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탄생] 서평단 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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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탄생 - 현상과 실재, 인식과 진리, 인간과 자연에 던지는 첫 질문과 첫 깨달음의 현장
콘스탄틴 J. 밤바카스 지음, 이재영 옮김 / 알마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지구가 둥글고, 매일매일 한바퀴씩 돌고 있다는 사실, 또 매년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는 사실을 배웠을 때 신기하긴 했지만, 그것이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책에서 그렇다고 하니 그러려니 했지, 그것에 대한 의심을 품을 줄 몰랐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지도와 지구의를 함께 보았을 때, 나는 평면 세계지도가 무엇이 문제인지 알지 못했다. 그렇지만 나는 지구에 대해 배운 모든 것들이 사실이라고 믿고 있고, 너무나도 당연하게 그런 세계관 속에서 살고 있다.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는 낯선 철자와 이름들이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인용되면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상가들이다. 이들을 현대 학문 분류에 따른 '철학'에만 한정지을 수 없지만 흔히 배우는 철학의 시작은 이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알고 있었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였던 것처럼, 소크라테스가 '문답법'을 했다느니, 플라톤이 '이데아'를 주장했느니,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말했다느니 하는 것들 또한 그대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인간의 본성이니, 자연의 법칙이니 논할 수 있는 것은 내가 태어나기 한참 전부터 사람들이 그러한 생각들을 전달해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소크라테스가 인간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이 그것의 바탕이 되는 철학적 사유를 발달시켰기 때문이다. 내가 태어나기 이전의 철학자들의 생각을 큰 고민없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의심없이 받아들였던 것처럼 소크라테스도 어쩌면 그러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을 소개한 책이다.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 피타고라스, 크세노파네스, 헤라클레이토스, 파르메니데스, 엠페도클레스, 아낙사고라스. 소크라테스보다 더 낯선 이 이름들이 현대에서 말하는 철학에 가까운 사유를 보여준 사상가들이다. 내가 그런 것처럼, 또 소크라테스가 그러했던 것처럼, 어쩌면 이들도 기록되어있지 않은 누군가들의 사유를 전수받아 이러한 사유를 하게 되었을지 모른다. 책의 첫 부분에도 그런 말이 나온다. 그리스의 정신은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이 사상가들 중에 그나마 익숙한 이름이 탈레스와 피타고라스이다. 탈레스는 만물이 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는 철학의 시초로 알고 있었고 피타고라스의 경우 수학에서 그의 이름을 들어봤다.
예전에 탈레스에 대해서 들어봤을 때는 어떻게 만물이 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라는 단순한 물음 뿐이었다. 그저 그의 무지함을 비웃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 과학에서 알려진 대로라면 만물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시대와 사상을 이해하지 못한 편협한 생각에 불과했다. 과학이라는 개념조차 없었을 그 당시에, 그리고 세계라는 현재와 같은 개념이 있었을지 모를 그 당시에 만물의 통일적인 원리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었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이 책에서는 바로 이러한 생각, '만물의 근원이 물이다'라는 탈레스의 말에 대해서 만물의 근원이 정말로 물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에 만물의 통일적인 원리를 찾으려고 했던 사유에 초점을 맞춘다. 신화 속에서 살았을 그 당시 사람들 중에 탈레스는, 신화를 벗어나 조금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설명하려고 했다는 점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피타고라스는 수학책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수학자 이름으로, 직각삼각형의 직각을 포함하는 두 변 위의 정사각형의 넓이의 합은 빗변 위의 정사각형의 넓이와 같다는 명제 '피타고라스의 정리'로 잘 알려져 있다. 나는 그 때 왜 이 사람은 일상 생활에 도움이 하나도 될 것 같지 않은 이런 명제를 말했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피타고라스는 흔히 생각하듯 한 인d물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단체이다. 피타고라스는 일종의 종교 집단의 교주와 같은 사람이었고, 그가 강조한 생활 방식은 영혼의 구원을 위해 정신적 카타르시스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에서 검소를 강조하고 철학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특히 철학, 그의 철학은 주로 수학적으로 나타났는데 이 수학은 신적이고 질서 있는 것이라고 여겨졌으며 이 것과의 결합을 통해 정화를 이루려고 했던 것이다. 이러한 배경을 이해하면 피타고라스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이론과 실천을 결합시킨 사상가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러니까 직접 탐구하고 고민해보기도 전에, 이미 그것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상가들은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책을 통해 아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관찰하면서 알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라면 평면 세계지도를 보면서 의아해할 것이다. 이 책은 거의 아무 것도 사상적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사상가들의 생각을 소개하고, 과정을 설명한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평면 세계지도의 의심스러운 점을 찾아낼 수 있는 눈을 기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잊자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왜, 어떻게 그러한 결론을 내리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요새는 사색대신에 검색만이 있다고 한다. 굉장히 많은 정보가 있지만, 그 정보들을 알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나의 지식이라고 볼 수는 없다. 사상가들의 생각을 읽는 것은, 나의 지식을 만들어가는 한 과정인 것 같다. 나도 점차 검색 대신에 사색이 익숙해지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