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의 뿌리 - 조선시대부터 대한민국까지, 현대 한국군의 기원을 찾다
김세진 지음 / 호밀밭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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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의 정체성을 찾아서

한국은 민비를 황후, 국모, 심지어 여신으로 칭송하며 우상화하기도 한다. 뮤직비디오, 뮤지컬, 드라마, 소설 등도 민비를 미화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 정도가 지나쳐 역사를 스스로 왜곡하는 수준이다. 민비는 국고를 탕진하며 임오군란을 자초했다. 국정 농단, 부정부패, 미신 신봉, 당파 갈라 치기, 가문 독재, 비선 실세, 표리부동, 외세 개입 주도 등 그가 조선 망국에 일조한 근거는 셀 수 없다. '강대국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지향했다'라는 해석도 있지만, 소신과 원칙은 물론이고 식견조차 없는 상태에서 '표변했다'란 것 외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다. 민비의 죽음을 오직 일본의 탓으로 여기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당시 세계 각국 공사들도 대원군을 민비 암살의 주범으로 규정했다. 대원군이 없었다면 민비 암살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즉, 실정을 거듭하고 청나라-일본-러시아 사이를 멋대로 오가던 민비는 대원군과 일본에 의해 살해됐다.

- 제1장 저물다. 조선군. 74.

소설가 이문열은 소설 명성황후를 펴내면서 민비의 민비의 무속신앙에 대해 ' 황후는 미신에 깊이 빠져 무당을 군으로 봉하고 매사를 거기에 묻고 결정했으며 세자를 위해서는 금강산 일만 이천봉 봉우리마다 쌀 한섬과 비단 한 필을 바치게 했다. 얼핏 들으면 황당해 보이지만 이해 못 할 일도 아니다. 외형상으로 거기에 바쳐진 쌀과 비단은 낭비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누군가 우리 백성이 먹고 입었을 것'이라며 저자와 다른 견해를 밝힌다.

나의 입장은 이문열이 아닌, 저자 쪽으로 기운다.

감수성 예민하던 시절, '나는 조선의 국모다'를 읽었다. 명성황후가 시해 당하던 그 장면에서 망국의 설움에 하염없이 울었다. 아마 작전명이 '여우사냥'이었던 것 같다. 낭인들의 칼날에도 위엄과 기품을 잃지 않고 '나는 조선의 국모다'라는 말할 때는 고개가 숙연해졌다. 그때는 그랬다.

가련하고 비련한 그녀를 강단 있는 여성으로 변화시킨 것은 국제정세이고. 그녀는 조선왕조의 희생양일 뿐이라고.

그러나 여러 권의 잡다한 역사 서적을 섭렵한 후로 역사와 소설은 다르며, 그녀는 희생양이 아니라 '자멸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청나라에게 서태후가 있었다면, 조선에는 민비가 있었다.

독립운동가가 맞서야 할 대상은 민족주의도, 사회주의도, 출신과 지역할당도 아닌 '일본 제국'이었다. 하지만 독립운동을 했다는 대다수 기간은 조선인끼리 서로 싸우고, 이를 봉합하려고 회의를 열고 중재기관을 만들고 다시 분열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게다가 서로를 밀고하고 암살한 경우도 많았다. 일본제국은 이런 '조선인의 성향'을 활용하며 독립운동을 치밀하게 방해했다.

- 제3장 갈라지다. 의병, 독립군, 광복군, 일본군, 만주군, 중국군. 141.

계속하여 저자는 조선군과 대한제국군에 이어 '한국군의 뿌리인 독립군'에 대해서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 논조에 날이 잔뜩 서려있어 읽는 내내 간담이 서늘하고 날카로운 통증을 느끼는 것만 같다.

저자는 '의병'과 '독립군'은 전혀 다르게 보고 있다. 국가고시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외우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서 갈라진 독립투사들의 집단들에 대해 싸늘한 미소를 보내고 있다.

앞서 저자의 논조에 동의했다면 이점에 대해서는 약간 견해가 다르다.

우리에게는 공통의 적 '일본 제국'이라는 단일한 목표가 있다는 것은 맞지만, 그 방법론에 대해서는 각 단체마다 이념이나 사상이 모두 달랐다. 교육으로, 전쟁으로, 중요 요인 살해로, 폭파로, 서로의 입장 차이가 각개전투처럼 집단들을 양성했고 모두 공공의 적을 위해 싸운 것은 맞지만, 내부의 적도 응징해야 했다. 그 점을 저자는 '조선인의 성향'이라고 얕잡아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아닌데....


대한민국은 광복과 한국전쟁을 거쳐 여기까지 왔다. 대한민국의 역사 안에 군인이 있고, 군대가 있다.

한국군의 뿌리를 찾는다는 것은 한국 역사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이며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한 권의 역사서와 같다.

저자는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군인의 길을 걸었던 사람이다. 하지만 군복을 벗고 지금은 비르투스 대표로 인재 양성에 힘을 쏟으며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군복을 벗은 이유는 정체성에 혼란이 왔기 때문일까?

한국군의 뿌리는 비단 군대의 시작과 말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의 역사를 아우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근현대사에 저자의 시선이 머물며 여느 역사학자와는 다른 견해를 비춰 생경하지만 신선하다.

지금껏 누구도 이렇게 이야기 한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여러 권의 책을 읽었지만 이렇게 날카롭고 거침없이 이야기한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책에는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 백번 이긴다'라는 자주 인용되는데 '지피지기'는 '한국군의 뿌리'를 찾는 일부터 시작된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하는데, 지금은 전쟁 중이 아닌, 평화의 시대이므로 '나부터 아는 것'이 필요하다.

저물고 움트다 갈라지고 싹튼 한국군은 구군부와 신군부 등 대한민국의 현대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한국군을 안다는 것은 한국의 현대사를 안다는 것과 같다.

역사학자가 아닌, 정치학자가 아닌, 군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한국사에 대해 궁금하다면 일독하길 추천한다.

편협한 시야에서 벗어나 조선시대부터 대한민국까지 현대 한국군의 기원에 대해 전혀 다른 지평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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