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과 열광] 서평단 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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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과 열광 - 어느 인문학자의 스포츠 예찬
한스 U. 굼브레히트 지음, 한창호 옮김 / 돌베개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매혹과 열광은 스포츠에 꾸준한 관심은 없었지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즐겨왔고 이번 베이징 올림픽 때 매우 열광했던 사람으로서 매우 흥미로운 책이었다. 게다가 스포츠의 학문적 분류를 생각한다면 과학에 가까우며, 딱딱한 책을 떠올릴 법 한데 '인문학자의 스포츠 예찬'을 부제로 내세운 것도 관심이 가는 부분이었다. 서평단 신청을 통해 받게된 이 책에 대한 첫 느낌은 생각보다 작고, 생각보다 읽기 쉽다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책 판형보다 작은 편이었는데, 살짝 펼쳐 본 본문의 줄간격은 중간에 글자를 쓸 수 있을 정도로 매우 넓었다. 이런 책의 장점은 가독성이 높고, 소지하기 쉽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버스에서 시간이 날 때마다 책을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은 처음 생각만큼 만만한 책은 아니었다. 개념이 어려운 것은 아니었으나 목차를 보면 알 수 있듯, 각 장과 소제목의 관련성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고 (단절-반인반인, 검투사, 기사, 불량배, 스포츠맨, 올림피언, 소비자...)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는 교과서 지문과 달리 이 문단에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도 파악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것이 기존의 스포츠를 다루는 책들과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고 학문적인 관심이 아니라 그저 이 책 역시 즐기는 놀이로서 보았을 때는 꽤 재미있다는 것이다.
유럽 축구를 좋아하는 동생의 옆에 가서 가만히 보고 있다보면 이 선수는 어떤 경력을 가지고 있고 어떤 경기에서 이러이러한 활약을 펼쳤으며, 축구사에서 이 선수는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라고 종종 말해준다. 그것을 나는 매우 재미있게 듣곤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야말로 스포츠 광팬이 자신이 아는 스포츠에 대한 지식 및 경험을 이리저리 잘 섞어서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너무도 다양한 스포츠 세계의 예가 언급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가 열광하는 만큼 같이 열광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나의 스포츠 경험을 많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TV로 농구를 볼 때와 직접 농구장에서 보았을 때의 차이점과 공통점. 월드컵 때의 전국적인 열광과 이번 베이징 올림픽 때의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으리만큼 열중했던 관람 태도. 혹은 직접적인 스포츠는 아니더라도 슬램덩크나 H2를 보면서 스포츠의 재미를 느꼈던 경험들. 많은 것들이 떠올랐고, 생각보다 내 생활 속에 스포츠가 깊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책을 쓴 저자도 그렇게 말했지만, 스포츠는 매우 저급한 놀이에 불과하다고 여겨진다. 확실히 축구를 즐긴다는 것보다는 오페라를 즐긴다는 것이 고급한 취향으로 생각된다. 기존의 예술은 선택된 소수(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것이 고급스럽게 여겨졌고, 대중 즉 개나소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저급하게 여겨졌다.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스포츠는 오페라에 비해 대중적이며 대중적=저급의 관점에서는 저급한 놀이일 수 있다. 그렇지만 오페라를 보는데 드는 돈과 축구장에 가는데 드는 돈이 그리 다르지 않은 경우도 있다. 빅매치의 경우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어 웬만한 사람들은 경기장에 가볼 엄두를 낼 수가 없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스포츠는 그런 돈을 들이지 않아도, 집에서 TV로 경기장만큼은 아니지만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오페라를 TV로 중계를 한다고 해도 사람들이 이만큼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까? 어떤 점에서는 스포츠가 가지는 서사적인 측면이 어떤 예술적 텍스트보다도 더 강하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들면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 야구 대표팀이 보여준 연승 릴레이는 어떤 드라마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흥미로웠다. 연승에 굳이 강조를 하지 않더라도, 각 경기마다 드라마틱한 요소들이 강했다. 특히 미국전에서 9회말에 대타를 기용해 점수를 얻어 승리를 거둔 것과 마지막 금메달을 두고 우승후보 쿠바와의 경기에서 포수의 퇴장에도 불구하고 투아웃을 잡아 승리를 거머쥔 것 등 9회말 사건들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또 여자 핸드볼에서 준결승의 심판의 이해하기 어려운 판정으로 금메달을 노려볼 수는 없었지만, 동메달 결정전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고 우생순이라는 영화와 비견될 정도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그뿐 아니라 감독의 선수들에 대한 애정과 배려가 깊어 해설자 뿐 아니라 국민들의 눈물을 뽑아내었다.
나는 내가 읽고 본 것들, 예를들면 영화나 책 같은 것들을 간단히 기록하고 어떤 때에는 코멘트를 남기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올림픽을 보면서 올림픽 경기와 결과를 하나하나 기록했다. 이 기록은 어떤 점에서는 너무나 올림픽에 열중했다는 것이 나타나 부끄러웠다. 나 역시도 스포츠에 열광하는 것이 완전히 떳떳하지는 않은 탓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서스포츠 역시도 당당히 기록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글을 쓰면서도 쓰고 싶은 말들이 끝없이 생성되는 것을 보면서 스포츠가 한 권의 책으로 예찬될 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