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시체를 매장하기 전, 마지막으로 죽은 아들을 무릎 위에 안아본다.
이탈리아어로 슬픔, 비탄을 뜻하여 '피에타'라고 칭해지는 이 주제는 복음서 구절이나 외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인간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피에타는 성모 마리아와 예수 그리스도에 집중하는 작품이다.
미켈란젤로는 그의 나의 24살에 흠잡을 데 없는 기교로 작품을 완성하였다.
바로 바티칸 성당에 있는 '피에타'가 그것이다.
교만함과 어리석음으로 그는 성모 마리아의 가슴에 놓인 띠에 "피렌체 사람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만들다"를 새겼다. 그러나 동이 트는 모습을 보고 이렇게 위대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만드신 하느님께서는 그 어느 곳에도 자신의 이름을 새겨 놓지 않음을 깨닫게 되고 하느님께 바치는 작품을 망쳤다는 생각에 크게 후회하며 이후로는 작품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지 않았다.
젊고 아름다운 성모 마리아의 모습과 어머니의 무릎에서 잠든 것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평온한 표정에는 고통이 없다.
미켈란젤로는 순결한 여자가 젊음을 더 잘 유지하고, 티끌만큼도 추잡한 욕망의 때가 묻지 않은 동정녀 마리아라면 말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미켈란젤로는 단테의 신곡 '동정녀 마리아여. 당신 아들의 딸이시여'라는 구절을 읽고, 신의 어머니를 실제 나이보다 훨씬 젊게 표현하고 아들인 그리스도는 나이에 맞게 표현했다고 한다.
바티칸에서 실제 피에타를 보았을 때, 난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음에도 성모님의 슬픔과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스탕달 신드롬은 뛰어난 예술 작품을 보고 순간적으로 느끼는 어지러움과 환각, 혼미함, 구토, 탈진 등의 이상 증세를 말하는데, 나는 피에타 앞에서 갑자기 몸이 공중으로 붕 뜨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그때부터였을까.
성모 마리아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신앙과 믿음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 책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읽기 시작했다.
텅 비어 있으면 남에게 아름답고 내게 고요합니다.
가진 것과 지닌 것이 참으로 많은 우리가, 청빈하게 살아가는 수도자들을 바라보면서 항상 존경하며 부러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 40
단순하고 소박한 영성의 소유자, 가난한 이들의 벗, 평화와 선을 추구한 성자, 온갖 피조물을 사랑하고 보호한 사부 이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단순 소탈하며 겸손하고 평화를 사랑하면서 빈민들과 약자들을 위해 헌신해 온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추기경은 교황 직무를 수락하면서 바로 이 이름을 선택했습니다.
- 열린 마음과 유연성이 필요한 다문화 사회. 148
2014.8.14. 프란체스코 교황님이 우리나라에 오신 날이다.
짧은 일정 속에 충남을 방문하는 것도 포함되었는데, 교황님 덕분에 당진 솔뫼성지가 세계적인 순교지로 주목받으며 교황을 보기 위해 이곳으로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그중에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지금이나 그때나 아직 종교에 귀의하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지만,
믿음을 찾아, 말씀을 찾아 헤매던 시기였다.
낙원을 찾아서, 은혜를 받고자, 안식을 얻고자 방황하던 시기였다.
교황님의 인자한 얼굴을 보며 마음의 평화를 얻기를 희망했다.
책에서 교황님의 이름을 다시 만나니,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리스 말 '아남네시스'는 기억, 추억, 회상, 회고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아남네시스는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뒤에 더 뚜렷하게 생각나는 현상을 가리키기도 한다.
나의 아남네시스는 교황님이다.
이 책은 종교와 상관없이 사랑을 갈구하는 모든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특히 사제의 시선으로 바라본 '사랑'의 참 의미가 궁금한 사람이 읽으면 더없이 좋을 것 같다.
"시간이 흘러도 사랑은 남는다."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원하는 것을 하라."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