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캘리그라피의 캘자도 모르는 내가 얼마전 구매했던 캘리그라피 수성 붓펜으로
김영랑 시인의 작품으로 공부해보기로 했다.
우선 시를 접하기 전,
이 시가 어떻게 표현이 되었는지 이 책을 엮은 지성 캘리테라피의 설명을 잠시 보자.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된 김영랑이라는 시인이
어떤 분인지 너무 궁금해서 네이버로 검색을 했다.
본명은 윤식(允植)이다. 전라남도 강진(康津)에서 출생하였다. 부유한 지주의 가정에서 한학을 배우면서 자랐고, 1915년 강진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결혼하였으나 1년 반 만에 사별하였다. 1917년 휘문의숙(徽文義塾)에 입학하였으며, 이 때부터 문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고향인 강진에서 의거하려다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6개월 간 대구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이듬해에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靑山]학원에 입학하여 중학부와 영문과를 거치는 동안 크리스티나 로세티, 존 키츠 등의 시를 탐독하여 서정의 세계를 넓혔다. 그러다 1923년 관동대지진이 일어나면서 귀국하여 고향에 머물며 은거하였다. 1930년 박용철(朴龍喆)·정지용(鄭芝溶) 등과 함께 《시문학(詩文學)》 동인으로 참가하여 동지에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언덕에 바로 누워〉 〈쓸쓸한 뫼 앞에〉 〈제야(除夜)〉 등의 서정시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시작(詩作) 활동을 전개하였다.<br /><br />이어 《내 마음 아실 이》 《가늘한 내음》 《모란이 피기까지는》 등의 서정시를 계속 발표하였고, 1935년에는 첫째 시집인 《영랑시집(永郞詩集)》을 간행하였다. 잘 다듬어진 언어로 섬세하고 영롱한 서정을 노래한 그의 시는 정지용의 감각적인 기교, 김기림(金起林)의 주지주의적 경향과는 달리 순수서정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 일제강점기 말에는 창씨개명(創氏改名)과 신사참배(神社參拜)를 거부하는 저항 자세를 보여주었고, 8·15광복 후에는 민족운동에 참가하는 등 자신의 시의 세계와는 달리 행동파적 일면을 지니고 있기도 하였다. 6·25전쟁 때 서울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은신하다가 파편에 맞아 사망하였다.[네이버 지식백과] 김영랑 [金永郞] (두산백과)
내가 시적으로 더 관심이 있었더라면 김영란 시인을 알았을텐데
나의 부족한 지식을 이렇게 보이게되어 부끄럽다. 헤헷//
순수서정시라는 영역을 개척한 김영란 시인은
일제에 저항하는 모습까지 보여줘서
시인들이 앞서서 독립을 진행하지 않더라도,
뒤에서라도 독립을 위해 노력했던 모습을 보여준다.

어덕에 누워라는 이 시는 그리운 임을 생각하는 내용이라
꼭 우리 엄마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빠가 돌아가신지도 벌써 21년이 지나가고 있는데
아직도 아빠를 그리워하는 모습이 이 시와 겹치는 것 같다.
그래서 캘리그라피의 캘자도 모르는 내가 혼자 연습해서 시를 필사해보았다.

손, 발이 오징어가 될 정도로 못해서 부끄럽지만..
그래도 연습하면 실력이 늘꺼라고 생각한다.ㅋㅋㅋ

이 시 또한 우리 엄마가 생각나는 이유는 뭘까?
한 평생을 아빠만 생각하시고 계시는 엄마의 모습이 이 시에서도 겹치는데
김영랑 시인의 책은 우리 엄마와 딱 맞는 시인 것 같다.
엄마를 생각하면서 필사를 해보았는데.... 망했다.ㅋㅋㅋ

자세히 보니 앞에서 작성했었던 것 보다는 괜찮은 것 같은데..ㅋㅋㅋ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건가...?

너무 멋있게 캘리그라피가 되어 있으면서 시와 어울리는 배경!
꼭 열심히 따라해서 멋진 필사로 작품을 만들어봐야겠다!
다음 도서로도 열심히 노력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