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수다 사용 설명서 - 무언가 되고픈 엄마들을 위한 동기부여 에세이
김진미.최미영.강지해 지음 / 북산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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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허벅지 긁는 것과 삼천포로 빠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엄마 수다 사용 설명서'라 이름 붙이고, 책 13쪽에는 친절히 읽는 법까지 소개해 놓았다.

역시 엄마들은 자상하다. 괜히 엄마가 아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알뜰살뜰 챙겨준다.

마음이 헛헛해서 누군가와 실컷 입 털고 싶은데 행색이 초라하다.

바람은 차고 집안은 따뜻하다.

그래서 책을 들었다.

양반다리를 하고 커피 잔을 양손에 쥔 채 눈을 감았다. 이제 수다를 시작할 차례이다.

첫 장을 넘긴다.


우리 남편은 하정우와 분명 닮은 데가 있다.

지난번 <베를린>과 <황해>에서 하정우를 봤을 때도 분명 이런 생각을 했단 말이지.

남편은 멋지다.

남편은 하정우다.

나는 남편을 좋아한다....

주문을 건다.

P 37. 2015년 8월 28일


피식, 웃음이 나왔던 대목이다.

나의 남편은 오징어, 어떤 날은 주꾸미인데, 하정우라니...

남편을 왕으로 생각하면 나는 여왕이 되는 것이다.

작가는 이미 여왕이다.

여왕이면서 긍정의 아이콘이다.

동기들이 메가박스 점장으로, 영화사 신입으로, 부산국제영화제 스텝으로 승승장구할 때

작가는 7년의 영화관 생활을 담담하게 마쳤고, 아이와 함께 영화를 보는 '엄마'가 되었다.

그러나 결국 영화칼럼리스트와 간호조무사가 되었다. 인생 역전이랄까.

작가의 이야기는 밝고 경쾌하다.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다.

문자 메시지, 댓글, SNS에 올리는 단상이 모두 글이다.

아무에게나 글은 열려 있다. 어떤 글을 쓸지도 각자의 자유 의지에 달렸다.

단, 글 속에서 알게 모르게 묻어나는 인품과 가치관을 만들어가는 작업이 작가의 삶이자 사명이다.

사명을 갖고 글을 써야 한다.

P 45. 노벨문학상 말고 글쓰기


내가 쓴 글을 보고 누군가 '문체가 시원시원하다.'라는 댓글을 달았다.

나는 단무지이다. 단순하고 무식하고 지랄맞다.

남편은 오이지이다. 오만하고 이상하고 지랄맞다.

아들들은 소세지이다. 소심하고 세밀하고 지랄맞다.

한 집에 단무지와 오이지, 소세지가 뒤섞여 살다 보니, 내가 쓰는 글에 삶이 보이는 것 같다.

예전에는 온갖 수식어를 들이대며 글에 주접을 떨었는데, 지금은 짧고 단순하게 쓴다.

글 안에 나의 인품과 가치관이 투영되어 있다.

단무지처럼 쓰되, 진솔한 글을 쓰는 것.

글은 사명을 갖고 써야 한다.

요즘은 매일 글을 써야 할 정도로 글쓰기에 빠져 있다.

블로그든 브런치든 아니면 일기든 꼭 기록한다.

책 읽기를 지속하니 읽고 쓰는 삶을 살고 있다.

P 86. 나는 이과생입니다.


'살아 있는 한 우리는 써야 한다'라는 제목으로 작년에 브런치에 글을 썼다.

우리는 모두 살아 있는 한 써야 한다.

글을 읽고 쓴다는 것은 거룩하고 고귀한 행동임에는 틀림없으나, 생계형 감정 노동자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회의에 빠진 적이 있다.

선택 받지 못한 글과 읽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굳이 써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아드레날린과 도파민은 계속 강도를 높여줘야 하는데 글쓰기는 세로토닌이다.

지속 가능한 행복을 주는데도 비용이 전혀 들지 않는다. 그러면서 영원하다.

주저하면서도 글쓰기를 놓지 못하는 이유이다.


쓰레기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소비하지 않는 것이다.

소비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쓰레기 문제는 촌각을 다툰다. 더 이상 쓰레기를 매립할 곳은 거의 없고, 쓰레기가 바다로 흘러들어 쓰레기 섬을 만든지 오래다.

이제는 가치 있는 물건에 소비하고, 무분별한 소비를 줄여야 한다.

P 103. 쓰레기 바라보기

작가는 환경과 1일 1비움, 줍깅, 용기내 프로젝트. 제로웨이스트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가와 나의 교착점은 '1일, 1비움'이다.

우리는 모든 것이 차고 넘치는 것이 미덕인 사회에 살고 있다. 그것이 소유물이든, 꿈이든, 관계든,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여긴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모두 맥시멀리스트이다.

꽉 채워진 공간에는 무엇인가 들어올 자리가 없다.

비워야 한다.

비운만큼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미니멀리스트 대열에 합류한지 7년 정도 된 것 같다. 거창하게 환경과 지구를 위해서 비우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번아웃 되어 울면서 출근하던 날.

삶의 무게를 가볍게 하고 싶었다.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비웠다.

짐을 줄이니 공간과 여유는 덤이고,

어느덧 환경과 지구를 생각하게 되었다.

작가가 이야기하는 모든 것은

내가 직접 경험하고 느낀 것들이다.

이 책을 읽는 다른 분들도 함께 공유했으면 좋겠다.


용돈을 모아 산 자물쇠가 달린 비밀일기장에 이름까지 지어주고 편지를 쓰듯 일기를 쓰기도 했다.

일기를 통해 불안하고 힘든 감정을 해소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지금도 글쓰기는 나에게 그러한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P 139. 기록이 책이 되다.

책 189쪽에, '4학년 3반의 나이에 내가 얻은 지혜는 그것이다.'라고 적혀 있다.

나는 4학년 2반이다. 작가와 나이대가 비슷해서 그런지 그 시절 '자물쇠가 달린 비밀일기장'이 유행이었다.

나는 일기장의 이름을 프시케라 지었다.

프시케는 그리스 로마신화에서 에로스와 사랑을 나눈 연인의 이름이다.

프시케에게 온갖 이야기를 다 토해냈다.

특히 서운함. 원망, 분노 등 불편한 감정들을 많이 적었던 것 같다. 에로스의 사랑을 받던 프시케는 내 일기장에서 욕받이가 되었다.

그때부터였을까. 글을 쓰고 나면 힘이 났다. 설명할 수 없는 개운함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얼굴 한 번 마주친 적 없지만, 같은 경험을 했다는 것으로 작가에 대한 애정이 샘솟는다.


인연은 애를 써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삶에 충실할 때 그 길 위에서 자연스레 만나게 되어있다.

혼자였다고 생각했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곁엔 지금, 넘치도록 많은 인연이 함께 한다.

내 사람 속에 그들의 자리를 내어주고, 그들의 삶 속에 한 걸음씩 발을 들이며

'같이'의 가치를 알아가고 있다.

그 가치와 함께 다가온 물음표를 품고, 답을 찾아가는 일에 마음을 쓰려 한다.

같이, 함께 하실래요?

P 195. '같이' 함께하다.


각자 다른 숨결과 온도를 가진 작가들의 합작품이어서 그런지 민트차와 아메리카노, 고구마 라떼를 번갈아 가며 마신 기분이다.

그녀들의 수다를 훔쳐보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치열하게 살아서 그런지 들려주는 말이 많고, 사연도 풍부하다. 그녀들은 이제 무언가 되고픈 엄마들에게 수다를 권하는 작가가 되었다.

이야기 보따리가 끝날 때마다 '우리의 수다'가 나오는데, 우리의 수다에 '나'는 없지만, 내 안의 수다에 '그녀들'이 있다.

취향과 관심이 같아서 그런지 쿵짝이 잘 맞는다.

나는 밀크티를 주문했다.

수다가 그리운, 수다가 필요한 엄마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고급 살롱에서 마담들에게 둘러싸여 담소를 나눈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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