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이 있는 줄 어떻게 알았어?"
"에잇. 그걸 어떻게 알아!"
"어? 진짜? 우리 집 물 참 좋았었는데?"
"허허. 미칼라! 나올 때까지 파는 거야.
4길을 파야지 하고 계획하고 파는 게 아니라 4길까지 팠는데 물이 나온 거지."
- 목수가 되기 전 어린 나의 아빠. 36.
인생은 그런 것이다.
계획하고 파는게 아니라, 팠는데 물이 나온 것이다.
삶의 이치를 조금만 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그 많은 계획들을 수고스럽게 짜지 않았을텐데...
삶은 단순해야 한다.
삶은 목수의 손처럼 투박해야 한다.
'목수가 되기 전 어린 나의 아빠'를 읽으며 소리 죽여 울었다.
돌아가신 '나의 아빠'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나의 아빠는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어 치이고 부대끼는 삶을 살다가 한순간 허망하게 돌아가셨다.
책을 읽으며 아빠를 위한 회고록을 써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칼라가 부모님과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보물처럼 반짝이는 삶의 답들을 본 것처럼, 아빠를 추억하며 남겨진 내 인생에 등대를 만들고 싶다.
"미칼라. 생각해 봐라. 척과에서만 살다가 천리 길이나 떨어진데 와서 아는 사람 아무도 없이 얼마나 외로웠는지 몰라. 그리고 내가 말 한마디라도 할라치면 동네 사람들이 막 웃는 거야. 경상도 사투리 쓴다고. 그러니까 말도 한마디 제대로 못 하고, 밥도 못 먹고... 너무 힘들었어. 어느 날은 여기가 어딘가 싶을 만큼 정신이 아득해졌다니까."
- 목수와 그의 아내가 되다. 109
목수 아내의 고백에서 신혼생활의 달콤함보다는 씁쓸함이 느껴졌다.
천리길 떨어진 곳에서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같은 여자이자 기혼자로서 목수아내의 독백이 남의 말처럼 들리지 않는다.
우리는 흔히 결혼을 인생의 무덤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목수와 그의 아내가 결혼하지 않았다면 미칼라도 없었을 것이고 이 책도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틀인가 삼일인가 만에 바로 퇴원해서 그럴 거야."
"왜 그렇게 빨리 퇴원했어?"
"일해야지. 일을 해야 모든 게 돌아가지."
- 513-7번지. 226.
목수와 그의 아내에게 일은 생계를 위한 수단이자, 종교이다.
그들에게 일은 신앙과 같다.
절단 된 손가락은 일주일 정도 치료를 잘 받으면 신경이 살아날 수 있었다.
그러나 목수는 퇴원한다.
톱질과 못질을 해야 육성회비도 내고 쌀도 팔아 먹기 때문이다.
일을 해야 모든 것이 돌아가는 현실에서 휴식이 아닌 휴양조차 목수에게는 사치이자 이단이었다.
"거기 나오는 노인네들이 젊었을 때 로망이 뭐냐고 서로 묻더라."
"뭐라고 했는데?"
"열심히 일해서 토끼 같은 새끼 기르고 마누라랑 둘이 사는 거라고 하더라."
"엄마 로망은 뭔데?"
"나도 그렇지 뭐."
- 돌아보니 50년. 256
여기까지 읽었을 때 결국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목수가 되기 전 어린 나의 아빠'부터 누르고 눌렀던 눈물이었다.
목수와 그의 아내. 영화 속 '로망'의 두 노인, 그리고 우리 부모님, 지금의 내 모습이 오버랩 되며 '사는거' 그게 뭔지...
결국 '사는거' 그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온 거였다. 살아 남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