 피부>의 포스터가 떠오르는!


내가 사는 피부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
출연
안토니오 반데라스, 엘레나 아나야, 마리사 파레데스, 블랑카 수아레즈
개봉
2011 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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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책과 닮은 영화를 찾자면 차라리 <관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관상

감독
한재림
출연
송강호, 이정재, 백윤식, 조정석, 이종석, 김혜수
개봉
2013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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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핵심 내용은 '아름다움을 넘어 행운을 주는 메이크업'이다. 즉, 미용 목적을 넘어서 관상학적으로 운을 불러올 수 있는 메이크업을 소개하는 것. 예를 들어, 관상학에서 콧방울이 밝으면 행운이 온다는 징조이므로 메이크업 마지막 단계에서 세럼 스프레이를 뿌려 피부의 광택을 살린다든가, 운을 높이고 싶을 때 특별히 눈 밑(누당)을 밝게 표현하는 메이크업을 하는 식이다.  저자인 김청경 씨는 대한민국 1세대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30년이 넘는 동안 20만명이 넘는 사람들을 만나 메이크업을 했다고 한다. 이렇게 꾸준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자연스레 어떤 특징의 얼굴이 행운이 따르는 지 체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행운 메이크업은 크게 피부 / 하이라이트 / 눈 / 입술로 나뉘어 소개되어 있다. 많은 메이크업 서적들이 복잡한 메이크업 단계들을 장황히 늘어놓기 일쑤여서 금방 피곤해지거나 읽다 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책은 핵심적 내용만 간단하게 설명돼 있어서 보기에 편했고 지루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만큼 쉽게 따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장에는 실제로 그녀가 맡았던 연예인들의 메이크업과 애정운을 높이는 메이크업, 비즈니스 자리를 위한 메이크업 등 다양한 실전 상황에 맞는 메이크업 방법이 소개되어 있으니 소개팅을 나가야 하는데 어떻게 화장을 해야할 지 모르겠다 등등 막연할 때는 바로 이 장을 참고하면 좋겠다. 난 관상 같은 건 절대 믿지 않는다!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밑져야 본전 아니겠는가. 이왕 해야하는 화장이라면 당연히 시도해 볼만 하다. 물론 행운 메이크업으로 인해서 당장 로또에 당첨된다든가 하는 커다란 행운을 기대하는 건 바보같은 일이지만, 저자도 말했듯이 매일의 작은 행운들이 쌓이고 쌓여서 더 행복한 나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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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보물창고 - 열정과 젊음의 도시 브라질의 뒷골목 탐험
허다연 지음 / 페이퍼북(Paperbook) / 2014년 11월
평점 :
품절


 

 

  기말시험과 알바로 정신없던 도중 틈틈이 읽었던 <브라질 보물창고>를 통해 바라본 브라질은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심했던 와중에 읽어서인지 더 신비롭게 다가왔다. 책 속의 글과 여러 사진들이 그동안 관심을 두지 않았던 남미 국가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이 되었다. 그러나 사실 나의 주변에도 브라질이 숨어 있었다. 중학생 때 우연히 읽고 한동안 여운에 잠겨있던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새벽에 읽다가 결국 엉엉 소리내어 울어버린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즐겨 듣던 'Corcovado'까지. 막연히 먼 나라라고만 생각할 뿐 제대로 인식하려고 하진 않았던 브라질이라는 나라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계기였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만약 브라질에 간다면 꼭 해보고 싶은 일들을 적어보았다. 리우에 가서 보사노바 음악 듣기, 이파네마 해변 거닐기, 트램을 타고 코르코바도 언덕에 올라가기, 상파울루 미술관 가기, 이과수 폭포 보름달 투어 등등. 특히 요즘 날씨가 추워서 바다 근처에 간 지가 너무 오래되다 보니 브라질의 해변을 무척 걷고 싶어졌다. 책을 읽는 내내 들었던 'Girl from Ipanema'를 들으면서 말이다.

  상파울루에서 리우까지는 책에 소개된 대로 버스를 타고 가야겠다. 나는 버스 타는 것을 좋아한다. 시내버스도 그렇고, 드물게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떠날 때 타는 시외버스가 더 그렇다. 어쩌면 내려서 여행하는 시간만큼 버스 창가에 앉아서 음악을 들으며 단조로운 바깥 풍경을 응시하는 시간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런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몇 박 며칠 동안 버스에서 먹고 자며 떠나는 장기간의 버스 여행이었다. 비록 처음에만 즐겁고 갈수록 몸도 마음도 지친다고는 하지만, 우연히 같은 버스를 탔다는 이유만으로 잠시 '운명공동체'가 된 사람들과 함께 별도 보고 달도 보며 여행할 수 있다니 무척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형제가 없는 나로서는 작가가 자신의 어린 두 여동생들과 함께 이과수 폭포를 보러 여행을 떠났던 이야기가 너무나 찡하면서도 부러웠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내 편이 있다는 것, 부모님의 기억을 함께 나누고 평생 함께 추억할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하는 부모님의 조각들을 맞춰줄 사람들이 있다는 것까지. 비록 작가에게는 부모님을 잃을 수도 있다는 절박감에서 시작한 여행이었지만 말이다. 몇 년 후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브라질로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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