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마흔'이라며 불혹을 준비하던 시기가 엊그제 같은데 '기꺼이 오십' 반백년을 맞이할 나이가 되었다.
세월은 속절없이 흐르고 화살처럼 지나가 버린다.
이 책은 '오십','글쓰기','자기 역사'라는 단어에 꽂혀 읽게 되었다.
1장의 제목에도 나오고 책 표지 뒷면에도 등장하는 '오십이 되기 전에 나의 역사를 썼다면 암에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가정문을 읽고 '작가가 암에 걸렸고, 그 과정을 극복하면서 자기 역사를 쓴 성찰의 결과물 일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오십이 되기 전에 나의 역사를 썼다면 암에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문장을 놓고 지레 짐작하며 그 여정을 따라가 보고 싶은 마음에 읽기 시작했는데, 암에 걸린 것은 작가가 아니라, C였고, 작가가 참가자들이 쓴 글을 소개하며 작가의 생각을 덧댄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에 '어 이게 아닌데'라고 내가 정한 방향이 완전히 비껴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작가가 일본에서 출간된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이라는 책을 참고하여 2019년 1월부터 '디어 마이 라이프'를 기획하고 실행하면서 참가자들이 쓴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글 쓰는 게 부담스럽다.", " 내 과거를 왜 남겨야 하느냐?", "왜 과거를 까발려야 하느냐"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고, '진작 알았더라면 ... 다르게 살았을 텐데", "내 인생의 퍼즐을 이제야 맞춘 느낌이다"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하는데, 나의 이모는 후자였다.
이모는 곧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인데, 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엄청 고생을 많이 하셨다.
시집오기 전에는 버스 안내 양을 하였고, 그 이후에는 보험설계사를 하였다. 서른 중반에 이모부가 세상을 떠나고 혼자 남매를 키우며 모진 세상을 억척같이 살다가, 보험설계사를 은퇴하고 뒤늦게 만학도가 되어 방송통신대학에 들어갔는데 거기 과제가 '자기 역사 쓰기'였다고 한다. 글을 쓰면서 지나온 세월에, 자기 연민에 한없이 울었다고 했다.
이모는 고생한 이야기를 자식들에게 감췄는데 자식들에게는 좋은 것만, 좋은 이야기만 들려주고 싶은 마음에 그랬다고 했다.
과제를 제출해야 하는데 타자를 칠 줄 몰라 이모가 우선 글로 쓰고 큰 딸이 그것을 타이핑해 주는데 그때 큰 딸은 이모가 꽁꽁 감춘 그 사연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아비 없는 자식'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엄한 엄마가 된 이모를 큰 딸이 이해하게 되었고, 서로 안아주며 화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작가는 말한다.
'나의 역사 쓰기'를 마친 사람들에게 일어난 기적 같은 변화를 직접 보고 체험했노라고.
역사 쓰기를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배우고 깨달은 사람들의 얼굴에 환한 빛이 떠오르는 걸 여러 번 목격했노라고.
지금까지 '자기 역사 쓰기의 기적'에 대해 말했다면, 이제는 책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에 대해 말하고 싶다.
책은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 3장에 오래도록 시선이 머물렀다.
세계에서 항우울제를 가장 많이 복용하는 덴마크 사람들의 행복지수는 세계 2위이다.
2020 세계 행복 보고서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53개국 중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61위이다.
덴마크는 2위를 기록했다. 행복지수는 2위인데, 항우울제 복용이 1위라니?
항우울제란 우울한 상태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할 뿐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지는 못하는데, 덴마크 사람들이 항우울제를 많이 복용하는 것은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더 불행해서가 아니라, 다른 나라에 비해 덴마크가 문화적으로 우울증을 잘 이해하고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우울증 치료도 열심히 하고 항우울제도 복용하는 것이라고 한다.
까칠한 마음이 들 때, 버럭 화를 내고 싶을 때, 소심해질 때, 슬퍼질 때, 우울해질 때 이 모든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한다. 우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긍정'이다.
항우울은 알약이 아니라 '진정한 긍정'으로 극복할 수 있다.
다음은 '가족'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은 가족을 의미하는데, 책에서는 '가족이라고 모두 궁합이 맞는다고 생각하지 말라'라고 조언한다.
'가족이라는 병'의 근원은 가족주의이고 가족 간의 '경계 지키기'가 꼭 필요하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내가 '스위트 홈'이라는 틀에 갇혀 사이좋은 부부와 자녀가 오순도순 살아가는 환상을 품고 가족 구성원 간의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가자들의 사연도 하나같이 심금을 울리고 가족이라는 이름의 무게를 '글쓰기'를 통해 덜어낸 것 같아 안도했다.
이 책에 소개된 각자의 사연들은 신기하게 모두 남의 이야기 같지 않다. 굳이 오십이라는 방점을 찍어 '중간 점검'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자기를 돌아보고 싶고 자기 역사를 쓰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앞선 '참가자'들의 경험을 거울삼아 숨겨 놓은 과거의 단편들을 끄집어 내는 것만으로 지나온 자신과 화해하는 일이 될 것 같다.
자기 역사, 인생 글쓰기에 대한 지침이 필요하다면, 이 책을 소개하고 싶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