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진리를 훔치다 - 철학자들의 예술가
김동국 지음 / 파라북스 / 2022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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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머리에 쥐가 난다'는 표현이 적당할 듯 싶다.

철학과 역사를 좋아해 그동안 잡다하게 읽었던 책이 많았다.

어느정도 내공이 쌓였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나를 과대평가 한 것이었다.

내용이 무척 어렵다.


첫 장, '궁핍한 시대의 시인'부터 난관이다.

빵과 포도주가 넘어가질 않는다.

목록에 등장하는 철학자들의 활동시기가 20세기 근현대여서 더욱 어렵다.

나는 현대를 잘 모른다. 그렇다고 삼성을 아는 것도 아니다.

나에게 현대란, 현재 진행형이다.


배경 지식이나 사전 지식이 없었다면,

아니, 서평단 신청을 하지 않았더라면

분명, 중도에 나가 떨어졌을 것 같다.

예술(미학)도 감당하기 벅찬데 거기에 진리(철학)까지 더해져 난공불락 요새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마사다 요새도 함락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우리가 익히 알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니체가 등장하긴 하지만, 

이 책에서는 주류가 아니다.

주인공들 중에서 그나마 하이데거, 세잔, 베게트, 푸코, 르네 마그리트, 플로베르, 보드리야르, 앤디워홀 등 아는 이름들이 보여서 다행이다.

그들과 교감한다는 마음으로 슬로우리딩을 하기로 했다. 속도가 붙는 책이 아니다.

심호흡 한 번, 다시 펼친다.


근현대는 세계 대전처럼 '전쟁'이라는 묵직한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지각한 후, 일독하길 권한다.

조금 쉽게 다가온다.




작년부터 마인드맵을 활용한 독서모임 활동을 하고 있다. 생각을 나누며 다른 해석을 받아들이는 작업을 통해 폭넓은 지식이 쓸모있는 배움으로 확장되는 것이 독서모임의 가장 큰 장점 같다.

독서모임을 통해 카뮈의 '이방인'을 읽었고,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었다.

이방인을 통해 카뮈는 이러한 세계, 추억도 없고 희망도 없으며 구원도 없는 세계, 삶과 인간이 단절되어 있고

배우와 무대가 단절된 세계에서 느끼는 감정이 부조리의 감정이라고 말했습니다. 베케트이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장광설과 헛웃음밖에 나지 않는 유머는 이렇듯 구원이 사라진 세계의 부재와 상실 속에서 유일하게 가능한 말인지도 모릅니다.

p 123~124

우리는 영화 매트릭스를 통해 익숙해진 질문으로 가상과 실재의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는 고전이 된 이 영화는 '현실/가상'이라는 세계의 존재론적 지위에 대한 질문을 제기합니다.

모피어스가 앤더슨을 만나 제시하는 선택지, 빨간약을 먹을 것인가, 파란 약을 먹을 것인가 사이의 선택지는 진실을 알 것인가, 모르는 척 넘어갈 것인가를 묻는 인신론적 질문인 동시에, 내가 존재한다면 나는 어디에서 존재하는가를 묻는 존재론적 질문이기도 합니다.

내가 존재하는, 존재해야만 하는 공간은 과연 어디일까요?

우리는 매트릭스에서 제기되는 실재와 가상의 문제와 보드리야르의 말하는 '시뮬라크르' 사이의 어떤 차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즉 매트릭스에서 가상과 실재는 서로 다른 존재론적 지위를 가집니다. 가상의 세계, 즉 매트릭스 안의 세계는 진짜 세계가 아닙니다.

그것은 로봇들이 인간을 착취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거짓 세계이며, 이 세계 속에서 '앤더슨'이라는 정체성은 다만 매트릭스 안에서 존재하는 것일 뿐 실재라는 존재론적 지위를 가지지 못합니다. 그러나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는 가상과 실재의 세계가 더 이상 구분되지 않는다는데 핵심이 있습니다.

매트릭스의 작가가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 개념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영화 속에 그의 책이 등장하기도 하고, 주연배우인 키아누 리브스는 이 책을 영화 촬영 내내 들고 다니며 읽었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매트릭스'와 '시뮬라크르'는 엄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보드리야르가 시뮬라크르의 개념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가상의 세계와 실재의 세계를 명확히 구분하고, 가상의 세계로부터 실재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계 전체가 가상의 세계이며, 이 가상의 세계 뒤편에 있는 실재의 세계란 없다는 것. 그러므로 우리가 실재와 가상을 구분할 때 정말로 구분되는 것은 실재와 가상이 아니라, 가상과 그 가상에 대한 가상이라는 사실입니다.

p 301~311



회원 중 한분은 모스크바에서 연기를 공부한 유학파 엘리트인데,

이 분으로부터 '사이'는 단지 '사이'가 아니라, '공백, 다음을 위한 준비. 사색의 다른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 125쪽에 「재미없군. (사이). 」가 반가운 이유는 아는 만큼 보였기 때문이다.

이 책 표지는 르네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인데, 

이 또한 얼마전 독서모임에서 먼저 만났다.

회원 중 한분이 마인드맵 중심이미지로 파이프를 표현했고, 

그때 처음으로 푸코와 르네 마그리트를 접했다.

독서모임으로 책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은 것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매트릭스를 보았다는 것이다.

평소 공상과학 영화를 즐겨 보지 않는터라,

내가 아는 매트릭스는 키아누 리브스가 'ㄱ'으로 빙의되어 총알을 피하는 장면이 전부였다.


회원 중 한 분이 일곱 빛깔 무지개와 회색 무지개로 마인드맵 중심 이미지를 표현했는데

모임을 마친 후, 집에 오자마자 매트릭스부터 '챙겨' 보았다.

빨간약, 파란약을 영상으로 먼저 본 터라, 

' 기호의 무한증식이 만들어내는 시뮬라크르의 세계'를 편하게 받아 들일 수 있었다.




나래 독서 마인드맵이라는 지원군이 있어 책을 정복하는데 좀 더 수월했다.

지식은 돌고 돌아, 결국 다시 내게로 온다.

지식의 향연, 안다는 것은 지극한 즐거움이다.


예술을 사유함으로써 근대적 사유는 탈근대적 사유로 변했다.

현대는 집단에서 개별로, 보편에서 특수로, 본체에서 현상으로 이동하고 있다.

책과 하나가 될수록 검은 것이 단지 글자가 아닌 이야기로 이해된다.


책을 읽고 가장 좋았던 점은, '내일, 그곳'을 쫓던 마음이 '지금, 여기'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예술과 진리를 분리하지 말고, 하나의 덩어리, 한 몸으로 본다면 

작가의 말이 다정하게 들릴 것이다.

철학자들에게 예술가가 뮤즈가 된 것처럼.



*이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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