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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그리는 초상화처럼
정재은 지음 / 플레인아카이브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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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은 감독의 에세이 <같이 그리는 초상화처럼>을 읽었다. 아마도 내가 처음 본 건축 다큐멘터리 <아파트 생태계>를 만든 감독님(영화를 다 본 후에도 OST <만질 수 있는 널 사랑하네>를 한참 동안 들었던 기억이)... 그가 막 픽션에서 논픽션으로 넘어온 시기, 정기용 건축가에 대한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가>를 만들던 때의 이야기다.

이 책을 읽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도대체!) 다큐멘터리 감독들은 어떻게 살아가는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다큐 만들기의 기술 같은 것보다는) 다큐란 어떤 마음으로 만들어지는가. ‘촬영을 시작했을 때 상상했던 곳과 전혀 다른 곳에 도착’(207쪽)하고 나면 무슨 말을 하게 되는가. 만들기로 한 것과 만들어진 것 사이에 흐르는 그 강을 어떤 자세로 건너지?

시나리오가 명확한 극영화와 다르게 다큐멘터리 영화는 어느 시점에서든 끝내기로 결정하지 않는 이상 끝나지 않는다. 이야기가 나를 조종하도록 내버려둘 수밖에 없는, 따라서 이것이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하는 두루뭉술한 예감을 좇아 많은 것을 우선 담고 보게 된다. 종종 현실의 장면 앞에서 연출자는 반감을 느끼거나 머뭇거린다. 그리고 이 모든 망설임 역시 영화를 완성하는 요소다. 현실(논픽션)을 살아가는 사람의 일부분을 취사 선택해 보여 주기(결국 다른 방식의 픽션). ‘공간인 것 같지만 건축의 본질은 시간이다. 늘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변하고 변한다’(109쪽)라는 정기용의 말처럼 영화로 선택되지 못한 무수한 장면들, ‘다른 플롯의 조각들’은 끊임없이 그 의미를 달리한다.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완전하게 캐치되지 않는 미지의 영역을 접하며 해석되지 않는 영화의 세계에 매료되곤 한다. 의도된 불균질성이 성급하게 만들어지는 서사에 흠집을 남기게 되며 이는 관객에게 좋은 자극으로 남게 된다. (...) 나에게는 정기용이라는 한 인물의 삶이라는 사건을 한두 시간짜리 영화로 박제화하고 봉합해 버렸다는 자책이 있다. (...) 어쩌면 최고의 다큐멘터리 영화는 영화에서 무슨 사건이 벌어졌는지 전혀 알 수가 없는 그런 영화가 아닌가 하는 반성도 해본다.”(153쪽)

정재은이 정기용을 주인공으로 삼아 다큐를 찍어 가듯, 독자 또한 정재은이라는 주인공이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갈팡질팡하는 과정을 지켜본다. 농담조로 말해 보자면.. 내가 생각하는 다큐멘터리 감독의 일거리 중 하나는 ’누군가 어떤 영화를 만들고 있는지 물으면 아직은 모른다고 답할 수밖에 없는 상태‘(70쪽)를 견디는 것이다. 특히나 ‘다큐멘터리 필름 메이킹은 자칫하면 긴 시간 동안 내가 뭔가 중요한 것을 찾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228쪽)키므로.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서사화, 기존의 영화 산업적 욕망으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을 다루기도 한다. ‘아무 일도 하고 있지 않다는 자책’(75쪽), 내면의 갈등을 처리해야만 하는 창작자의 일기. 자연히 한국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는 것, 피칭이나 지원 프로그램의 현실들이 엿보인다. 이러한 다큐 영화를 공공재로 여겨 ’산포‘하겠다는 정재은의 비전도.

정기용 건축가는 타고난 주인공이다. 만약 정기용과 정재은이라는 거울로 나를 비춰 본다면? 나라면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넉넉한 품의 주인공을 발견할 수 있을까? 기꺼이 그의 거울이 될 수 있을까? 기록하면서 깊어지는 관계를 감당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로 막막해지지만... 어느 누구도 한 사람의 초상화를 온전히 그릴 수는 없는 법이고, (언젠가 그런 기회가 온다면...) 우리는 우리만의 초상화를 그려 가면 될 일.

+) 정기용의 입말이 살아 있는 텍스트 덕분에 더 생생한 책. 이제 영화 <말하는 건축가>를 보고 싶다..
++) 154쪽에 딱 한 페이지로 들어 있는 정기용의 일화가 너무 재밌고 좋음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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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의 꽃향기 - 베네치아 푼타 델라 도가냐 미술관과 함께한 침묵의 고백 미술관에서의 하룻밤
레일라 슬리마니 지음, 이재형 옮김 / 뮤진트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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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의꽃향기 #레일라슬리마니 #뮤진트리 #미술관에서의하룻밤

뮤진트리의 '미술관에서의 하룻밤' 시리즈 다섯 번째 책. 작가 레일라 슬리마니가 베네치아의 푼타 델라 도냐 미술관에서 혼자 하룻밤을 보내며 쓴 글이다.

나는 종종 비공개의 마음이 되고 싶지만(말하지 않은 것만이 오직 내 것이 된다면 더더욱), 동시에 도무지 말하지 않고는.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고는 안 되는(그러면 내 존재가 유예되는 느낌마저 들어서) 순간 또한 있다. 이제는 평생 동안 지속될 이 두 마음의 줄다리기가 인생의 또 하나의 정의라 믿으며.. 그러니 소설을 쓰려는 사람은 제일 먼저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때로 "자신을 드러내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내가 나의 가치를 스스로 떨어뜨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상한 느낌"이 든다고 고백하는 작가의 글을 어떻게 계속 읽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녀는 베네치아에 특별히 끌려서도 미술에 조예가 깊어서도 아니라, 오직 하룻밤 '갇힌다'는 그 사실("... 이 구속으로부터 무한한 자유의 가능성이 생겨난다") 때문에 편집자의 제안을 수락한다(그런데 갇히러 간 곳에서 마음이 활짝 열려 버리면 혹은 이중으로 갇혀 버리면 어떡하죠?).

슬리마니는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를 읽다가 울프가 <자기만의 방>의 속편을 상상했음을 그리고 그 제목이 <열려 있는 문>이라는 것을 발견한다(방이 있어야 열어 둘 문도 있지요). 그리고 이건 아침이 되어 슬리마니가 미술관을 나설 때와 절묘하게 이어진다("이 문은 계속 열려 있었을까? 만일 내가 원했다면 한밤중에.."). 여기서 내가 말하고 싶어진 건, 내부로 침잠하여 "결연히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과 "외부를 정복하고 싶은 마음"의 사이엔 늘 문이 있다는 것. 나 스스로를 '거부의 벽'으로 둘러쌓았더라도(그리고 결코 부수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더라도) 언제나 문이 있다. 심지어 단단한 벽인 줄 알았던 게 사실은 문이어서 안도할 때도 완벽하지 못했다고 자책할 때도 있다. 문을 통과한 것들(쟨 뭔데 노크도 없이 이렇게 금방 들어왔지?)과 끝내 문앞에서 되돌려보낸 것들이 내 기억을 만들고 곧 나를 만들어 왔는데.. 요즘 제 문은.. 어떻게 잘 열려 있던가요? 나는 당신이 문앞에서 어떤 기분을 느꼈는지 궁금하다.

작가의 일은 '기억하는 것'. 그리고 베네치아의 취약함은 이 명령을 더욱 되새기게 한다. 하물며 이 도시의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의 주제도 마침 그렇다.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서 유령의 흔적을 발견하고, 그래서 그 어느 것도 완전히 죽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보지 못한 것(기억), 보이지 않는 것(유령)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곧 문학("유령들에게 생명을 부여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작가는 유령 그 자체가 될 수 있는 거 아닐까("벽을 손쉽게 통과할 수 있는 것이다")?

서양에 속한 동시에 동양에 속한 도시 베네치아, 모로코에서 태어나 프랑스로 이주한 작가. 이중 정체성. 발밑에 단단한 토대가 없이 평생 부유한다고 느낀다는 점에서, 그리고 두 세계 사이에서 사는 듯 '환승 중'인 정체성을 가졌다는 점에서 그녀는 다시 한번 유령 같고.

취약함이 곧 아름다움이 되는 도시에서 구속이 곧 자유가 되는 체험기. 낮보다 진실한 밤은 끝났고 마법은 풀렸지만 어쨌든 계속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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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오소독스: 밖으로 나온 아이 - 뉴욕의 초정통파 유대인 공동체를 탈출하다
데버라 펠드먼 지음, 홍지영 옮김 / 사계절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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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오소독스: 밖으로 나온 아이>는 뉴욕의 유대인 초정통파 공동체 사트마를 떠난 데버라 펠드먼의 자전적 이야기다. 사트마 공동체는 극단적 종교 논리에 가부장제 논리가 더해져 조혼, 출산 강요 등 여성의 생활을 조목조목 억압한다. 데버라는 이곳에서 수치심, 어리둥절함, 끊임없이 무언가 죄를 짓는 느낌을 안은 채 자라난다. (비록 상황은 극단적이지만 그녀가 느끼는 바에는 어렵지 않게 공감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녀는 몰래 영어로 된 책을 읽고(<마틸다>, <빨간머리 앤>, <작은 아씨들> 등 몇 번이나 읽고 좋아했던 책들이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갈 때마다 일종의 길잡이가 된 것, 결국 글쓰기가 그녀 삶의 무기가 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면허를 따고 대학에 다니며 미래를 준비한다. 그리고 언젠가 자신이 이 폐쇄적인 공동체를 떠나 완전히 다른 삶을 살 거라는 어릴 적의 예감을 실현시킨다.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아들의 삶이 곧 자신이 아닌 공동체 남자들의 결정으로 좌지우지될 것을 실감한 그녀는 결국 아이와 함께 공동체를 떠났고, 이 책을 쓰게 된다('아가야, 나는 결코 영원히 입을 다물지 않을게.' -272쪽). 비로소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자유를 쟁취한 것. 공동체를 떠나서 제대로 생활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탈출을 막을 수 없었다. 자기진실성이 행복에 앞서니까.
지금도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이 책을 몰래 읽고 있는 누군가가 있을 거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더 많은, 다양한 이야기가 필요한 거겠지.. 자신의 손으로 인생을 결정하는 존재들의 이야기. "힘을 간절히 원하지만 다른 사람을 내게 복종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의 주인이 되고 싶기 때문인" 이야기. 상상력을 잃지 않기 위해, 용기를 주기 위해, 바깥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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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쩌면 주변 사람들의 말처럼 바깥세상이 무서운 곳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폭력에 갇혀 사는 일은 악몽 같겠지. 나중에 더 나이가 든 뒤 나는 그 영화에 나오는 위험이 우리 공동체 안에도 존재하며, 그저 다들 쉬쉬해서 곪아가고 있을 뿐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부에 존재하는 위험을 솔직히 인정하는 사회가 위험을 감추는 사회보다 더 낫다고 결론 내렸다." (159쪽)

#언오소독스 #밖으로나온아이 #데버라펠먼 #사계절 #서평단 #북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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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걸 수필집 : 내 머릿속에 푸른 사슴 - 현대어로 쉽게 풀어 쓴 근대 여성 문학 모던걸
강경애 외 지음 / 텍스트칼로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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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칼로리에서 기획한 모던걸 시리즈. 예전에 텀블벅에서 보고 궁금했었는데 서평단에 당첨돼서 수필집 <내 머릿속에 푸른 사슴>을 읽었다.
얼마전 'OO의 시대'라고 말하는 데에는 그 대상이 존재했던 시간적 배경 안에서 그것을 이해하고자 함이 내포되어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애틋하거나 신비롭거나 때로는 무지 서럽고 뜨악하기도 한 그 당시 일상을 엿보며 저 말을 떠올렸고, 그러자 글 하나하나가 소중해졌다. 어쩌면 모던걸의 시대가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생각두..
이국의 밤거리 풍경, 작가로서 "내 머릿속에 이런 푸른 사슴을 자유롭게 놓아기르기 위해서는 최소한도의 생활 보장이 되어야 한다"며 즐거운 '짬'을 기다리는 직업인의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남편과 날마다 쌈하게 되는 이유를 가만히 생각하니 내가 가정 일에 서툴러서 그러한 듯"해 몇 번이나 물동이를 깨고 잿물에 손끝이 벗겨져도 빨래하는 마음도 있다. 그 안에 담긴 것이 무엇이든 어떻게든 글로 적혀 지금 우리에게 읽히고 있고... 모든 글은 필연 미래를 향해" 쓰이며 나는 목격한다. 변한 것과 변함없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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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저기가 바다야!"
아이의 말에 우리는 일시에 앞을 바라보았다. 보아라, 저 푸른 바다! 말이 칵 막혀 버린다. 바다, 바다만이다. 그 앞에서 우리는 마음속에 조그만 생각도 숨길 수가 없다. 그저 바다만이 높고 낮을 뿐이었다. (강경애, <몽금포 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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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로메르 - 은밀한 개인주의자 현대 예술의 거장
앙투안 드 베크.노엘 에르프 지음, 임세은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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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공부에 매달렸던 에릭 로메르는 성인이 되고 나서야 영화를 발견했고, 그 후로 영화는 쭉 그의 마지막 예술이 되었다. 나 역시 영화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기 시작한 건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부터다. 영화와 관련된 교양 수업을 무조건 듣고, 매년 열리는 고향의 영화제도 그때 즈음 처음 가 보았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단편영화를 찍거나 비평 수업을 듣고, 영화제에서 일해 보았다. 비록 영화에 대한 나의 관심은 정식으로 영화를 하는 누구가 되기에는 산발적인 것이지만, 백 년 남짓한 영화의 역사를 생각할 때면 그것이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따라잡을 가능성이 (그나마) 높은 분야가 아닐까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로메르를 비롯한 젊은 시네필들이 영화를 폭식적으로 소비함으로써 영화 문화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얻은 마지막 세대’”라는 언급에서 조금 부러움을 느낌...)

 

내가 본 그의 영화는 <녹색 광선><레네트와 미라벨의 네 가지 모험>인데 둘 다 시골에 대한 영화다. <녹색 광선>에서 델핀은 긴 휴가를 보낼 곳을 찾아 지방 여기저기로 떠나고, <레네트와 미라벨>의 두 소녀는 시골에서 우연히 만나 도시에서 함께 산다(공간에 대한 논의는 로메르의 영화의 핵심 요소다. 그에게 영화는 자신에게 고유한 수단을 이용해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조직화에 따라 프레임과 평면 공간 내에 사물과 몸의 움직임으로 의미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순수한 시각 예술과는 달랐다). 그러나 로메르는 결코 작가주의 감독은 아니었다. 그는 우연을 옹호하는 감독으로서, “영화가 영화가 원래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기록하는 매체임을 증거라도 하듯이 빛과 하늘, , 바람을 화면에 담고 그의 영화에 대한 사랑은 자연에 대한 사랑에서 기원한다.” <녹색 광선>의 마지막 장면에서 태양과 바다가 잠깐 녹색빛으로 만나던 순간, <레네트와 미라벨>에서 그녀들이 무서울 정도로 완벽한 자연의 고요함’(블루아워)를 포착하기 위해 일어났던 새벽을 떠올린다. 내가 로메르의 영화에서 기대하는 것은 인과가 촘촘한 스토리나 대단한 캐릭터성이 아니라 이런 우연의 순간, 아름다움을 알아보고 고대하는 마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에게 영화는 세상 속에 있는 예술이어서, 그의 영화를 봄으로써 나는 내가 지나쳤던 세계로 다시 돌아가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

 

세계에 아름다움이 있기에 영화 속의 아름다움이 있다. 만약 세상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세계의 이미지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을까. 만약 삶을 찬양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삶의 모방을 또한 찬송할 수 있을까. 그것이 영화감독의 위치이다. 만약 내가 무언가를 촬영한다면, 그것은 그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내가 발견했기 때문이고, 그러므로 아름다운 사물은 이미 자연에 존재하는 것이다.”

 

여러 개의 가명을 사용했던 사람, 때론 그 비밀이 모순을 일으키고 삶의 열정 자체가 된 사람, 카메라 뒤에 자신을 숨긴 사람, “다른 예술을 할 때 분명히 찾을 수 없었던 행복을 영화를 할 때 발견했던 사람. 결국 영화를 통해 스스로를 구원한 사람. 그의 탄생부터 죽음까지의 기록을 모은 이 책을 통해 로메르를 더 깊이 이해해 간다.

 

+) 맨 앞에 있는 추천의 글이 정말 좋았다. 그 뒤로도 책을 쭉 읽고 싶게 하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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