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계획이 '라면 끊기'였다.

파송송 계란이 들어간 라면은 나의 최애 힐링템이다.

고백하면 나는 라면충이다.

라면과 나의 역사는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지 깡촌 학교를 다닌 나는,

제법 공부를 잘해서 중학교 때부터 도시로 나와 고달픈 타지 생활을 시작했다.

배는 고픈데 먹을 것이 없었다. 엄마도 없었다.

육체적 굶주림과 정서적 굶주림이 동시에 찾아왔다.

그때 나를 달래준 건 후루룩 짭짭. 라면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질리도록 먹었는데 여전히 나는 라면이 좋다.

비가 오면 국물이 땡기니까 라면.

회식 후 숙취해소가 필요하니까 라면.

챙겨 먹기 귀찮으니까 라면.

찬밥이 남았으니까 라면.

저녁에, 주말에. 혼자 있을 때 라면과 함께 라면. 행복했다. © his_and, 출처 Unsplash

그러나 나이가 나이인지라.

입에서는 좋은데 속이 부대낀다.

라면을 먹은 다음날은 어김없이 반지가 손가락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작년 계획이 라면끊기였다.

결과는.... 실패!!

라면 먹는 일이 습관이 되어 버린 탓이다.

습관이란, 어떤 행위를 오랫동안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익혀진 행동방식이다.

좋은 습관이든, 나쁜 습관이든 우리는 수많은 습관 속에서 살고 있다.

내가 무의적으로 하는 행동은 모두 나의 습관이다.

이런저런 핑계로 공허할 때 라면을 찾는 것.

아침에 일어나면 물을 마시는 것.

음악을 들으며 설거지를 하는 것.

9시가 되면 증권사 사이트에 접속하는 것.

매일 하는 수많은 행동들은 '습관'이라는 형태로 세트 메뉴화된 것들이다.

이러한 행동은 의식이 관여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작동 가능하기 때문에

한번 고착화된 습관을 바꾸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 책은 그래서 읽게 되었다.

올해에는 기필코 라면을 끊고 싶어서...

습관의 알고리즘에서 벗어나고 싶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백전백승한다.

이 책이 필요한 이유이다.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경고할 것이 있다. 나는 나쁜 습관에서 벗어나는 '쉬운 수법'같은 것은 알려줄 수 없다.

사실 당신이 그간 다른 여러 책에서 읽었던 습관을 위한 마법 같은 해결책들 중 다수는 진짜 과학의 눈으로 보면 신기루 같은 것들이다. 다만 이것 하나만은 약속할 수 있다.

이 책을 다 읽은 후에는 왜 그토록 습관이 끈질긴지, 습관을 고치는 일이 왜 그토록 힘든지에 대해 깊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했을 때, 당신의 행동을 성공적으로 변화시키는 방법에 대한 과학으로 입증된 아이디어를 얻어 갈 수 있을 것이다.

p42.

작가의 경고가 맘에 쏙 든다.

안과 밖이 똑같은. 솔직한 사람이 좋다.

쉬운 수법 같은 것, 과학의 눈으로 보면 신기루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하는 작가야말로 정직한 사람이다.

반사와 목표 지향적 행동 사이에는 지금 우리가 논의 중인 습관이 자리하고 있다.

습관은 어떤 시점에는 목표 지향적인 행동이지만, 충분히 반복된 후에는 자동적인 행위로 변해 반사에 훨씬 가까워진다. 다만 반사는 기본적으로 행위를 멈추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습관은 충분한 노력과 주의를 기울인다면 멈출 수 있을 때가 많다.

p102

하이에나처럼 라면을 찾는 나의 행동이 반사가 아닌, 습관이어서 다행이다.

라면 끊기는 목표 지향적인 행동이지만, 충분히 반복된 후에는 자동적인 행위로 변해 반사에 가까워질 수 있다.

오호라. 안 먹고 버티다 보면 반사적으로 비가 와도 라면 국물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충분히 반복된 후'가 마음에 걸린다.

오프라 윈프리가 한 유명한 말이 있다.

"제가 선택한 약물은 음식입니다. 중독자가 약을 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음식을 먹는 거죠.

위로를 받기 위해, 진정하기 위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요"

p199

오프라 윈프리와 내가 오버랩된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녀는 음식이고, 나는 음식 중 라면이다. 갑자기 겁이 덜컥 난다. 그녀에게 약물이 음식이라면 나에게도 라면이 약물인 걸까?

성공적인 행동 변화를 위한 원칙

* 원치 않는 행동을 촉발하는 상황을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해서 환경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

*트리거는 축소하고 바라는 행동은 더 독려되도록 선택 설계를 바꾼다.

*변화를 어떻게 실행할지, 특정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해

이프-댄 규칙을 포함해 상세한 계획을 세운다.

*목표를 향한 진행 상황을 면밀히 관찰하고, 진행이 잘되지 않는다면 계획을 변경한다.

p252

책을 다 읽은 후, 내가 작년에 라면끊기에 실패한 이유가 의지력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매일 팬트리에 있는 라면을 바라보며 먹고 싶은 유혹을 이겨내는 식으로 '스프의 유혹'에 저항하는 훈련은 의미가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도파민이 새로운 습관을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오늘 행한 것을 내일에 가서도 고칠 줄 모르고,

아침에 일어나서는 후회하면서 저녁에는 또다시 되풀이하게 마련이다.

그런즉 이것이 반드시 크게 용맹스러운 뜻을 가지고 마치 칼날로 쳐서 물건을 끊듯이 하여

그 뿌리를 잘라 없애서 마음속에 터럭만큼도 그 남은 줄거리가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자주자주 언제나 구습을 맹렬히 반성하기에 힘써서

마음에 한 점이라도 구습에 더럽혀짐이 없게 한 뒤여야만

비로소 학문에 나아가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 격몽요결. 율곡이이

얼마 전 격몽요결을 읽었다. 율곡이이는 혁구습장에서 말한다.

오늘 행한 것을 내일에 가서도 고칠 줄 모르고, 아침에 일어나서 후회하면서 저녁에 또다시 되풀이하는 것이 습관이라고.

갓을 쓴 이이도, 캡을 쓴 러셀 폴드랙도 모두 한결같이 습관의 끈질김에 대해 말하고 있다.

다만, 러셀 폴드랙은 뇌의 숨겨진 시스템의 실체를 여러 사례와 연구 결과를 근거로 신경과학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과학이라는 단서가 붙으니, 신뢰가 간다.

이 책으로 습관의 생물학적 기제에 대한 심도 있는 지식을 갖췄으니, 이제는 행동할 차례이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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