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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주
우지혜 지음 / 신영미디어 / 2015년 12월
평점 :
품절
남주
정한의 복수극이 중심이긴 하지만 사실 이 책은 죽은 쌍둥이 언니 '서주'의 이름으로 어둠 속에서 가면을 쓰며 살아가느라 삶의 지표를 잃었던 여주
강주가 비슷한 상처를 가진 정한을 만나 서로의 온기에 위안받고 삶의 의미를 되찾게 되는 과정을 담았다. 강주에게 광적인 집착을 보이는 남조
인혁과 정한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며 온갖 악행을 저질러 온 계모 화연때문에 주인공들이 행복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난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서로를 위해 전심전력을 다해 부딪혀서 그토록 바랐던 '평범한 일상 속의 행복'을 얻어 낸 의지의 주인공들이 기특하더라.
어느 날
갑자기 시신으로 발견된 여주의 쌍둥이 언니 '서주'의 의문스런 죽음과 광기에 사로잡혀 비정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던 주요 등장인물때문에 작가님께서
연재전 로맨스릴러(?)라고 경고했을 만큼 다크한 전개지만, 복수의
칼날을 갈면서도 늘 능청스럽게 여유있는 모습을 보여주던 정한과 그의 주변 밝은 캐릭터들 덕분에 땅을 파고들정도로 무겁기만한 전개는
아니다.
스스로
이름을 버리고 서주가 되어야만 했던 강주의 절망스런 프롤로그로 시작된 이야기는 해묵은 원망에서 벗어나 편해진 강주의 에필로그로
끝이난다. 본편과는 달리 에필로그에서만큼은 강주의 진짜 모습을 아는 사람들만 등장하기에 지문에서 '강주'로 쓰여져있다. 책을 읽는
내내 여주의 본명이 '강주'인데 왜
제목이 강주가 아닌 '서주'인 것인지 궁금했는데, 뒷부분에서 왜 서주일수 밖에 없는지 그 이유가 나오더라. 진짜 이름을 알아주는 단 한사람이
있는 한 강주는 평생을 서주의 이름으로 살아가도 아마 괜찮을 것이다.
이제 와서 그 이름과 내가 분리될 수 있을까. 내가 하강주라는 이름을 쓰게
되면, 나는 무엇이 달라질까.
이전의 내가 되는 걸까. 이전의 나는 어떤 사람일까. 되찾을 가치가 있는
사람일까.
하강주는 이미 버려진 이름이었다. 그 이름은 오로지 서정한의 입을 통해서만
꽃을 피웠다.
나는 더 이상 하서주라는 이름을 훔쳤다고도, 그것을 억지로 뒤집어쓰고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미 내 안의
깊숙한 곳에 켜켜이
스며들고 말라붙어, 이제는 도저히 뚝 떼어 낼 수는 없게 되어 버린 어떤 것이었다.
하서주는 힘겨운 날들을 버텨 온 내 흉터이자 훈장이었고, 가련한 내 쌍둥이를
추모하기 위한 꽃다발이었다.
그것을 버릴 수는 없었다. 버리고
싶지 않았다.
" 이렇게 살고 싶어.
하서주라는 이름으로. 너에게만 하강주인 사람으로." -
『서주』551페이지 본문 중에서
1인칭 여주시점과 3인칭
전지적 작가시점이 혼합된 이중 시점으로 쓰여진 덕분에 죽은 언니에게 덧씌워진 인생으로 힘겨워하는 강주의 감정에 몰입하면서도 정한과 주요
등장인물들의 내면까지 두루 볼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주인공들과 깊이 얽혀있는 어두운 사연의 등장인물 시점도 보여주는
전개라 유쾌발랄한 분위기를
선호하고 주인공들에게 집중된 전개를 원하는 분들은 취향탈 만하다.
과거
주인공들이 함께 지냈던 학창시절은 겨우 2개월도 채 되지않은 짧은 기간이었고, 십 여년이라는 오랜 세월동안 떨어져 살며 서로 연락 한번
못했는데도 서로를 그리워하며 잊지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 두 사람이 처했던 환경탓이 컸을 것이다. 보호받아야할 가족에게 외면당하고 정신적,
육체적인 학대에 시달리며 세상 어디에도 내 편이 없다 여겼던 주인공들. 끝도 없이 외롭고 고독한 외길을 홀로 걸어야 했던 그들이었기에 본능적으로
서로의 아픔에 공명하여 끌렸을 것이고, 황폐했던 삶속에서 '유일한 내 편'이라는 따뜻한 온기의 기억은 서로를 결코 잊지 못하게 하는 강력한
주문이 되어 주었을것이다.
" ......언젠가 다시 만날 때까지, 기억해 줘.
내가 누군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네가 기억해 줘. 그걸 아는 사람은 너뿐이니까."
" 네가 어디에 있든, 어떤 얼굴을
하고 살고 있든 내가 찾아서, 불러 줄게. 네 진짜 이름.
그러니까 너도 나 잊지
마라."
서로를 지켜주고 싶었으나 어리고 가진 힘이 없어 무기력하게 그저 견뎌내는 것 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어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왔던 주인공들은 그들의 행복을 가로막고
있는 이들에게 복수의 칼날을 들이댄다. 오랫동안 고통에 시달렸던 강주였기에 등
뒤에 안전하게 숨겨놓고 다시는 상처받지 않도록 지켜주고 싶었던 정한의 마음만큼,
그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었던 강주의 마음도 절실했기에 그녀는 정한의 뒤에 숨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나선다. 힘겹게 얻어 낸 행복인니 이제 서로의 곁에서 더이상 외롭지
않기를!
긴 여정이었다. 때로는 언제 올지 모를 그날에 대한 절망에 숨 죽였고, 오랜
시간에 지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날도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없었더라면, 절벽에서 떨어지고 우물 속에 가라앉았을지도 모를
그런 사람들.
이제는 따뜻하게만 느껴지는 햇살이 찬란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그보다 더 따스한 서로의
품속에서 같은 미래를 꿈꾸며 걸어갈 얼굴들에 미소가 어렸다.
앞으로도 슬픈 일이, 아픈 일이, 절망적인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겠지만 그들은
의심하지 않았다.
곁에 있는 이를 위해서,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
이겨 낼 수 있으리라는 것을.
그렇게 기나긴 겨울이 끝나 가고 있었다. -
『서주』568~559페이지 본문 중에서
많은 등장인물들의 사연이 나오지만 강주 편애모드로 읽었기에, 강주가 그런 힘든 삶을
살게 된 원인이었던 남조 인혁이나 강주 모친에 대한 연민은 그다지 들지 않았다. 인혁과 강주 모친은 자신의 감정만 중요한 이기적인
사람들이었다. 미성년자인 서주와 깊은 관계를 맺었던 과거부터 강주에게 집착을 보이는 현재까지 그는 법적으로 여전히 유부남이었다. 정말 사랑한다면
법적으로 정리부터 하고 구애했어야지. 이 부분은 강혁을 남주 정한보다 더 돋보이는 순정남으로 만들지 않기 위한 작가님의 의도적인 장치가
아닌가 싶다.
다른 주요 등장인물들에 비해
이상하게 강주모친에 대한 시점은 부족했기에 그녀에게 어떤 아픈 사연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리 미워도 어린 딸에게 죽은 아이의 그림자를
덧씌운 그녀의 행동은 부모로서 결코 해서는 안되는 끔찍한 짓이었다. 그리고, 꽃다운 나이에 그렇게 져버린 강주의 쌍둥이 언니 서주. 영악하고 심술 궂긴 했으나
그래 봤자 풋내기 여자애였을뿐이던 그녀의 죽음이
안쓰러웠지만 그것이 강주의 잘못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이번에도 도우미로 등장했던 도우찬씨~!! 다시 만나서 반갑긴 했는데 비슷한 상처를 가진
다른 주인공들 돕는 일은 이제 그만하고 좋은 인연 만나서 우찬씨도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그가 '봉봉 오 쇼콜라' 중독인 것은 당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달달한 누군가가
절실해서 그런 것으로 추정되니, 도우미로 그만 좀 부려먹고 이제 남주가 된 우찬씨로 만나 볼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