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랜드
제시카 브루더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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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아무런 사전 정보없이 읽기 시작했다. 서문에서 나는 작가가 얘기하려는 것이 무언지 알고 나서 그것을 묘사하는 방식에서 경악하고 말았다. 하지만 책장을 다 넘기고 나서는 그런 그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유랑하기 시작했다. 문제의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결론은 집을 유지할 경제적 여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집값은 집을 사기 위해 진 빚보다 더 낮아졌고 일자리는 줄어들었다. 집을 대신해 지내야 할 곳이 필요한 사람들이 차에 살기를 선택했고 주차할 곳과 일자리를 찾아 바퀴 달린 집을 끌고 미국을 떠돈다.

이들은 계절노동을 찾아 돌아다닌다. 일하기 위한 것이므로 워캠프라 부르는 곳들을 찾아다니는 많은 노마드들은 은퇴자들이다. 혹은 강제 퇴직자들이다. 은퇴할 나이가 된다고 해서 일을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해야만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주어지는 일들은 노동의 강도가 세고 임금은 적은 일들이다. 계절노동이 필요한 것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비정규직의 탄생에서부터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논리적으로 일자리가 한시적인 것이라면 정규직을 쓰는 것보다 임시직을 쓰는 것이 회사로서 좋은 일이다. 그렇다면 당연하게도 유연한 일자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해 비정규직의 임금이 정규직의 임금보다 높아야 할 것이다. 정규직을 줄여 임시직을 만들었다면 시간이 줄었으므로 회사는 더 높은 시간당 임금을 지불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구직자가 많으니까, 혹은 일이 쉬우니까 하는 말들은 다 핑계이다. 규제하면 된다. 자유경제체제에 진짜 자유란 존재하지 않는다. 합의만이 존재할 뿐이다.

노마드들을 탄생시킨 가장 큰 원인은 2008년의 모기지 사태일 것이다. 버블의 붕괴. 버블이 생기는 이유와 붕괴하는 이유는 천차만별이겠지만 버블은 언젠가 꺼지기 마련이다. 현재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끝없는 집값 상승, 정확히는 아파트값 상승, 그리고 주식과 비트코인 등에 대한 무분별한 투자를 나는 버블이라고 생각한다. 2008년 전에도 우리는 일본의 버블 붕괴를 보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2008년을 겪었고, 앞으로 또 다른 버블의 붕괴를 볼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욕심이 규제되지 않는한 버블은 계속 끓어오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아파트 값을 보면 규제에 굴하지 않는 인간의 욕심이 얼마나 무서운지 매번 놀라게 된다. 시민들은 왜 그런 가격변동의 이유를 찾으려 하지 않는 것일까? 그 안에서 내가 돈을 벌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어째서 상식인걸까? 또한 왜 정부나 언론은 시민들에게 경고하지 않는가? 역사가 항상 되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 책의 중심 인물인 린다는 노마드생활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다른 사람들도 많이 등장한다. 그들이 행복한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집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면, 혹은 집과 일자리가 생기는 기회가 생긴다면 그것을 마다하고 계속 떠돌아다니는 선택을 할까? 제 5도살장에서 인용한 것 처럼 미국인들은 가난을 개인의 문제로 생각하는 것 같다. 자유 경제주의라는 체제에 세뇌된 것 마냥 군다. 당연히 우리는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게 마련이다. 노마드 생활을 하는 이들이 만족하는 것은 그 직전에, 집을 유지할 수 없어 괴로웠던 상태에서 벗어났음이지 집을 유지할 수 있지만 그것에서 탈출한 것이 아니다.

나는 이 책이 강요된 선택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세상의 흐름 안에서 살아간다. 내가 아무리 증여세를 90%로 만들고, 주식은 1년 안에 되팔기를 금지하고, 과열된 주식 매매가 금지되는 것처럼 아파트 값이 폭등하면 매매를 금지시키고, 자본에 의한 소득에는 소득세 비율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만들고 싶다고 해도 할 수 없고, 내가 샀던 집의 가격이 폭락해서 모기지를 갚는 것에 의미가 없어진다고 해도 할 수 없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할수 있는 것들 중에서 고르는 것이다. 가난함 뿐만이 아닌 게으름으로 낙인찍히는, 심지어 불법인 홈리스가 될 것인가, 다른 사람들의 짐이 될 것인가, 불편하고 불안하지만 자립해서 살 것인가. 그래서 이들은 마지막을 선택했다. 이들이 세상이 흘러가는 방향을 알리는 지표생물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그들이 알리는 것은 앞으로 더 많은 노마드들이 생겨나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지 않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경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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