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무채색 결혼
향기바람이 / 로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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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매결혼으로 서먹하다가 서로에게 조금씩 물들어 진정한 부부가 되는 선결혼 후연애물. 대부분 이런 소재는 재벌가의 정략결혼이거나 집안의 천덕꾸러기로 팔리듯 맞선보러 나왔지만, 이 책의 주인공들은 언젠가 해야될 결혼이라면 적당한 사람을 찾아 빨리하겠다는 다소 평범한 이유로 맞선 시장에 뛰어든 케이스. ' 적당한 사람'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반복된 만남에 신물이 날 때쯤 만난 시후는 이 남자라면 결혼해도 괜찮겠다는 유일한 생각이 들게 했지만, 예비 시어머니의 건강상 문제로 결혼을 서두르고 있었다. 


" 남자 어머니가 암 투병 중이시래요.

게다가 친어머니도 아닌 새 어머니시라는데, 엄마는 아셨어요? "


이상형과는 전혀 다른 무뚝뚝한 남자인데다 하필이면 복잡한 집안 사정 남자를 선택한 탓에 마음 고생을 하게 된 연정이 안스럽기도 했지만상처가 많은 시후를 생각하면 따뜻한 온기로 그를 온전하게 품어줄 연정을 만나 정말 다행이었다. 절절히 사랑해서 하는 결혼도 아닌데 무난한 집안의 남자와 결혼하길 바라는 가족들의 걱정어린 반대에도 시종일관 솔직 담백하게 사정을 털어놓는 남자라면 결혼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필요에 의한 결혼을 하게 된 주인공들. 남편이 될 시후의 요구 조건은 간단했다.


" 그저 결혼해서 잘 사는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은 것 뿐입니다.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이요.

연정 씨는 아내의 기본 역할만 해 주면 돼요.”



무뚝뚝한 겉모습과는 달리 의외로 사람의 온기를 그리워하고 나름 아내를 배려하려 노력하는 시후와 밝고 따뜻한 성품으로 병환중인 시모를 자주 찾아뵙고 싹싹하게 구는 기특한 새댁 연정의 신혼 생활은 무난했다. 어른들 앞에서는 다정한 부부의 모습이었지만, 둘만 있을때는 성관계가 배제된 룸메이트에 가까운 관계라 완전한 부부라고 할 수는 없었다. 연정은 다정다감한 아내의 역할을 잘 해내고 있었지만 언제부턴가 시후는 아내와 조금 더 친밀한 관계를 원하고 있었다.


첫날밤 연정을 배려해서 마음의 준비가 될때까지 성관계를 미루자고 쿨하게 넘겨 버린 탓에 한 침대에 누웠는데도 아내를 쉽게 만지지도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자 난감해진 시후. 성욕이 많은 것도 아니었는데, 사춘기 열병을 앓는 소년처럼 욕구불만으로 밤낮없이 연정만 생각하는 자신의 행동이 납득가지 않았지만 억제 심리 때문이라 치부한다. 한 번 자보면 관심이 사그라질 것 같은데 상대는 전혀 생각도 안 하고 있으니 답답했다.

 

" 우리 아직 첫날밤도 못 치른 거, 알아요?

시간, 아직 더 줘야 합니까? ​"

 

한편, 남편이 예전에 사귀었던 여자에 대한 질투심으로 시후에 대한 사랑을 인지하게 된 연정은 행복보다는 아픔이 더 컸다. 거짓말을 하고 고민을 공유하지 않는 남편에게 서운하고 사랑과 신뢰가 기반이 되지 못한 결혼 생활에 불안을 느끼게 된다. 처음부터 이 결혼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시모를 위한 것이었고, 그는 기본적인 아내의 역할만 바랐던 것을 알면서도 그의 마음 속에 연정이 없다는 사실이 슬퍼졌다. 그의 말대로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한거라면 이제라도 그를 놓아주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다.

 

" 시후 씨는 저랑 결혼해서 행복한가요? "


허전하던 마음이 빈틈없이 연정으로 차곡차곡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강렬한 느낌의 사랑과는 달랐기에 혼란스러워하던 시후는 뒤늦게서야 그 감정의 정체를 깨닫게 된다. 모든 것을 공유하고 감싸주는게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연정과 숨기고 싶은 치부는 절대로 드러내지 않으려는 시후,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나서도 성격차이로 부부싸움도 하면서 조금씩 서로에게 맞춰가는 주인공들. 자극적이고 격렬한 사랑은 아니지만 오래도록 질리지 않는 아늑하고 편안한 무채색 결혼이 어울리는 커플이었다.


" 그 여자를 만나기 전에는 치열하게 고민하고, 가슴 터지게 아파하고, 심장 떨리도록 설레어야만 사랑인 줄 알았거든. 근데 늘 곁에 있어 주고, 늘 웃어 주고, 함께 내일 먹을 반찬을 생각하고, 함께 아픈 가족을 걱정하는 것도 사랑이더라."

그렇게 잔잔히 마음에 스며들어 오는 것도 사랑이었다. 


" 하고 많은 색깍 중에서 왜 하필 무채색이에요? "

"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이니까. "


빈칸을 꼭 메운 검은 색과 흰색을 시후는 다시 바라봤다. 대조되는 두 가지 색은 이상하게 그에게 주는 느낌이 동일했다. 늑하고 편안했으며, 봐도 봐도 질리지가 않았다. 연정을 보고 있을 때도 그랬다. 화려한 컬러처럼 한 번에 시선을 사로잡는 여자가 아닌데도 자연스럽게 눈길이 가게 됐고, 그녀가 곁에 있으면 묘하게 마음이 안정됐다.

" 그럼 무채색 결혼? "   - 『무채색 결혼 』본문중에서



서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했던 중매 결혼이었기에 사소한 습관이나 성격 차이로 갈등을 겪으며 서로 맞춰가는 전개가 현실적이라 공감되었다. 하지만 잔잔하면서도 따뜻했던 분위기가 시후의 친모와 옛 여자가 등장하면서 뜬금없이 막장 분위기로 바뀐 느낌이라 아쉽다. 유부남이 된 옛 애인의 아내인 연정의 주변을 맴돌며 멀쩡한 가정에 풍파를 일으키는 뻔뻔하고 이기적인 여자의 심술도 짜증났고, 잘못된 선택과 욕심으로 여러 사람을 상처받게 했는데 마음껏 미워할 수 없는 선량한 모습으로 묘사된 시후 부친도 불편했다. 악역은 악역답게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루는 속시원한 전개를 선호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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