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차 수업 - 차, 이제 시작해 볼까요?
김진방 지음 / 얼론북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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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차 수업>

'차'가 처음에는 어렵고 격식을 갖추어야 할 것 같아 배우기 힘든 적이 있었다. 하지만 차를 우리거나 마시는 사람들의 아름다움과 그 분위기를 좋아하게 되면서 다기의 아름다움에 빠지게 되고, 또 그 기물을 고치기 위해 수선하는 법을 배우고, 차를 우리고 마시는 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물론, 기물을 하나씩 꺼내고 썼다가 넣는 일은 바쁜 내겐 약간은 호화스러운 일이라 이렇게 여유 시간이 있을 때만 여유와 즐거움을 누리게 되지만.

'맛'과 '멋'에 일가견이 있는 김진방 님이 내신 이 책은 차 책을 좋아하는 내게도 특별한 책이었는데, 마치 차의 세계에 입문한 내게 사형(?)이나 선배(?)같은 존재가 옆에서 어떻게 차를 처음 접하게 되었고, 차를 우리는 다구, 그리고 계절에 따라 깊어지는 차의 지식들, 그리고 차를 통해 만난 인연을 족보처럼 알려주는 듯한 책이었다. 책에 소개된 차들 중 마셔본 적이 있는 차, 조금이라도 아는 차는 어머 이 차 마셔본 적 있는데! 또는 아 이 차가 이런 의미였어! 하고 무릎을 치게 하는 책이었다. 마셔보지 못한 차는 언젠가 마시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근간의 요리와 음식을 다룬 김기자님의 책에서 알 수 있듯이 필력과 재미가 상당해서, 한자와 역사, 의미로 어떻게 보면 어려울 수 있는 차(여기선 중국차를 주로 다루고 있음)를 정말 차근차근 알려주는 듯한 에세이였다.

물론 재미도 있는데, 특히 차를 마시는 것을 관능적인 터치로 묘사하는 데는 정말 배꼽을 잡고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차를 엄숙하고 (물론 기물을 깰까봐) 조심스럽고 긴장되게 차를 우리는데 그가 묘사한 차를 마시는 과정은 이렇다.

"차라는 직설적인 관능
조금더 관능적인 곳으로 들어가 보자...안정...평온...이보다는 시각, 후각, 미각 등 몸으로 느끼는 관능적이고 직설적인 기쁨이 더 크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상상해 보자...이 호사는 차를 직접 우리면서 더 깊어지며 더 큰 기쁨으로 나아간다. 찻잎을 조심히 떼어 내 차하에 둘 때 손가락 끝에 닿는 찻잎의 감촉, 차호에 찻잎을 넣을 때 '사각'하고 찻잎이 차호 벽면에 쓸리는 소리, 찻물을 끓일 때 적막을 깨는 전기포트의 보글거림, 찻물을 차호에 부을 때 떨어지는 물줄기의 모양과 움직임, 공도배 거름망을 받치고 차호를 기울여 시원스레 찻물을 떨어트리는 호쾌함, 찻잔에 차를 나누는 공유의 순간, 차를 마실 때 올라오는 향과 혀를 스치고 내려간 뒤에 남는 차의 맛까지. 이 모든 순간은 우리에게 직설적인 관능을 선사해 준다."

여름의 차로 추천되어 있는 백차 중의 백호은침을 마셔 본다. 차를 받은지 2년이 넘은 것 같은데, 이제 5년째라 3년이면 약이고 7년이면 보배라는데 이제 약과 보배의 중간이 된 것을 마셔 본다. 유리 차호를 써서 잎이 반듯하게 선 모습을 보며 차멍을 한다는 이야기에 황급히 개완과 유리 티포트로 같이 마셔 본다. 보송보송한 차잎을 느끼고 우러 나온 뒤 통통하게 윤기가 오른 찻잎을 보며 은은한 차를 마신다. 여름의 더위가 가시는 걸 느껴 본다. 아, 좋은 여름날의 차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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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담는 시간 - 토림도예 도예가 노트 ðiː inspiration 작가노트
김유미 지음 / 오후의소묘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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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림도예 김유미 작가님의 에세이가 나와서 바로 보았다. 책을 보면서 정말 '갈고 닦는다'는 말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물레를 차고, 굽을 갈고, 면을 다듬는 일련의 과정과 그림과 문양을 올리는 과정을 옆에서 보는 느낌이었다. 다기와 다구를 하나씩 개비하면서 이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했었는데 그런 작업 과정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어 좋았다.

안성에 가서 직접 작가님의 기물을 보고 추천을 받고 차를 마셨던 추억이 떠오른다. 빈티지블루 개완과 잔이 유명하고 시그니처이지만 실제로 가 보니 눈에 들어온 것은 흑유였다. 어두운 색이면서도 광이 있어 밝고 빛났다. 작가님이 주셨던 차도, 나누었던 대화도, 아이 이야기도, 그리고 많던 아름답던 기물들도 책을 보며 다시 떠오르는 느낌이었다.

물론 흑유로 시작된 토림도예는 빈티지 블루, 백자, 무유, 고백자 모두 구비하게 했는데...조금씩 모양과 색에 차이가 있어 기분과 느낌, 날씨와 차에 따라 골라서 우리는 즐거움이 있었다. 킨츠기를 배운 이유도 빈티지 블루 개완의 작은 흠을 메우려고였다. 책에서 작가님도 킨츠기, 향도에 대해 쓰셨어서 아침에 향을 하나 피워 놓고 차를 우려 보았다. 처음 사랑에 빠졌던 흑유 개완에.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하시는 작가님이 부러워지는 책이었다. 단정하고 진심인 삶의 자세와, 아름다운 다기와 사계절이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표현된 사진도 참 좋았다.

좋았던 구절
"소설 한두 편을 써내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아요. 그러나 소설을 오래 지속적으로 써내는 것, 소설로 먹고사는 것, 소설가로서 살아남는 것, 이건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보통 사람은 일단 못할 짓, 이라고 말해버려도 무방할지 모릅니다.
-36-37p,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2차인용

공예품이 사랑받는 건 공예 작가가 만들어내는 모든 물건에 담기는 인내와 고뇌 때문이 아닐까. 공예품은 똑같은 물건도 처음 만들어낸 물건과 지금, 그리고 앞으로 만들어질 모든 물건이 다르다. 그것이 더 좋아질 수도 더 나빠질 수도 있지만, 적어도 지금 내가 만들고 있는 물건은 어제 내가 만든 것보다 더 많은 인내와 고민이 담겨 있다. 156p

새로운 잔을 디자인하기 위해 한동안 와인잔을 연구했다. 와인잔과 우리가 만드는 찻잔은 비슷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담기는 음료의 맛과 향을 최대한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 와인은 종류에 따라 사용하는 잔의 형태가 정해져 있고 두께가 얇고 강도가 높은 잔을 고급으로 친다. 왜 우리가 만드는 찻잔이 얇은지 근거가 돼줄 수 있지 않을까? 잔의 두께는 입에 닿는 촉감에도 영향을 끼치지만, 잔을 지나 입으로 들어오는 순간의 느낌에도 영향을 준다. 둔탁한 느낌의 잔은 입술의 감각에 집중을 흐뜨러뜨리고 차의 맛과 온도에 영향을 준다. 그렇다고 얇은 잔이 차를 마시는 데 정답이라는 것은 아니다. 맞고 틀리고는 없다. 그저 기준과 취향의 차이일 뿐이다. 167-16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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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추럴 와인; 취향의 발견 - 온전한 생명력을 지닌, 와인의 ‘오래된 미래’
정구현 지음 / 몽스북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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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추럴와인에 대한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그에 못지 않은 애정이 듬뿍 느껴지는 책. 지금까지의 내추럴와인 애호가들을 위한 책과 결을 같이 하면서도 훨씬 체계적이면서 보기 쉽게 저술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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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의 신호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장소미 옮김 / 녹색광선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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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구멍으로 물처럼 흘러 들어가며 뜨거워지는 이 황금색의 차가운 액체'
프랑수아즈 사강의 "패배의 신호"에는 한 차례 와인이 엎질러질 때와 주인공이 칵테일을 연신 들이키는 장면 외에는, 신기하게도 와인이 아닌 위스키를 주인공들이 계속 들이키고 마신다.

버번 잔에 위스키를 담아 향을 맡으며 책을 모두 읽었다. 이번 책도 그간의 녹색광선 출판사의 책처럼 소설을 읽으면서 공감각적으로 풍경과, 이미지 그리고 감정의 변화가 머리 속에서 느껴지고 떠오르는 책이라 좋았다.

'고독 속에서도 더러 완벽한 행복의 순간이 있다. 위기의 순간엔 외부적인 어떤 것보다도 기억이 우리를 절망에서 구한다. 우리는 우리가 혼자서, 아무 이유 없이 행복했다는 걸 안다. 우리는 그것이 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다. 행복-우리가 누군가로 인해 불행할 때 그 누군가와 필연적이며 유기적으로 관련이 있어 보이고, 또한 그 누군가에게 달려있는 것처럼 보이는 행복-은 실은 매끄럽고, 둥글고, 흠 없는 무언가로 더할 수 없이 자유롭게, 우리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처럼(물론 잠깐일 수 있지만, 틀림없이 가능하다) 나타난다. 이 기억은 우리에게 이전에 다른 누군가와 공유했던 행복보다 더 위안이 된다. 왜냐하면 그 다른 누군가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되었을 때 그와 공유했던 행복은, 실수로, 아무것도 아닌 것에 기반을 두었던 허무한 기억으로 떠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과 결혼, 직업과 로맨스, 행복과 고독에 대한 모든 개념이 해체되고 재조립되는 경험을 하게 되리란 책 머리의 예고는 맞았다. 마흔을 앞두고 읽은 책으로서는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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