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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릿대 베개
마루야 사이이치 지음, 김명순 옮김 / 톰캣 / 2024년 1월
평점 :
마지막장을 덮으며
(평론가님의 해설까지 완독)
나는 극히 조용해졌다. 아니 겸손해졌다고나 할까
스무살,전쟁 때 징병기피자로 일본 전역을
목숨걸고 도망 다니던 하마다,
그는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나는 죄인인가?'
'나는 비겁한 것인가?'라고,
그는 징병기피의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오해하지 마, 장개석과 루즈벨트가 무서워서 징병 기피를 한게 아니니까, 죽는 것이 두려웠던게 아니라 적을 죽이는 것이 싫었던 거야. 전쟁이라는 게, 그리고 군대라는 게 천성덕으로 싫어. 목숨이 아까워서 징병기피를 한 게 아니라는 것쯤은 이제 알겠지?"p73
"첫째 전쟁 그 자체에 대한 반대, 둘째 이 전쟁에 대한 반대, 셋째 군대 그 자체에 대한 반대. 넷째 이 군대에 대한 반대....."p131
그의 징병기피도 놀라웠지만(왜냐하면 그것은 국가에 대한 반혁이고 결과는 사망이기때문이다)그의 의식도 놀랍고"물 탄 위스키를 줘. 난 일본 정신이 취향에 안 맞거든."p136(와우! 문학이라도 이런게 가능할까싶은) 그리고 5년여의 도망의 시간동안 아키고와의 사랑은 가장 순하며 시적이기까지 하다. 불안의 시절, 아키코는 묻는다.
"전쟁이 끝나면 어떡할 거야?"
"끝나지 않아. 영원히."
"영원히?"
그리고 칠석날 장식으로 종이사슬을 만드는 야기코
"내년 칠석때 켄 짱은 여기 없겠네.
도쿄에선 이런거 안 하지?"
"응, 내년까지 목숨이 붙어 있을지 없을지."
"일년에 한 번밖에 못 만나다니. 안됐다.
나 같으며ㆍ 그 만큼을 모아서 매일 밤 만날 텐데..."p261
이 칠석때 쓰인 색종이 색이
이 책의 표지 색으로 쓰인게 아닌가싶다.
'빨강과 노랑은 한 장씩밖에 없고 자주, 초록, 보라,주황은 두장씩, 금색과 은색종이는 구할 수 없었다. 어떤 색이든 색종이가 다 그렇지만 빨강과 노랑은 유독 어둡다.p255
그런 아키코와 그는 이별하게 된다.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전쟁의 휴유증이겠지.
"그때 난 생각했어. 끝났다고.
그땐 전쟁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야.
우리 두 사람의 관계도 끝난 거였어."p379
전쟁은 끝났고 그는 전쟁을 피할 수 있었지만,
그 후 그는 행복했을까? 아니 그일은 끝끝내
그를 괴롭혔다. 이십여년이 지나도 그는 결코
징병기피자라는 과거의 사슬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의 결혼생활도 그의 사회적인 관계들도 부모도
형제도 모두 과거와 연결되어 있었고 그 불안의 삶은
그 후로 계속되었다.(얼굴을 들 수 없을정도로)
'여러 사람의 얼굴로 만들어진 벽이 우뚝 솟아올라.
그 얼굴들이 입을 맞추어 하마다를 비웃었다. 빰을 일그러트리고, 눈을 가늘게 뜨고, 눈을 내리 깔고, 열심히 웃음을 억누르고 입술을 비틀면서, 하마다는 그 부드러운 벽에서 흘러나오는 모욕과 경멸과
연민을 견뎌내야 했다.'P408
그의 남은 삶은 내내 조릿대베개를 베고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하는 시간들인것이다. 그 서걱거리는 불안한 소리, 그 까슬거리는 불안한 여행....
그 잠들지 못하는 짧은 잠들,
이 소설은 현재의 삶과 과거의 삶이 계속해서 겹친다. 그 유명한 '의식의 흐름'기법이라고는 하지만 결코 난해하지 않다. 소설의 구성이 너무나도 기막히게 아름답다. 정말 좋은 작품을, 깊이가 남다른 작품을 소개받은듯 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에도 거론될 정도로 (작가의 직접 체험인지는 모르겠지만,) 꼭 생애 한번은 읽어도 좋을만한 작품이다.
천천히 완독의 즐거움을 누렸다. 일본 지명들이 쉽게 쉽게 문장을 넘어가지는 않지만 마루야 사이이치의 문장들은 보통의 평이한 생을 우아하게 가꾸어준다. 징병기피제가 소재였으나(그것만을 주제로 읽기보다는) 주인공의 사유와 삶은 더 큰 울림을 준다.
'저 국가에서 날아온 그 소집 영장도 이렇게 버렸으면
좋았을것을. 하지만 나는 이제 그 사람이 아니다. 끌려가서 싸우고 그러다 죽는. 나는 이제 그들 중의 한 사람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공통된 운명이 있다. 그 공통성이 그들의 운명을 위로해 줄것이다.
축복해 줄 것이다. 그리고 내게는 나만의....고독한 운명이 있다. 나는 그 운명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나는 자유로운 반역자인 것이다.'p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