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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 Flow - 미치도록 행복한 나를 만난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지음, 최인수 옮김 / 한울림 / 2004년 7월
평점 :
몰입. 어딘가에 몰입하고 있다는 말은 왠지 아름답게 느껴진다. 평소 스스로 덕후라고 지칭하는데 전혀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기 때문일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책에는 몰입을 하지는 못했다. 책을 읽다가 갑자기 다른 생각이 나서 한눈팔고, 다시 책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몇번이고 거쳤다. 모임 때문에 읽은, 내가 정말 좋아서 읽는 책이 아니어서 그랬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으며 내 생활 속에서 몰입의 순간을 떠올리는 것은 즐거웠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학문적인 견지에서의 '몰입'과 정확히 일치하진 않더라도 어딘가에 몰두해 시간가는 줄 모르거나, 행복함을 느꼈던 때 말이다.
어느 날 만화책을 사서 집에 오는 길이었다. 바로 래핑을 뜯어 버스에서부터 길을 걸으면서도 만화책을 읽었다. 좋은 습관으로 볼 수는 없지만 만화책을 사는 날은 늘 그랬다. 그날은 특히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렸다. 왠지 모르게 발걸음도 가벼웠다. 그렇게 걷다가 문득, '아 내가 정말 만화책을 좋아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 순간의 행복감이 온몸을 휘감는 것을 느꼈다. 마치 신앙고백을 한 종교인처럼, 그 이후에 나는 만화책을 좋아함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자랑스러워하게 되었다.
삼년 전쯤 배운 퀼트도 내게 몰입의 기쁨을 알려줬다. 손바느질이라고는 중학교 때 가정시간에 해봤던 기억밖에는 없었다. 그런데 무슨 생각으로 시작했는지 지금으로서는 잘 생각나지 않는 퀼트는 꽤 즐거웠다. 반복 작업. 결과물을 위해 손이 아프도록 바늘에 실을 꿰어 계속해서 위 아래, 위 위 아래로 꿰는 작업이었다. 홀로 집에서 하게 될 때에는 귀가 심심하지 않도록 팟캐스트를 틀어놓고 깔깔깔 웃으며 바느질을 하곤 했다. 그런데 분명 10시쯤 바느질을 시작해서 얼마 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문득 눈을 들어보면 새벽 2시였다.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순식간에 시간이 사라진 매직에 깜짝 놀랐다. 지금은 퀼트에 손을 놓은지 오래되었지만, 그 때 바느질을 하며 느낀 몰입의 경험은 언젠가는 꼭 다시 퀼트를 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한다.
책을 읽으며 흥미로웠던 부분 중에 하나는 여가시간이 아니라, 일하는 중에 몰입의 순간이 더 많다는 사실이었다. 지금 하는 일은 일요일 밤을 아쉬워하고, 금요일을 기다리게한다. 하지만 오래전 도서관에서 삼년간 아르바이트했을 때 나는 몰입했고, 즐거웠다. 나는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해주고 반납받는 일을 했다. 누군가가 책을 들고 오면 바코드 리더기로 신분증을 스캔하고, 책을 스캔한다. 이 단순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 오래 지속되면서 리듬을 갖게 되었다. 어떤 때는 정확한 리듬으로 이루어진 바코드 리더기의 삑삑삑 소리를 들으며 희열을 느끼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내가 변태인 것인가 살짝 고민하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몰입이었다. 자타공인 베테랑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일에 대해서라면 누구보다 훌륭하게 해냈고 사랑했다.
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팬질을 해본 사람과 해보지 않은 사람은 많은 차이가 있다고. 누군가를 팬으로서 좋아하거나, 어떤 작품을 깊이 사랑해본적이 있는 사람은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로 삶을 채우려하기에 다른 사람의 기준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남들이 인정할만한 배우자를 만나야 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행복한 삶' 아니, '권장할만한 삶'의 조건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실상 돈을 많이 벌기 위해 희생하는 시간과 인간관계, 스스로 정말 좋아하는 것이 아닌 것을 공부하고 경쟁하며 얻는 스트레스, 남들은 인정하지만 나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함께 살며 얻는 허무함과 외로움 등등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불행의 예이다.
그런데 팬질을 해본 사람들은 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좋아하는 것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좋아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을뿐아니라, 그것을 위해 싸울 수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기대에 따라 살아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마지막에 말하고자 했던 것도 이런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