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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리 75년
데니스 애들러 지음, 엄성수 옮김 / 잇담북스 / 2025년 4월
평점 :
[출판사의 도서 지원을 받아 직접 읽고 작성했습니다.]
Ferrari: 75 Years, 책은 평범한 도감이나 역사서가 아니다. 자동차라는 조형물을 통해 인간의 열망과 꿈, 기술과 예술이 어떻게 하나의 상징으로 승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시이다. 찬란한 기계 예술의 기록이자, 열정과 이상이 만들어낸 시간의 궤적을 따라가는 여정이다.
작가이자 사진작가, 그리고 역사가인 데니스 애들러는 미국에서 가장 많이 출판한 저자이자 역사가 중 한 명이다. 수집용 자동차와 역사적인 총기에 관한 수십 권의 책을 집필했으며, 전직 잡지 편집자로서 35년이 넘는 경력을 지녔다. 그런 그가 풀어내는 페라리의 이야기는 단순한 자동차 연대기를 훌쩍 넘어, 시대를 관통하는 디자인과 철학, 감성의 결집으로 다가온다.
이탈리아 마라넬로의 페라리 박물관은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장소였다. 직접 그 공간을 밟지는 못했지만, 책을 읽는 동안 마치 그곳을 천천히 거닐며 차량 하나하나를 둘러본 듯한 깊은 감각이 남는다. 페이지마다 담긴 사진은 단순한 도판이 아니라, 마치 한 대의 조각처럼 정제되고 감동적인 순간을 전한다.
건축설계 디자인을 하는 입장에서, 한 대의 자동차가 어떤 과정을 거쳐 완성되고, 그것이 브랜드로서 어떻게 지속되며 진화하는지를 지켜보는 것은 연신 감탄과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경험이었다. 각각의 모델이 시대의 유행을 선도하고, 대중을 열광시키며, 페라리라는 이름을 시대 너머로 밀어올린 브랜딩의 힘에서도 놀라움을 느꼈다. 기술과 감성이, 전통과 혁신이 어떻게 균형을 이루며 미래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몸으로 느끼게 한다.
125S에서부터 250 GTO, F40, 엔초, 라페라리까지.. 각각의 모델에는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선 시대의 정신과 기술, 인간의 집념이 오롯이 담겨 있다. 특히 붉은색, 로쏘 코르사는 잊히지 않는다. 수많은 페이지에서 반복되어 등장하는 이 강렬한 색은 보는 이의 감정을 뒤흔든다.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끓어오르고, 억눌렸던 열정이 다시 살아나는 듯하다.
책장을 덮은 후에도 쉽게 가라앉지 않는 잔상이 남는다. 창조의 길을 걷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 책에서 깊은 자극과 울림을 받을 것이다. 디자인이라는 길 위에서 길을 잃거나, 열정을 잊어버릴 때 다시 펼쳐보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