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말 - 삶의 지혜로 읽는
신성권 지음 / 피플앤북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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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운명을 사랑하라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도덕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이 도덕이라고 부르는 것은 벌을 받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적당히 이름 붙인 공식적인 거짓말이다.

모든 도덕은 역사적 상황에 따라 변하는 상대적인 것에 불과하다.

보편적 도덕, 신의 명령이나 천부적 양심에서 비롯된 도덕은 연약한 자들이 강자를 순화하고 제어하기 위해 만든 노예도덕이다.

- 도덕은 인간을 나약하게 만든다. 122

도덕은 도와 덕이 합쳐진 말이다.

도덕이 출현하기 전 세상은 천명론을 중심으로 움직였다.

약자를 다스리는 강자의 이데올로기는 '하늘의 뜻'이었다.

나라가 세워지고 천자가 생긴 것도 역시 '하늘의 뜻'이었다.

그러나 하늘의 뜻에 따라 세워진 천자의 나라가 다른 나라에 의해 멸망했다.

약자들은 혼란스러웠다. 하늘의 뜻이 아니었나?

천자의 나라를 멸망시키고 새롭게 등장한 나라의 지존에게는 정당성이 필요했다.

하늘의 뜻을 강조할 명분이 필요했는데 최초가 아니기에 정통성이 사라졌다.

그래서 등장한 개념이 도와 덕이다.

도덕과 부합하는 하늘의 뜻만이 계속 유지될 수 있다고 공식적으로 거짓말을 한 것이다.

천자의 나라는 도덕을 따르지 않아 사라진 것이라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결국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도덕은 없다.

신념은 진리의 표상일 뿐 결코 진리 그 자체가 아니다.

니체는 모든 종류의 확신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롭게 보고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이 정신의 강함이라고 말한다.

- 신념은 감옥이다. 195.

에픽테토스는 '우리가 원하는 일의 가치와 우리의 욕구를 일치시켜 적절한 정서적 반응을 형성하고, 윤리적으로 적절한 동기를 형성하고, 우리의 다양한 신념들 간의 일관성, 그리고 우리의 신념들과 행위들 간의 일관성을 유지하라'라고 했다.

페리클레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죽음을 맞이한 장병들에게 '한 사람이 말을 잘하거나 잘못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용기와 신념을 위태롭게 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추도했다.

정약용의 큰 형 정약현은 당호를 수오재로 지었다. '수오'는 '나를 지킨다'라는 뜻으로 화를 입었던 다산의 형제 중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지켰던 큰 형의 신념이라고 할 수 있다.

외즐렘 제키지는 자신의 저서 '혐오와 대화를 시작합니다'에서 '수없이 감정의 롤러코스터에 휘둘린 뒤에야 비로소 자신의 신념에 확신을 가질 수 있는 법이다.'라고 말했다.

니체는 자신의 여동생에게 쓴 편지에서 '만약 네가 영혼의 평화와 행복을 원한다면, 믿어라. 다만, 네가 진리의 사도가 되려 한다면, 질문해라'라고 말했다.

우리는 '신념'이라는 말을 자주 듣고 또 말한다. 나의 행동은 나의 신념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신념은 진리의 표상일 뿐 진리 그 자체가 아니다.

신념을 진리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신념에 빠져 독단으로 치우칠 때 우리는 노예가 된다.


한창 철학에 매료되어 닥치는 대로 읽고 공부하던 시절이 있었다.

'소플아. 마프니'를 중얼거리며 살았다.

고대철학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이고, 현대철학은 마르크스, 프로이트, 니체로 구조화 한 나만의 암기법이었다.

두음 문자 끝에 '니체'가 있다.

니체는 현대철학의 시작이자 마지막이다. 현대철학은 니체를 빼고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 책은 온전히 '니체'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되고 끝을 맺는다.

니체의 위버멘쉬는 일본어 번역 때문에 광야에서 백마 타고 오셔야 할 분 같은 단어인 '초인'으로 마치 초월적 인간인 것처럼 잘못 인식되었다.

최근에는'위버멘쉬'라는 독일어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학계의 흐름인데,

이 책은 아직도 초인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작가는 자신의 견해를 밝혀 놓았다.

책 55쪽에 「위버멘쉬를 '초인'이 아닌 '극복인'으로 번역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필자는 초인이라는 단어가 주는 강렬한 느낌을 선호하기 때문에 '초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실제 니체는 강렬하다.

그리고 강렬한 삶을 살았다.

니체는 편두통과 류머티즘. 심각한 근시를 앓았다고 전해진다.

"사는 것 자체가 끔찍한 고통이다." 니체는 평생 건강이 좋지 않았다.

니체의 저서는 타자기를 사용하면서 문체가 바뀌는데 타자기 사용 후 간결해졌다.

강렬하고 (타자기 사용 후) 간결한 삶을 산 니체. 그의 철학은 본질을 전혀 모르던 전쟁광 히틀러에 의해 엉뚱하게 차용되어 홀로코스트, 인종청소라는 반인륜적 범죄로 이어졌지만 이성을 비판하고 권력(힘)에의 의지가 우주의 본질이고 생명이 있는 모든 것, 그 안에 권력에 의지가 깃들어 있음을 간파한 것은 그야말로 혁명이었다.

책의 부록에 수록된 '삶에 힘이 되는 니체의 명문장'이 심금을 울린다.

'삶의 지혜로 읽는 니체의 말'을 통해 니체의 정신과 삶을 대하는 태도를 오랫만에 다시 만난 것 같다.

작가는 부록에서 독자들이 차가운 현실 속에서도 힘을 잃지 않고 더욱 '강력한' 존재로 거듭나기를 바랐는데,

그 말로 용기를 얻었다.

부록에는 없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니체의 '지혜의 말'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산다는 것은 곧 시련을 감내하는 것이며, 살아남으려면 그 시련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한다.

만약 삶에 목적이 있다면 그 시련에도 반드시 목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그 누구도 그 목적이 무엇인지 말해 줄 수 없다.

각자가 스스로 찾아야 하며 그 해답에 요구하는 책임도 받아 들여야 한다.

그렇게 해서 만약 그것을 찾아낸다면 그 사람은 그 어떤 모욕적인 상황에서도 계속 성숙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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