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세상을 아프게 한다 - 차별과 편견을 허무는 평등한 언어 사용 설명서
오승현 지음 / 살림Friends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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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포지교, 와신상담, 삼고초려란 고사성어가 있다. 만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해할 수 있는 단어들이다. 관포지교는 관중과 포숙의 사귐을 뜻하는 말로, 형제보다 깊은 우정을 의미하는 말로 곧잘 쓰인다. 반면 와신상담은 원수를 갚기 위해 괴로움을 참고 이긴다는 뜻으로, 적대적인 인관관계에 어울리는 말이다. 삼고초려는 사람을 진심으로 예를 갖춰 맞이한다는 의미로, 자기 사람으로 만들 때에 어떤 자세로 상대방을 대해야 하는지를 잘 말해준다.

 

단순한 만남이 아닌 내편이 되는 만남이 되기 위해선 삼고초려의 마음가짐이 필요하고, 한번 맺은 인연이 와신상담의 적대적 관계가 아닌 관포지교가 되려면 배려하는 마음이 있지 않고선 불가능하다. 이런 관계를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은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말 속에는 수많은 편견과 차별, 불평등이 존재한다. 말의 이면에 숨겨진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억압, 차별을 예리하게 분석한 ‘말이 세상을 아프게 한다’를 읽으며 나는 다시 가슴이 짜안해졌다.

 

언젠가 기사를 쓰며 장애인과 장애우에 대한 노란이 있었다. 난 저자와 같은 생각으로 장애우는 과잉친절이며 형식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른 기자는 일간지의 장애우라고 기사를 쓴 신문을 가지고 와 보여주며 설전을 벌였다.

 

그렇다. 이 책은 말이 바뀌어야 사회에 뿌리 깊이 박힌 차별이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한다. 또한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평등한 언어 사용 습관을 갖도록 도와준다. 말하자면 말 뒤에 감춰진 편견과 차별의 실상을 파헤쳤다.

 

장애우는 말을 곱씹어 보면 절름발이 발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장애우라는 표현은 비장애인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비장애인의 입장에서 장애인을 친구처럼 친근하게 대하자는 뜻에서 사용하는 것이죠. 장애인이 스스로를 가리킬 때 그 말을 사용하면 부자연스럽습니다.(중략) 그러니 그 말은 절름발이일 수박에 없습니다. 장애인의 아들이 자기 아버지를 가리켜 “저희 아버지는 장애우입니다”라고 말한다면 건방져 보이지 않을까요? 저흐; 아버지는 장애를 가진 친구입니다? (16~17P)

 

여성이나 장애인, 동성애자, 성폭력 피해자 등과 같이 사회적 약자를 둘러싼 말과 그들이 처한 현실을 살펴보고, 호칭의 문제, 스포츠와 민족의 문제, 서울 중심주의를 통해 한국 사회의 모순과 허위를 드러내는 말을 차근히 설명한다.

 

결혼이 선택이라는 점에서, 결혼하지 않은 상태를 ‘아직 결혼하지 않음’으로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결혼하지 않은 상태는 더하고 빼고 할 것 없이 있는 그대로 ‘결혼하지 않음’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굳이 한자말로 바꾸자면 미혼이 아니라 비혼(非婚)이 적당하겠죠. ‘미(未)’에는 ‘아직 ~ 아니다’의 의미가 있지만 ‘비(非)’에는 그런 의미가 전혀 없습니다. ‘비(非)’는 그저 ‘아니다’만을 뜻합니다. (154P)

 

우리말에서 상하(上下)는 기본적으로 위아래를 가리키지만, 거기에는 다른 뜻도 여럿 있습니다. 상하는 좋고 나쁨, 귀하고 천함, 윗사람과 아랫사람 등을 뜻하기도 합니다. 가령 상하는 ‘상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펼쳤다.’와 같이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의미로 쓰입니다. 여기서 상(上)에 해당하는 말들은 대체로 긍정적이고 하(下)에 해당하는 말들은 대체로 부정적입니다. 상경과 하향도 사정은 비슷합니다.(233P)

 

일상생활에서 종종 생각하는 문제들을 책으로 읽으며 몇 번이나 고개를 끄떡였다. 자라는 청소년들이 사회적 약자의 그늘과 한국 사회의 뿌리를 이해하고, 차별과 편견을 허무는 평등한 언어 사용 습관을 갖도록 도와주는 이 책이 참으로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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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샘물의 시크릿 뷰티
정샘물 지음 / 비타북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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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은 동서고금을 통해 항상 존재해왔다. 하지만 지역과 시대에 따라 미의 기준이 달라진 것도 사실이다. 아프리카 어떤 부족은 입술에 큰 원형을 끼워 입술이 늘어질 데로 늘어났지만, 그것이 아름다움의 기준이라고 한다. 어떤 부족은 턱 아래 뾰족한 것을 길게 내어 빼는 장식을 착용했고 길이와 크기에 따라, 화려할수록 재력을 가지고 힘을 가진 남편이 있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들의 꾸밈에 대한 집착은 곧 여자들의 자존심이기도 하다.

 

모든 여성이 이성에게 매력적인 얼굴을 갖기는 어렵지만 메이크업을 통해서 자신감을 갖고 아름다워지는 변화의 과정을 통해 즐거움까지 느끼는 것이 바로 메이크업이 가진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아름다움의 대명사라고 말할 수 있는 정샘물은 '투명 메이크업의 거장'이다. 두껍고 짙은 화장이 대세이던 시절에 한 듯 안한 듯 내츄럴한 '투명 메이크업'의 트렌드를 몰고 와 여자들의 얼굴에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찾아주었다. 그녀를 대표하는 또 다른 수식어는 '스타 메이크업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명성에 걸맞게 정샘물의 손길을 거친 연예인은 다수다. 김태희, 이효리, 전지현, 보아, 카라 등을 바탕으로 누구나 예뻐지는 메이크업의 기본기를 알려준다.

 

그녀가 말하는 메이크업의 기본 룰인 '정샘물의 메이크업 KOD 7'은 '누구나 예뻐지는' 메이크업의 기본기를 알려준다. 책은 KOD 7을 바탕으로 응용할 수 있는 연예인 메이크업 카피캣 레시피, 얼굴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메이크업 레시피 등 정샘물식 다양한 메이크업 방법이 담겨 있다. 더불어 메이크업 아티스트로서의 삶이 묻어나는 이야기와 톱스타들과의 에피소드 등도 담겨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한다. 부제는 '프로처럼 메이크업하라'이다. 정샘물의 비밀 화장법을 익히고 난 후 화장대에서 변화된 내 모습을 상상해본다.

 

정샘물의 시크릿 뷰티 7가지를 알아보자.

1. 작고 입체적인 얼굴

얼굴에서 나온 곳은 더 많이, 더 두껍게 바르고, 들어간 곳은 얇게 바르거나, 아예 바르지 않는 방법으로 얼굴의 입체감을 준다.

2. 어려 보이는 동안

보색인 따뜻한 색과 차가운 색을 얼굴에 입히자. 예를 들어 잿빛 다크서클을 핑크 톤의 크림 섀도로 커버하면 한결 화사해 보인다.

3. 오래 가는 메이크업

촉촉한 텍스처와 건조한 텍스처가 만나면 그 지속력은 강력해져 롱라스팅 메이크업의 비법이 된다.

4. 나타났다 사라지는 선

굵기의 변화 없이 일정하게 그린 선과 강약을 조절해서 그린 선의 느낌은 다르다. 일정한 두께로 그린 아이라인과 눈의 중앙은 얇게, 양끝은 굵게 그린 눈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

5. 시선이 집중되는 황금 분할점

얼굴을 3등분하면 눈썹의 윗부분, 콧볼, 입술의 외곽 등 선과 선이 교차되는 지점에 이목구비의 끝부분이 만난다. 이 교차점에 이목구비의 모서리가 자리할 때 얼굴은 한 층 균형감 있어 보인다.

6. 포인트를 제외한 나머지는 심플하게

아이 메이크업이 화려하면 립 메이크업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볼륨감 있는 헤어스타일에는 자연스러운 메이크업을 매치해야 한다. 주인공이 주목받을 수 있도록 주변 요소들은 튀지 말아야 한다.

7. 옛것과 새것을 믹스하는 감각

클래식한 룩(50년대 여배우들의 레드 립스틱)과 캐주얼한 스킬(손가락으로 툭툭 찍어 바르기)의 조합, 옛날 스타일과 최신 스타일의 믹스(빈티지 아이 메이크업과 트렌디한 립 컬러와의 매치) 등 옛것과 새것을 믹스매치하면 트렌드 리더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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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
김현 지음, 산제이 릴라 반살리 외 각본 / 북스퀘어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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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도 화제를 낳았던 ‘청원(북스퀘어)’은 안락사라는 쉽지 않은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읽고 난 후엔 내 삶이 더욱 소중해지는 기분이다. 

 

주인공 이튼은 잘나가는 최고의 마술사였다. 하지만 그의 성공을 시기한 친구가 꾸민 사고로 사지마비가 된 채 14년을 살았다. 인간의 기본적인 생리작용을 물론, 파리가 눈앞에서 왱왱거리며 날아다니다 코에 앉아도 그 새털처럼 가벼운 파리하나 쫒아낼 수 없고, 밤새 내리는 비가 천장에서 새 이마위로 줄기차게 떨어져도 다음 날 아침 누군가의 도움을 받게 될 때까지 곤죽이 되도록 그 빗방울을 맞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나마 12년간 극진한 사랑으로 이튼을 간호해온 소피아 덕에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희망을 주는 강연도 다니고, 책도 쓰고, 재치 있는 입담으로 라디오DJ까지 소화해 낸다. 그런 일상은 그를 지치게 한다. 특히 유머 넘치는 이튼의 입담과 코믹 에로스적인 설정은 유쾌하기 까지 하다.

 

하지만 유쾌함은 역설적으로 더욱 슬프다. 어느날 이튼은 자신의 의지로 1분 1초도 살 수 없는 고통스러운 삶을 끝내고 싶어 한다. 변호사이자 오랜 친구에게 청원을 한다. 그의 마지막 삶의 투쟁이자 마지막 인생 마술은 그렇게 시작된다. 소설의 시작이기도 하다.

 

이튼의 청원을 책임진 그의 오랜 친구이자 변호사인 데비아니와, 연인과 간호사의 경계에서 이튼을 12년째 돌본 소피아가 펼치는 냉기 어린 설전은 독자의 각기 다른 생각을 보여준다. (저자가 후기에 기록했듯이 길을 여는 것은 작가이고 그 길을 가는 사람은 독자이다. 그 길을 가며 보고 듣고 느끼고 깨eke는 것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라 함)

 

하지만 행인지 불행인지 이튼의 간절한 청원은 기각되어 버린다. 자신이 진행하던 라디오프로그램으로 안락사 찬반투표까지 해가며 여론을 만들었지만 삶을 이어가야 한다는 패소를 한다.

 

고통스러운 삶이 계속 이어져야 함에 절망하는 이튼을 바라보는 소피아는 자신의 남은 생을 감옥에서 살아가더라도 이튼의 죽음과도 같은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며 도와주겠다 말한다. 사랑하지만 그를 위해 그 앞에서는 그 멋진 다리 한 번 내놓지 않고 자신을 억눌러 가며 살았던 소피아가 그렇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한 순간, 이튼은 그녀에게 청혼을 하고 마지막 하루 동안 '남편과 아내'가 된다. 그들의 애써 감춰왔던 가슴 아픈 사랑은 그렇게 단 하루를 남겨둔다.

 

책을 읽는 동안 애잔하면서도 빠트리지 않는 이튼의 유머에 콧등이 시큰해진다. 만약 내게 투표권을 줬다면 나는 이튼에게 한 표를 줬으리라.

“전… 저 애의 어미입니다. 저 애를 열 달 동안이나 배 속에 품었다 낳았죠. 누구보다 저 애를 사랑하고 아껴요. 하지만 저기 인생은 자기가 사는 거예요. 그 인생이 누구건데요?~그 인생은 오로지 저 애만의 것이죠.”(165p)라고 말하는 이튼 어머니의 대답은 가슴을 아프게 한다.

 

 말하자면 '청원'은 전신마비 사나이의 사연으로 행복하게 죽을 권리를 청원한 이야기다. 딱딱하고 지루한 법정 공방을 앞세우며 논리적으로 독자를 설득하려 하기보다 감성에 호소한다. '안락사'에 대한 윤리적, 종교적, 사회적 판단 그 모든 것을 떠나 잊을 수 없는 삶과 사랑, 그럼에도 인간답게 죽을 수 있기를 간절히 원했던, 행복하게 죽을 수 있기를 바라는 한 남자의 이야기에 오랫동안 마음이 먹먹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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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 나는 세상과 소통하고 싶다
한한 지음, 김미숙 옮김 / 생각의나무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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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부터 각종 글짓기대회에서 두각을 드러냈으나 고등학교 때 낙제와 함께 자퇴한다. 후일 랭킹 1위 카레이서가 되었으며 블로그 방문자 4억5000만명에 이르는 젊은 문화권력을 만들어내더니 2010년 ‘타임’지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된다. 중국 문단의 이단아라는 칭함을 받는 작가 한한을 소개하는 글이다. 마치 미국판 제임스 딘을 연상케 하는 그가 로드무비처럼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소설 ‘1988’을 출간했다.




1988은 주인공 ‘나’의 차 스테이션 왜건의 이름이다. 소설의 시작은 길 위에서 시작한다. 주인공 ‘나’가 1988이라는 왜건을 만들어준 친구를 찾으러 1988에 시동을 건다. 찾아가는 곳은 친구가 머무는 감옥. 며칠의 여정 가운데 첫날밤 여관에서 우연히 ‘나나’라는 매춘부와 동침하며 그의 여정이 펼쳐진다.




“선생님, 문 좀 열어주세요” 무슨 일이지? 문 앞으로 다가가 문틈에 귀를 대고 물었다. “누구신지… 무슨 일이죠?” “제발 방에 들어가서 말씀을 드릴게요”~나는 방문을 열었다(16p)




황량한 들판을 가로지르는 국도, 여행자를 기다리는 모텔과 식당, 주유소 그리고 뜻밖에 만난 반려자들이 기존 소설과 조금은 익숙하다. 시점은 현재지만 주인공의 과거가 회상되면서 마지막에 여러 가지 의문이 동시에 풀리는 구조를 갖고 있는 부분도 편안하다. 여행을 통해 동시대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목격하고 자아를 회복하는 과정은 매우 익숙한 모티브다.




‘나’는 첫날 투숙한 여관에서 뜻밖에도 생각지 못한 곤란한 상황이 벌어지며 매춘부 ‘나나’와 주인공 ‘나’의 과거가 하나씩 수면 위로 떠오른다. 첫 기억은 초등학생 때 국기봉에 올라갔던 일. 밑에서 선생님과 아이들이 가슴을 졸이는 사이, ‘나’는 나중에 첫사랑이 된 남색 치마를 입은 여학생을 보게 된다. 화자의 유년기는 무엇이든 잘하는 대학생 띵띵형, 담대하고 난폭한 성격으로 두목 노릇을 하는 10번, 말괄량이 여학생들, 대만그룹 ‘소호대’ 같은 대중문화의 매혹 속에서 흘러간다.




그와 동시에 어린 시절의 형과 10번, 리우인인도 내 기억 속에서 1988을 따라 앞을 향해 가고 있다. 평행관계를 유지하면서 영원히 만나지 못하고 동시에 진행되면서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이 소설은 5일간의 여정 이후 2년이 지난 시점까지의 내용이다.




‘나’가 마침내 친구가 있는 그곳에 도착했을 때, 친구는 이미 유골이 되어 있다. 이미 사형이 집행되었기 때문이다.




하늘이 어두워지자 나는 시동을 걸었다. 차머리를 동쪽으로 돌렸다~ 나는 1988을 세웠다. 아이는 잠들어 있다. 오늘은 아이가 울지 않았다. 나는 뒷자리에서 보자기에 묶인 함 하나를 꺼냈다. 그 안에는 1998 제조자의 유골이 들어있다. 내 마음 속에는 이 유골함에 띵띵형과 10번, 그리고 리우인인과 멍멍, 그리고 또 그녀가 함께 들어있었다(278p)




주인공이 친구의 유골을 자동차 '1988'에 싣고 다시 길을 떠나는 마지막 장면은 주인공이 세상과의 소통에 대한 욕구를 놓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못 희망적이다. 소설은 여자가 낳은 아이를 나에게 선물로 보내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 길은 괜찮으니까 계속 앞으로 가봐, 안녕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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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 사람혁명 - 상대를 내 사람으로 만드는 힘
신동준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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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은 시대가 만들고 시대는 영웅에 의해 변한다. 학창시절 삼국지를 읽으며 유비, 관우, 장비는 착한사람, 조조는 나쁜 사람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다 고등학교 때 다시 삼국지를 접하며 과연 조조를 간신의 대명사로 불러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세상을 조금 더 알게 되면서 조조에 대한 연민이랄까 동질감이 스멀스멀 밀려왔던 것도 사실이다.

 

조조는 덕으로 인재를 모은 유비와 달리 신분과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능력만 있다면 과감히 발탁, 적재적소에 배치한 결과 삼국통일의 기반을 마련했다. 특히 조조는 과거를 따지지 않았다. “내 사람이 된 이상 과거를 묻지 않겠노라, 앞으로는 나를 위해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주게”라고 부하 적군의 장군 진림에게 말하는 모습에서 조조의 포옹력과 인재욕구가 여실히 드러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살면서 우리는 전략이란 말을 자주 쓴다. 경영전략, 마케팅전략, 선거전략 등 여러 분야에서 활용하고 있고 심지어는 고스톱을 치는데도 전략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전략의 대가로 조조를 꼽는다. 그러면서도 ‘조조 같은 놈’ 하면 그건 간신배로 인정되었다.

 

하지만 글로벌화 된 현실에서 바라보는 조조가 간신배뿐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행여 조조에 대한 평가를 그렇게만 하고 있다면, 시쳇말로 직장에서 클 수 없다. 요즘은 달라진 생각들이 모여 조조를 배우자는 움직임도 있다. 조조의 진면목이 새롭게 조명되는 시점에 ‘춘추전국시대의 정치사상’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신동준 21세기정경연구소장이 ‘조조 사람혁명’(한국경제신문 펴냄)을 출간하면서 여기에 불을 지폈다.

 

저자는 조조에게서 수많은 장점을 뽑아냈다. 특히 인재를 활용하는 부분을 집요하게 추적해 그 지혜를 발굴해냈다. 15가지로 그의 시선을 모아보면 ‘모든 일의 시작은 사람이다’‘대의명분 없이 움직이지 마라’‘필요하면 적도 스카우트하라’‘진심을 먼저 보여라’‘인재는 스스로 오지 않는다’‘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다’‘나를 모욕한 자라도 상관없다’‘의견은 듣되 결정은 직접 하라’‘인간적 실수는 눈감아주어라’‘작은 인연이 모여 큰 인연을 만든다’‘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이 능력이다’‘리더의 믿음은 충성으로 돌아온다’‘함께할 수 없다면 죽여라’‘아낌없이 베풀어라’‘사랑보다 두려움이 낫다’로 제목만으로도 흥미롭다.

 

조조의 리더십에서 가장 돋보이는 대목은 ‘사람혁명’이다. 그에게는 인재를 얻고 활용하는 지혜가 있었다. 신분과 형식 등에 얽매이지 않고 능력만 있으면 과감히 발탁해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인재 정책은 조조가 천하를 호령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이었다. 또, 한 가지라도 특별한 재주가 있는 자를 높이 평가하며 대접했다. 조조는 “성공은 혼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와 함께하느냐가 어떤 성공을 이룰 수 있는지 알려준다”는 진리를 꿰뚫고 있던 것이다.

 

마지막 부분 ‘조조, 사람을 탐하다’에서 저자는 스티브잡스와 조조를 비교했다. 그의 비교는 공감 가는 부분이 많다. 조조는 세상 사람들로 부터 손가락질 받는 환관 집안 출신이고 잡스는 입양아 신분이었다. 조조는 희로애락의 정서를 거의 여과 없이 드러내는 호방함과 파탈 행보로 백성은 물론 선비들을 감복시켰다. 애플제국을 창건한 잡스도 새 제품을 발표할 때마다 청바지를 입고 온갖 독설과 자화자찬을 늘어놓는 악동 기질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전 세계의 소비자들은 꾸밈없이 실력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그의 천재성에 환호했다. 두 사람은 ‘파탈의 리더십’을 발휘함으로써 천하를 호령했던 공통점을 지적했다. 돌아보면 조조는 자신의 곁에 있는 모든 사람이 '멘토'이자 '팔로워' 임을 이미 깨닫고 있었다. 그러기에 조조의 장점을 잘 뽑아낸 이 책을 읽으며 한문장 한문장 마다에 탄성을 지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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