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 이야기 거꾸로 읽는 책 25
유시민 지음 / 푸른나무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어떤 문서나 기록도 과거의 사실을 있었던 그대로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것은 그것을 만든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사실만을 전해 주며, 흔히 그가 희망하거나 상상했던 것을 사실인 양 그럴듯하게 보여 준다. 따라서 어떤 역사가가 자기의 가치관을 철저히 배제한 채 오직 사료에 의해 입증할 수 있는 사실만으로 역사를 쓴다면 그는 결국 "과거의 지배층이 후세 역사가가 그렇게 써주기를 바랐던" 그런 역사를 쓰게 될 것이다.   (이 책, 26-27쪽, <1. 믿어서는 안 될 역사>에서)
 
 
누군가 예전엔 어떤 생각이었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 있죠. 그 책을 읽고 난 후 독자에게 저자는 여전히 한결같은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고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으로 비쳐질 수도 있습니다. 유시민이 1994년 세상에 내놓은 책을 꺼냈습니다. 최근 들어, 그가 쓴 책이나 그에 관해 쓴 책을 좀 읽었더니 예전의 유시민이 궁금해졌습니다. 출간되고 2~3년 정도 후에 구입한 책인데 책꽂이에 고이 꽂혀서 제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유시민, 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 이야기, 한샘출판사, 1994.   * 총 246쪽.
 
 
출판 후 그간 대략 십수년 동안 이 책은 출판사와 판형을 바꾸었군요. 저는 처음 출판된 한샘출판사 초판 버전으로 읽었는데(3쇄본), 그 사이에 표지는 두번 바뀐 게 확인되는군요. 출판사는 아마도 한번 바뀐 듯합니다. 책의 내용에는 변화가 없는 것으로 판단되어 제가 가지고 있던 한샘출판사 초판 버전으로 읽었습니다.
 
 
 
     ▩ 유시민, 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 이야기 - 역사,역사가,역사학을 비판적으로 사고하자! ▩


( 유시민이 1994년에 세상에 내놓은 '역사에 관한 생각'을 담은 책. 그러니까 유시민이 35세 무렵에 쓴 책.
  그의 최근 저서들을 읽은 독자라면 젊은 시절의 유시민이 주는 산뜻함(?)을 맛볼 수 있는 책.  )
 
 
 
1. 유시민이 쓴 역사에 관한 책?
 
유시민이 1994년에 세상에 내놓은 '역사에 관한 생각'을 담은 책입니다. 그러니까, 1959년생으로 확인되는 유시민이 35세 무렵에 쓴 책입니다. 2011년 현재 그는 이미 오십을 넘은 나이가 되어 있습니다. 그의 최근 저서들을 읽은 독자라면 젊은 시절의 유시민이 주는 산뜻함(?)을 맛볼 수 있는 책입니다.
 
이 책은 역사학 개론으로 말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대한민국의 통사는 더더욱 아니며, 한국 현대사라고 부르기도 좀 그런, 분류하기가 쉽지 않은 책입니다. 역사적 사실들을 동원하여 역사에 관한 생각, 역사가와 역사학에 대한 견해를 담고 있으니까요. 제목 그대로 (유시민 자신이) '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 이야기'를 쓰고 독자에게 '내 머리로 역사를 바라보고 생각하자'고 말하고 있는 책이라면 딱 맞을 듯 합니다. 역사, 역사학, 역사가에 관한 유시민의 생각에 개인적으로 공감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2. 역사와 역사가에 관한 바른 생각.
 
역사가는 과거의 모든 사실을 상대할 수 없으며 사실에 관한 기록을 다 모은다고 해서 역사가 되는 것도 아니다. 역사가는 과거의 무수한 사실 가운데서 의미 있는 것만을 선택하여 역사를 서술한다. 역사가가 만들어 내는 것은 역사적 사실 그 자체나 사실의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 사실들 사시의 연속된 인과 관계이다. 역사가는 자기가 관찰한 수많은 사실의 산더미에서 쓸데없는 것은 버리고 의미 있는 것만을 골라 합리적인 인과 관계로 이어 준다. 그리고 그렇게 이어진 인과 관계의 사슬이 바로 역사이다.   (180쪽, <6. 역사에서의 우연과 필연>에서)
 
 
역사는 역사가에 의해 재구성되는 거겠죠. 거기에는 일차적으로 역사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개입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의 산더미'에서 역사가는 취사선택을 합니다. 역사를 내 머리로 생각해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동시에 역사를 비판적으로 살펴야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3. 역사 교과서에 관한 생각.
 
여러 가지 역사책 가운데서 제일 못난 것이 교과서로 쓰는 역사책이다. 국가 권력이 역사 교과서를 미리 심사하고 검열하기 때문이다. 권력자들은 자기네 힘을 이용하여 마음에 들지 않는 역사책을 읽지 못하게 하거나 수거해서 없애 버리고 마음에 드는 역사책은 널리 보급하고 소중히 보관하여 후세에까지 전한다.   (33쪽, <1. 믿어서는 안 될 역사>에서)
 
 
그것이 정사로 기록되는 사서든, 학교에서 학습되기 위해 쓰여지는 역사책이든, 국가 권력이 '심사하고 검열'하고 공적 선택을 하는 순간, 그 사서나 역사책은 유시민의 말대로 '제일 못난 역사책'이 됩니다. 우리의 역사 교과서에 블랙홀처럼 사라지고 구멍 뚫린 곳이 존재하는 것도 국가 권력을 장악한 정치세력의 입김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지지리 못난 역사책!
 
 
  
4. 마르크스 역사철학의 이해.
 
[마르크스 역사철학에 따르면] 소수의 사람이 사회의 생산 수단을 독점하는 계급 사회에는 필연적으로 계급 사이의 적대적 대립이 생긴다. 기존의 사회 체제 아래서 혜택을 누리는 계급은 낡은 생산 관계와 사회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려고 한다. 반대의 처지에 있는 계급은 그것을 변화시키려고 한다. 적대적인 이해 관계를 가진 계급들은 서로 투쟁하면서도 통일되어 있다. ... 이해 관계를 달리하는 여러 계급 사이의 투쟁, 이것이 바로 사회 내부에 존재하는 대립되는 요소 사이의 투쟁이며 역사의 발전을 이끌어 온 원동력인 것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라는 마르크스의 명제는 이것을 가리킨다.   (103-104쪽, <4. 계급 투쟁의 역사>에서)
 
 
인류 역사에 대한 거시적 관점, 역사 발전에 대한 명료한 해석이 빛나는 마르크스(주의) 역사철학에 대해서도 이 책에선 적지 않은 분량을 할애하여 적고 있는데요. 그것이 보수적 정치세력과 역사학파로부터 어떤 비판을 받았든,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으로 그것의 입지가 얼마나 좁아졌든, 마르크스 역사철학이 지닌 역사에 대한 설명력을 상실하는 것은 아닙니다. 역사 뿐만 아니라 역사를 보는 관점도 발전해온 것이겠죠.
 
 
 
5. 옛 고전의 인용에서 유시민의 목소리가 들려.
 
" ... 제일 현명한 위정자는 백성의 마음에 따라 다스리고, 차선의 위정자는 이익을 미끼로 [백성을] 이끌며, 그 다음의 위정자는 도덕으로 백성을 설교하고, 또 그 다음의 위정자는 형벌로 백성을 길들이며, 최하의 위정자는 백성과 다툰다."   (51쪽, <2. 신화에서 역사로>에서, 『열전』 「화식열전」인용)
 
 
책에 옛 고전의 인용이 심심찮게 나옵니다. 모든 인용은 저자의 말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죠. 유시민은 고전의 경구를 빌어 역사에 관해 그리고 역사적 사실에 관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고전 인용이 갖는 매력은 날카롭다, 정확하다, 들어맞는다는 말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치 유시민이 말하고 있는 것 같은 인용들입니다.
 
 
 
6. 우리의 슬픈 역사와 역사학계.
 
우리 현대사의 슬픈 출발점, 미군정인 것이죠. 반공주의에 매몰된 것이나 민족반역자들이 득세하게 된 것이나 민족주의 세력을 제도적으로 배척-소외시킨 것이나 미군정이 그 출발점이니까요. 그야말로 '슬픈 역사'의 시작입니다. 유시민은 당연히 이에 관해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향한 몸부림으로 점철된 우리 현대사에 비극의 씨앗을 뿌린 것은 해방 후 3년간 남한을 지배한 미군정이다. 그들은 자기 나라의 이익과 반공주의에만 집착하여 우리 민족의 자주성을 억압하고 민족 반역자와 모리배들이 신생 대한민국을 지배하게 함으로써 적어도 한국의 현대사에 관한 한 역사의 심판을 입에 올릴 수 없게 만들었다.   (223쪽, <8. 그래도 믿어야 할 역사>에서)
 
 
 
그리고 또 슬픈 것으로 '우리의 역사학계'를 빼놓을 수 없죠. 일본 제국주의 치하에서 '중립적이고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역사학을 한다며 현실적으로 일제의 이익에 복무한 '진단학회' 류의 실증사학이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역사학계를 장악했으니까요. 민족주의 사학자들이 주류가 되었다면 우리의 역사학계는 얼마나 다른 모습이 되었을까요? 유시민은 이 슬픈 우리 역사학계에 관한 언급도 빼놓지 않습니다.
 
 
박은식과 신채호 등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이 일제에 맞서 민족의 혼을 지키려고 망명 생활의 고통을 감수하거나 일제의 감옥에서 죽음을 맞이했던 시대에, 그리고 백남운 등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들조차도 조선 사회 정체성론에 대항하여 한반도에 원시 시대부터 봉건제에 이르는 보편적 인류 역사가 존재했음을 주장한 그 시기에, ... 진단 학회는 모든 역사 법칙과 사관을 거부한 채 "과학적인 사료 검증과 개별적 사실의 탐구"에 매달린 것이다. ... 그런데 문제는 ... 이들 '실증 사학'의 창시자와 추종자들이 한국의 역사학계를 거의 독차지해버렸다는 것이다.   (148, 149쪽, <5. 민족사의 발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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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우다, 공식 한국어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지음, 양희승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전통 마을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쓰레기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소위 현대화되었다는 인근 마을] 레에는 쓰레기를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 ... 온갖 종류의 쓰레기가 쌓여가고 있다. 또한 전통적 경제체제에서 가치를 인정받던 지역의 자원들은 점점 무용지물이 되어 가고 있다.   (이 책, 222-233쪽, <13. 중심으로의 이동>에서)
 
 
'오래된 미래'라는 역설적 표현에는 어떤 뜻이 담겨 있는 걸까. 우리가 살아가야 할 바람직한 미래가, 오래된 과거로 치부해 버린 거기서 원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일까. '라다크로부터 배우다'라는 부제의 '라다크'라는 곳은 히말라야 첩첩산중의 어떤 공동체 마을의 이름? 이런 저런 의문이 꼬리를 무는 가운데 내심 기대하며 펼친 책입니다. '현대'를 근본적인 시각으로 다시 바라보는 시도가 멋지다 못해 통렬했습니다. 오랜만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책이었습니다.
 
 
>>>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오래된 미래:라다크로부터 배우다, 양희승(옮김), 중앙북스, 2007.   * 본문 337쪽, 총 364쪽.
>>> (원저) Helena Norberg-Hodge, Ancient Futures:Lessons from Ladakh for a Globalizing World, 1992.
 
 
기억으로, 조한혜정 교수의 「다시 마을이다」를 읽다가 알게 되어 읽은 책입니다. 책은 책을 소개하고, 한 책은 다른 책으로 연결되고, 독서는 또다른 독서를 부릅니다. 독서도 생태계처럼 서로 얽혀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읽게 된 책입니다.
 
 
 
▩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오래된 미래」, '현대'는 과연 바로 가고 있는 걸까. ▩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오래된 미래」. '현대' 혹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망가지기 전과 후의 라다크.
우리가 살아가야 할 바람직한 미래가, 오래된 과거로 치부해 버린 바로 거기에 원형이 있다.
 
 
 
1.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이 책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에 관해서는 인터넷 서점 책 소개 페이지에 잘 정리된 게 있군요.
 
"스웨덴 출신의 언어학자이자 작가, 사회운동가. 본래 스웨덴과 영국의 런던대학교에서 언어학을 수학하던 학생이었던 그녀는, 1970년대 중반 자신의 학위 논문을 위해 인도 북부에 위치한 라다크를 방문했다. 그는 논문을 위해 꾸준히 라다크와 외부를 드나드는 과정에서, 라다크의 문화와 철학에 매료되었다. 그러나 서구 문명의 유입 과정에서 라다크의 전통 문화와 가치관이 붕괴되는 것을 목격하고, 현대 산업사회를 비판하는 강연 활동을 펼치게 된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이 책은 그러한 라다크를 원형과 변모된 모습으로 대비시켜 적고 있습니다. 냉정한 목격담이 아니라 라다크라는 자립적 공동체가 변모하고 붕괴되어 가는 모습에 안타까워하고 슬퍼하는 저자의 감정이 묻어나는 따뜻한 기록입니다.
  
 
  
2. 라다크?
 
이곳의 이름인 '라다크Ladakh'는 '라 다그스La Dags'라는 티베트어에서 파생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뜻은 '산길의 땅'이라고 한다. 히말라야의 그늘에 가려 있는 이곳은 이리저리 얽혀 있는 거대한 산맥들에 둘러 싸인 고원지대에 있다. 이곳에 처음 거주했다고 추정되는 사람들은 북부 인도의 몽족과 길기트의 다드족 이렇게 두 아리안 부족이었다. ...
문화적인 측면을 보면 티베트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래서 라다크는 종종 리틀 티베트라 불리기도 한다.   (51쪽, <1. 리틀 티베트>에서)
 
 
생소한 이름 라다크는 딱 첨 보는 순간 티벳과 히말라야가 떠올랐는데 제 연상이 맞았습니다. 티베트 관련해서 제가 최근 읽은 책이 두 권 있다는 이유로 '리틀 티베트' 라다크는 친근하게 다가왔습니다. (「바로 이 몸에서, 이 생에서」리뷰글 → http://befreepark.tistory.com/684 , 「세 잔의 차」 리뷰 → http://befreepark.tistory.com/575 )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언어학적 관심에서 라다크를 찾았던 것인데 그만 그곳의 전통적인 공동체 생활양식에서 강렬한 인상과 깨우침을 얻습니다. 언어학에서 사회운동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순간입니다. 
 
 
 
3. 라다크에서 지속 가능한 공동체 사회의 원형을 보다
 
라다크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아주 오랜 세월 모든 것을 재활용해 왔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그냥 버려지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열악한 자원만을 가지고 라다크의 농부들은 거의 완벽한 자립을 이룰 수 있었다. ...
내가 라다크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지속가능성' 혹은 '생태학' 같은 개념들은 내게 그렇게 중요한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척박한 자연환경에 놀랍게 적응한 라다크 사람들의 모습에 존경심을 갖게 되었을 뿐 아니라 내가 속해 있던 서구의 생활양식에 대해 재평가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76, 77쪽, <2. 대지와 함께 하는 삶>에서)
 
 
지역이 고립되는 일을 가정할 때 현대 사회는 생존할 수 있을까요. 소위 라면으로 대표되는 공산품 위주의 소비재를 다 소진하고 나면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현대 사회는 '공존'을 외치긴 하지만 현실에선 너무 '의존'적인 관계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지적하고 있는대로 "열악한 자원만을 가지고도 거의 완벽한 자립"을 이뤄내는 것에 우리의 미래가 바탕을 두는 게 바람직합니다. 지역이 고립되어도 생존할 수 있는 마을 공동체를 만드는 것은 그야말로 환상적인 가정인데, 그것이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현실이었죠. 거대 규모의 시스템에 대한 '의존'이 아닌 마을 공동체 속에서의 '공존'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노르베리 호지는 히말라야의 라다크 마을에서 지속 가능한 공동체 사회의 원형을 봅니다.
 
"라다크 사람들에게 있어 최우선이 되는 문제는 '공존'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이웃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돈을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110쪽).
 
 
 
4. 생태적 독립적 전통사회가 철저히 파괴되어 가는 모습을 보다
 
실제 그들[라다크 사람들]이 외부세계로부터 구해야 하는 것은 소금뿐이고 그것은 교역을 통해서 충당[했었다]. 그들이 화폐를 사용하는 경우는 지극히 제한적인데 주로 귀금속이나 장신구를 구하는 때다.
그런데 그러하던 라다크 사람들이 갑자기 국제 화폐경제의 한 부분이 되면서 아득히 먼 곳에 있는 외부세계의 영향력에 의존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기본적인 욕구충족을 위한 영역마저도 예외가 아니다. 그들은 라다크라는 곳이 세상에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내린 결정에 큰 영향을 받게 되었다.   (196-197쪽, <10. 세상을 움직이는 돈의 힘>에서)
 
 
헬레나는 불과 십수년 만에 라다크 마을이 '개발'이란 이름으로 철저히(처절히?) 파괴되어 가는 모습을 목도합니다. 그 구체적인 면면은, 우리의 소위 '전통 마을' 지역 공동체가 파괴되어 가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경제 개발'이 일어나고 '세계 경제'에 편입되고 외부의 결정이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 상황이 빠른 속도로 진행됩니다. 그런 라다크 마을의 모습에서 헬레나는 '현대'의 본질을 들추어 냅니다. '공존'이 아닌 강요된 '의존'을 봅니다. 어느 곳은 '중심'이고 어떤 곳은 '주변'이 되어야 하는 시스템 속에서 허덕이는 우리들의 슬픈 모습을 그려냅니다. 그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제2부 변화에 관하여>를 읽는 내내 그래서 우울했습니다.
 
 
 
5. 깊은 인상을 남긴 지적 둘.
 
[서구사회 사람들은] 너무 움직이지 않아 자신의 몸이 얼마나 힘들어하는지도 잊고 있다. 일하는 시간에는 운동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유 시간에 그것을 보충하려 한다. 어떤 사람은 러시아워에 오염된 도시 공기를 가로질러 운전을 해서 헬스클럽에 가기도 한다. 그리고는 지하실에 앉아 아무 곳으로도 가지 않는 자전거의 페달을 밟아댄다.    (이 책, 189쪽, <9. 화성에서 온 사람들>에서)
 
 
삶과 일이 더 이상 운동이 되지 못하고 몸을 움직이려면 별도의 운동을 (그것도 돈을 들여서!) 해야만 하는 사회를 건강하다 할 수 있을까요. 헬레나의 "아무 곳으로도 가지 않는 자전거의 페달을 밟아댄다"는 말이 현대를 사는 우리의 삶에 관해 핵심을 찌르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쳇바퀴의 햄스터랑 뭐가 다른? ㅜ.ㅜ
 
 
 
... 현대 세계의 생활도구와 기계들이 그 자체로는 시간을 절약하게 해주지만 그것들을 사용하는 가운데 진행되는 새로운 생활은 전체적으로 시간을 빼앗아가버리는 효과를 초래한다 ...   (206쪽, <11. 라마 승려에서 엔지니어로>에서)
 
 
그래, 우리는 세탁기를 돌려 자유시간을 확보하고, 그래, 우리는 자동차로 이동 시간을 단축한다. 그런데, 왜, 우리는 늘 시간이 없는 걸까, 왜! 동네를 가로지르는 개울가에서 빨래를 하고 어디를 가려면 며칠씩 걸어야 했던 그 시절이 왜 지금보다 삶에 더 여유로왔던 걸까, 왜!
 
책을 읽으면서 제 머리 속을 날아다녔던 반문입니다. 이같은 반문에 대해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는 좋은 힌트와 단초가 되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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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
리차드 세넷 지음, 조용 옮김 / 문예출판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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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처드 세넷이 말하는 신자유주의(뉴캐피털리즘)의 인간성 파괴 코드 그리고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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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
리차드 세넷 지음, 조용 옮김 / 문예출판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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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화는 땅에서, 집단적인 봉기를 통해서라기보다는 개인들 사이에서 심리적 필요에 의해 말로 터져 나오는 것이다. ... 나는 우리가 왜 인간적으로 서로를 보살피며 살아야 하는지 그 소중한 이유를 제시해주지 못하는 체제라면 자신의 정통성을 오래 보존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 215쪽, <우리, 그 위험한 대명사>에서)
 
 
신자유주의라는 고상한 말로 표현되고 있는 사회경제 시스템이 우리의 내면과 품성에 미치는 영향은 없을까. ’필연적으로’라고까지 말할 순 없어도 ’현실적으로’ 우리의 내면과 품성을 황폐화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는 건 아닐까. 이 문제를 세계적 석학이라 불리는 리처드 세넷이 들여다 보면 어떤 이야기를 해줄까. 그런 궁금증과 기대를 품고 펼친 책입니다.
 
 
>>> 리처드 세넷,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 조용(옮김), 문예출판사, 2002.  
* 원저 - Richard Sennett, The Corrosion of Character:The Personal Consequences of Work in the New Capitalism, 1998.

리처드 세넷이 2008년에 내놓은 「장인」이란 책의 매력에 푹 빠져 2010년 가을 구입해 읽은 그의 책입니다. 리처드 세넷의 책이 저에게 늘 그러하듯, 독서의 속도는 절반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읽고 싶고, 그래도 읽어야 할 리처드 세넷입니다. 읽고 나면 머리가 꽉 차고 눈이 한결 밝아진 느낌입니다.
  
 
 
▩ 리처드 세넷이 말하는 신자유주의(뉴캐피털리즘)의 인간성 파괴 코드. ▩
 
 
리처드 세넷,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 신자유주의 경제 시스템은 다방면에서
우리의 자아와 인간성에 상처를 낸다. 필연적으로 혹은 현실적으로.
 
 
 
1. 이 책은? 리처드 세넷은?
 
미국의 사회학자이자 영국 노동당의 정책적 멘토인 리처드 세넷이 ’개인’(person)과 ’품성, 인간성’(character)의 관점에서 신자유주의 시스템을 분석한 책입니다. ’새로운 자본주의’라고 적고 있는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일어나고 있는 개인의 변화, 인간성의 변화를 구체적인 사례를 동원하여 적고 있습니다. 물론, 리처드 세넷은 그 사례들 위에서 세넷 특유의 일반화와 추상화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게 리처드 세넷의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책에서 등장하는 구체적인 사례로 "신경제의 유연성 전략을 몸소 겪고 나름대로의 상처와 위안을 보듬고 살아가는 인물들"이 나옵니다. 예컨대, "벤처 회사의 기술 자문역으로 잘 나가다 구조 조정의 희생자가 된 후 조그만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는 리코, 일에 대한 표면적인 이해밖에 제공하지 못하는 기계를 사용하는 제빵사 로드니, 술집을 경영하다 뉴욕의 광고 회사에 들어간 중년의 여성 로즈 등"이 그 인물들입니다. (알라딘 책 소개에서).
 
리처드 세넷의 책을 읽고 작성한 저의 리뷰가 이미 둘 있군요.
- 장인(Craftsman), 리처드 세넷의 대작, 현대문명이 잃어버린 생각하는 손에 관한 연구.
  ( http://befreepark.tistory.com/1257 )
- 불평등사회의 인간존중(리처드 세넷). 복지정책에 결합되어야 할 존중(respect).
  ( http://befreepark.tistory.com/1123 )
  
 
  
2. 옮겨다녀야 하는 단기 직장, 표류하는 자아
 
... 가정만큼은 신경제[=신자본주의, 신자유주의]의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카멜레온적 가치 대신에 의무, 신뢰, 헌신, 목적 등과 같은 가치를 강조해야 한다 ...
... 신경제의 여러 여건상 ... 이곳저곳 이 직장 저 직장으로 표류하는 경험들만 양산되고 있다. ... 단기 자본주의 때문에 그의 인간성, 특히 다른 사람과 유대 관계를 맺으면서 지속 가능한 자아의 의식을 간직하는 인간성의 특징들이 훼손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33쪽, <표류>에서)
 
 
이 직장 저 직장 "표류"한다는 말이 너무 실감나게 다가옵니다. 더 이상 ’이직’이 자발적 선택이 아니죠. 강요된 선택이거나 원치 않는 강요인 ’퇴직’ 그리고 그에 따른 ’재취업’의 반복. 우리 사회에서도 이미 너무나도 익숙한 모습입니다. 리처드 세넷의 말대로, 우리는 그렇게 직장을 단기 표류하면서 동료들과의 장기적인 유대관계를 박탈 당하고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자아를 갖기 어려워지고 장기적이어야 할 인간성의 특징들을 훼손 당합니다. 한때 ’신경제’라 불렸던 ’신자유주의’ 경제 시스템이 빚어내는 슬픈 현실입니다.
 
 
 
3. 자동화 시스템 앞에서 무력해지는 개인
 
이러한 [자동화] 방식으로 작업하게 되자, 제빵사들은 더 이상 실제로 빵을 만드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게다가 제빵 자동화는 기술적으로 완벽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 [제빵 기계가 오류를 일으킬] 때마다 [제빵사]들은 ... 오류를 수정하느라 모니터 앞에 붙어 서서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문제는 그들이 기계를 고치지 못한다는 점이고, 더 중요한 것은 기계가 종종 고장을 일으킬 때 수동으로라도 장치를 [조작]하여 빵을 구워야 함에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프로그램 의존형 [노동자]들은 실제 손으로 훈련하여 얻은 지식이 없었다. 이러한 면에서 보면 그들은 자신들의 작업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93쪽, <이해 불가능성>에서)
 
 
인건비 절감이라는 신자유주의 경제 시스템의 대전제는 필연적으로 자동화를 수반합니다. 자동화는 그것이 멈추는 순간 더 이상 인간에게 편리함을 선사하지 못하고 무력함만 안겨줄 뿐입니다. 리처드 세넷이 위의 예에서 말하고 있는 제빵사의 예처럼, 기계가 멈추는 순간 빵을 만들 수 없는 그런 시스템.
 
러다이트적인 수준의 사고(思考)가 아니라, 자동화 시스템이 개인의 무력감을 초래한다는 지적은 현실을 적절하고도 충분히 설명합니다. 예컨대, 자동화 시스템은, 제빵사가 아니라 기기 조작자만 있어도 빵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제빵사를 무력하게 만듭니다. 또한 숙련 제빵사가 자동화 시스템에 고용되는 경우라 하더라도 기계가 멈추는 경우 빵을 만들 수 없다는 점에서 제빵사를 무력하게 만듭니다.
 
 
 
4. 길어지는 평균 수명, 낮아지는 퇴직 연령
 
현대 직장에서의 나이에 관한 통계적 기초는 고용된 사람들의 짧아지는 근무 시간을 보면 알 수 있다. 미국의 55세에서 64세 남성 중 [노동자]가 1970년에 80퍼센트 정도였던 것이 1990년에는 65퍼센트로 떨어졌다. 영국의 통계도 이와 비슷하며, 프랑스에서는 중년 후반 남성 [노동자]의 수가 거의 75퍼센트에서 40퍼센트를 조금 넘는 정도로 떨어졌고, 독일도 80퍼센트에서 50퍼센트를 조금 웃도는 정도로 하락했다. ... 사회학자 마누엘 카스텔의 예견으로는 "평균 수명은 75세에서 80세 정도가 되지만 실제적 근로 수명은 30년 정도 줄어들지 모른다(즉 24세에서 54세까지)".   (132쪽, <리스크>에서)
 
그야말로 인간을 파괴하는 시스템인 것이죠. 대한민국만 보더라도 생물학적 평균 수명은 길어져서 80세를 바라보는데 지속적인 일자리를 확보할 수 있는 노동 수명은 60세 안쪽으로 들어선지 오랩니다. 위의 통계와 마누엘 카스텔의 지적처럼 일하고 있는 60대는 전세계적으로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것이죠. 신자유주의 경제는 여러 가지 편리함과 편의성을 들어 젊은 세대 노동자를 필요로 하지만 그것은 나이든 세대의 삶을 황폐화시키는 것의 다른 표현이지요. 일하지 않음 그 자체가 삶을 황폐화시키는 동시에 일로써 얻는 경제적 소득이 사라지게 함으로써 삶을 황폐화시킵니다. 유럽적인 사회보장제도가 확립되지 않은 대한민국 같은 곳에서 그것은 더욱 도드라질 수 밖에 없고요.
 
 
 
5. 유럽형 라인강 모델이냐, 미국형 앵글로-아메리칸 모델이냐
 
[미셸 알베르가 구분하는 바] ’앵글로-아메리칸 모델’은 과거보다는 현재의 영국과 미국의 조건에 부합한다. 이 모델에서는 자유 시장 자본주의가 운신할 수 있는 폭이 훨씬 넓다. 라인 강 모델에서 기업체에 대해 특정한 정치적 책임이 강조된다면, 앵글로-아메리칸 모델에서는 ... 정부가 [노동자]들에게 제공하는 안전망이 느슨해진다. ...
앵글로-아메리칸 경영 체제가 노동 조직에서 더욱 변화를 추구하려 하고 그로 인해 약자가 어떤 대가를 치르든지 계속 밀어붙이는 데 비해, 라인 강 체제는 힘없는 시민들이 고통받는다면 변화에 제동을 건다.   (70, 71쪽, <유연성>에서)
 
우리 사회는 리처드 세넷의 표현으로 "약자가 어떤 대가를 치르든지 계속 밀어붙이는" 앵글로-아메리칸 모델에 가깝습니다. 어쩌면 대한민국의 지배적 수구-보수 정치세력은 앵글로-아메리칸 모델을 이상형으로 설정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힘 없는 시민들이 고통을 받는다면 변화에 제동을 거는" 라인강 체제가 인간성 파괴를 막을 수 있는 현실적 대안입니다.
 
이 라인강 체제를 달리 표현하면 ’유러피언 드림’일테죠. ’유러피언 드림’이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도 회자되기 시작한 것이 불과 수 년 전입니다. 승자 독식, 경쟁 만능, 약육강식의 밀림으로 치닫는 극단적 신자유주의 시스템에 대한 반발이자 반작용입니다. 더 이상 미국형 앵글로-아메리칸 모델은 우리의 꿈이 될 수 없는데 자꾸만 이 땅의 수구-보수 지배 정치세력은 그쪽으로 사회를 몰아 가고자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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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아름다움
심상정 지음 / 레디앙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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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촛불에 밀려 한때 국민이 반대하면 대운하 사업도 재검토하고, 의료-물-가스 민영화도 포기하겠다던 이명박 정부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질주를 시작했다. 집권 초반에 저승 문턱까지 갔던 그를 60년 숙성된 보수 세력들이 다시 일으켜 세웠다. ... 이명박 정부는 이제 박정희 시대의 정치적 억압을 앞세웠다. 집회-시위의 자유를 결박하고 언론을 장악하고 시민들의 저항권을 전방위적으로 봉쇄함으로써 '부자들의 전성시대'를 열어 나가고 있다.   (이 책, 265-266쪽, <촛불 다음엔 '종이 짱돌'>에서)
 
 
누군가를 더 잘 알게 되는 책. 그의 생각 뿐 아니라 그의 삶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는 책. 이 책은 바로 그런 책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은 후 심상정은 제게 '철의 여인'으로 다가왔고 동시에 '누님같은' 또는 '누나같은' 존재가 되었다죠. 급기야는 트위터로 팔로우 신청을 하게 된. ^^
 
 
>>> 심상정, 당당한 아름다움, 레디앙, 2008.   * 총 295쪽.
 
 
▩ 심상정, 당당한 아름다움. 서울대생에서 미싱사로, 노동운동가에서 진보정치인으로. ▩ 
 

심상정의 「당당한 아름다움」을 읽은 후 심상정은 내게 '상정 누님'으로 불린다.
 
 
1. 심상정은? 이 책은?
 
심상정은 현재 진보신당에 있습니다. 노회찬과 진보신당을 꾸리고 2008년 4월 18대 국회의원 선거(덕양갑)에 출마했었죠. 그 즈음까지의 심상정의 삶과 운동 그리고 생각을 이 책에 담고 있습니다. 17대 국회에서 희소성 있는 노동운동가 출신 진보 정치인으로 맹활약했고 그 즈음 '심상정'이란 이름이 매체를 타기 시작했죠. 보도 내용들이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임을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심상정이 지나온 개인사를 축과 배경으로 하여 우리의 최근 현대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심상정의 정치적으로 올바른 관점에서 해석하고 평가합니다. 어설픈 정치인 혹은 학자의 어설픈 해석과는 차원이 다른, 일 개인에 매몰되지 않은 한 시대의 기록을 엿볼 수 있는 책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는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심상정을 들을 수 있습니다.
 
   
2. 서울대생에서 미싱사로, 노동자 동맹파업으로
 
부모님의 무관심과 방치 속에 어느 틈엔가 혼자 커 버린 나는 재수 끝에 서울대학교에 들어갔다. 내 평생 부모님을 가장 기쁘게 한 일이었다. (25쪽)
내 나이 스물둘, 서울 명일동의 한 직업훈련소에서 어렵사리 미싱사 자격증을 따던 날 벅찬 마음으로 외쳤던 기억이 새롭다. "전태일 동지, 저도 이제 미싱사가 됐어요!" (35쪽)
'위장 취업'으로 대우어패럴에서 몇 개월 전에 해고되어 수배된 채 활동하고 있던 나는 대우어패럴 간부들과 비밀리에 만나 동맹 파업 준비에 들어갔다. (41쪽)
(이상은 <1. 나의 꿈, 나의 투쟁>에서)
 
80년대 노동운동의 현장에 있었던 그리고 노동운동을 조직했던 심상정을 제대로 알게 된 건 이 책을 읽으면서였습니다. '노동운동가 출신' 정도로 요약되었던 심상정에 대한 수식어 이면의 삶과 꿈과 운동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왜 심상정이 보수 정치인이 될 수 없는지, 왜 보수 정당 정치인과는 차원이 다른지 알 수 있었습니다. 당시 학생운동 동료로 언급된 심재철이나 노동운동 동지로 언급된 김문수가 수구꼴통의 서식지 한나라당에 몸담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심상정이란 사람을 다시 보게 됩니다. 운동이 추억꺼리가 아닌 이상 그것은 현실 속에서 살아움직이는 무엇인가가 되어야할텐데, 그때의 동료와 동지들은 운동을 추억하고 심상정은 여전히 운동의 연장선 위에 있습니다.
 
  
3. 삼성에 대한 견제는 국민의 정당방위다!
 
...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고 그 시장 권력의 정점에 바로 삼성이 있다. 삼성공화국이라는 별칭은 일개 재벌이 국가에 버금가는 권력을 가졌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견제당하지 않는 모든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국민 경제에서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삼성이 잘못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된다. 따라서 삼성에 대한 견제는 우리 국민의 정당방위다.   (88쪽, <'이건희 독대' 제의를 거절하다>에서)
 
굳이 김용철의 「삼성을 생각한다」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http://befreepark.tistory.com/1030 ), 소위 '삼성 장학금'이 정부-국회-언론-법조계를 비롯하여 뭔가 힘 좀 쓴다 하는 곳에 온통 실핏줄처럼 퍼져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 바닥에서 삼성을 향해서 각을 세우는 사람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습니다. 국회의원 재임 중에 내놓는, 심상정의 위와 같은 발언은, 그래서 심상정을 더 돋보이게 합니다. 삼성 노동자들의 죽음에 관한 기사에서 삼성의 마피아적 대처를 접합니다. 심상정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국회에, 정부에, ... 좀 있어준다면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4. 노무현 정부에 대한 생각
 
나는 노동 운동 시절에 노동 인권 변호사 노무현을 알고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아마 자신이 제시한 공약은 실현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든 개혁은 저항에 직면하게 되어 있다. 반발짝의 개혁이라도 그것 때문에 손해를 보는 세력이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수구 보수 세력은 수십 년간 대한민국 정치에서 한 번도 손해를 본 적이 없는, 원하는 것은 일관되게 관철해온 대단한 세력이다. 개혁에 따르는 필연적인 저항을 제압할 만한 힘과 방법을 준비하지 못한 정권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한가지 뿐이다. 권력 유지를 위해 기득권 세력과 결탁하는 것이다. ... 좌절과 변절은 동전의 양면[이다].   (132쪽, <"왜 한나라당보다 노 대통령을 더 미워합니까">에서)
 
리뷰를 쓰면서 다시 보니 "개혁에 따르는 필연적인 저항을 제압할 만한 힘과 방법을 준비하지 못한"이라는 말이 참 정확했다고 생각됩니다.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은 최근에 읽은 책 서울대 조국 교수의 저서 「진보집권플랜」에서도 읽혔습니다( http://befreepark.tistory.com/1277 ). 권력의 장악만큼 중요한 것이 '그 후'일테죠. 심상정의 말대로(조국의 말대로), 노무현 정부의 실패는 '그 후'에 대한 준비가 철저하지 못했던 데에서 말미암은 것일 겁니다. 2012년이 되었든 2017년이 되었든, 진보-개혁 진영의 재집권을 이뤄내는 것이 일차적 과제이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이 심상정이 말하는 바와 같은 "개혁에 따르는 필연적인 저항을 제압할 만한 힘과 방법을 준비"는 것이죠.
 
  
5. 서민의 소망, 심상정의 꿈
 
국가는 부유해졌고 한국 기업의 실적은 좋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천문학적으로 '부'가 늘고, 나라와 기업이 호황을 누리는데, 어째서 주변을 돌아보면, 서민들의 못 살겠다는 한숨과 절망만 가득한 것입니까? 욕심이 과해서입니까?
이 땅의 서민들은 부자가 되지 못해서 고통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큰 평수의 고급 아파트와 값비싼 수입 명품을 갖지 못해서 절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열심히 일하면 그저 집 걱정 하지 않고 아이들 교육시키고 건강하게 살 수 있기를 희망할 뿐입니다.
(173쪽, <가난한 사람을 위한 민주주의 시대를 열겠습니다>에서)
 
2007년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 경선 출마 선언문의 일부입니다. 이 선언문을 내놓을 때 심상정은 노무현 정부를 향하고 있지만 이 선언문의 내용은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도 고스란히 유효합니다. 서민의 소망은 이뤄진 바 없고 심상정의 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보수 정치인들이라면 정치적 지지자들의 입을 통해서 들을 이야기를, 진보 정치인은 이렇게 직접 자신의 말로 내놓습니다. 심상정이 몸 담고 있는 정당이 대세가 되고, 심상정이 의회권력이든 정부권력이든 분점 혹은 독점하는 일을 꿈꿔 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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