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 이야기 거꾸로 읽는 책 25
유시민 지음 / 푸른나무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어떤 문서나 기록도 과거의 사실을 있었던 그대로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것은 그것을 만든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사실만을 전해 주며, 흔히 그가 희망하거나 상상했던 것을 사실인 양 그럴듯하게 보여 준다. 따라서 어떤 역사가가 자기의 가치관을 철저히 배제한 채 오직 사료에 의해 입증할 수 있는 사실만으로 역사를 쓴다면 그는 결국 "과거의 지배층이 후세 역사가가 그렇게 써주기를 바랐던" 그런 역사를 쓰게 될 것이다.   (이 책, 26-27쪽, <1. 믿어서는 안 될 역사>에서)
 
 
누군가 예전엔 어떤 생각이었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 있죠. 그 책을 읽고 난 후 독자에게 저자는 여전히 한결같은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고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으로 비쳐질 수도 있습니다. 유시민이 1994년 세상에 내놓은 책을 꺼냈습니다. 최근 들어, 그가 쓴 책이나 그에 관해 쓴 책을 좀 읽었더니 예전의 유시민이 궁금해졌습니다. 출간되고 2~3년 정도 후에 구입한 책인데 책꽂이에 고이 꽂혀서 제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유시민, 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 이야기, 한샘출판사, 1994.   * 총 246쪽.
 
 
출판 후 그간 대략 십수년 동안 이 책은 출판사와 판형을 바꾸었군요. 저는 처음 출판된 한샘출판사 초판 버전으로 읽었는데(3쇄본), 그 사이에 표지는 두번 바뀐 게 확인되는군요. 출판사는 아마도 한번 바뀐 듯합니다. 책의 내용에는 변화가 없는 것으로 판단되어 제가 가지고 있던 한샘출판사 초판 버전으로 읽었습니다.
 
 
 
     ▩ 유시민, 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 이야기 - 역사,역사가,역사학을 비판적으로 사고하자! ▩


( 유시민이 1994년에 세상에 내놓은 '역사에 관한 생각'을 담은 책. 그러니까 유시민이 35세 무렵에 쓴 책.
  그의 최근 저서들을 읽은 독자라면 젊은 시절의 유시민이 주는 산뜻함(?)을 맛볼 수 있는 책.  )
 
 
 
1. 유시민이 쓴 역사에 관한 책?
 
유시민이 1994년에 세상에 내놓은 '역사에 관한 생각'을 담은 책입니다. 그러니까, 1959년생으로 확인되는 유시민이 35세 무렵에 쓴 책입니다. 2011년 현재 그는 이미 오십을 넘은 나이가 되어 있습니다. 그의 최근 저서들을 읽은 독자라면 젊은 시절의 유시민이 주는 산뜻함(?)을 맛볼 수 있는 책입니다.
 
이 책은 역사학 개론으로 말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대한민국의 통사는 더더욱 아니며, 한국 현대사라고 부르기도 좀 그런, 분류하기가 쉽지 않은 책입니다. 역사적 사실들을 동원하여 역사에 관한 생각, 역사가와 역사학에 대한 견해를 담고 있으니까요. 제목 그대로 (유시민 자신이) '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 이야기'를 쓰고 독자에게 '내 머리로 역사를 바라보고 생각하자'고 말하고 있는 책이라면 딱 맞을 듯 합니다. 역사, 역사학, 역사가에 관한 유시민의 생각에 개인적으로 공감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2. 역사와 역사가에 관한 바른 생각.
 
역사가는 과거의 모든 사실을 상대할 수 없으며 사실에 관한 기록을 다 모은다고 해서 역사가 되는 것도 아니다. 역사가는 과거의 무수한 사실 가운데서 의미 있는 것만을 선택하여 역사를 서술한다. 역사가가 만들어 내는 것은 역사적 사실 그 자체나 사실의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 사실들 사시의 연속된 인과 관계이다. 역사가는 자기가 관찰한 수많은 사실의 산더미에서 쓸데없는 것은 버리고 의미 있는 것만을 골라 합리적인 인과 관계로 이어 준다. 그리고 그렇게 이어진 인과 관계의 사슬이 바로 역사이다.   (180쪽, <6. 역사에서의 우연과 필연>에서)
 
 
역사는 역사가에 의해 재구성되는 거겠죠. 거기에는 일차적으로 역사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개입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의 산더미'에서 역사가는 취사선택을 합니다. 역사를 내 머리로 생각해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동시에 역사를 비판적으로 살펴야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3. 역사 교과서에 관한 생각.
 
여러 가지 역사책 가운데서 제일 못난 것이 교과서로 쓰는 역사책이다. 국가 권력이 역사 교과서를 미리 심사하고 검열하기 때문이다. 권력자들은 자기네 힘을 이용하여 마음에 들지 않는 역사책을 읽지 못하게 하거나 수거해서 없애 버리고 마음에 드는 역사책은 널리 보급하고 소중히 보관하여 후세에까지 전한다.   (33쪽, <1. 믿어서는 안 될 역사>에서)
 
 
그것이 정사로 기록되는 사서든, 학교에서 학습되기 위해 쓰여지는 역사책이든, 국가 권력이 '심사하고 검열'하고 공적 선택을 하는 순간, 그 사서나 역사책은 유시민의 말대로 '제일 못난 역사책'이 됩니다. 우리의 역사 교과서에 블랙홀처럼 사라지고 구멍 뚫린 곳이 존재하는 것도 국가 권력을 장악한 정치세력의 입김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지지리 못난 역사책!
 
 
  
4. 마르크스 역사철학의 이해.
 
[마르크스 역사철학에 따르면] 소수의 사람이 사회의 생산 수단을 독점하는 계급 사회에는 필연적으로 계급 사이의 적대적 대립이 생긴다. 기존의 사회 체제 아래서 혜택을 누리는 계급은 낡은 생산 관계와 사회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려고 한다. 반대의 처지에 있는 계급은 그것을 변화시키려고 한다. 적대적인 이해 관계를 가진 계급들은 서로 투쟁하면서도 통일되어 있다. ... 이해 관계를 달리하는 여러 계급 사이의 투쟁, 이것이 바로 사회 내부에 존재하는 대립되는 요소 사이의 투쟁이며 역사의 발전을 이끌어 온 원동력인 것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라는 마르크스의 명제는 이것을 가리킨다.   (103-104쪽, <4. 계급 투쟁의 역사>에서)
 
 
인류 역사에 대한 거시적 관점, 역사 발전에 대한 명료한 해석이 빛나는 마르크스(주의) 역사철학에 대해서도 이 책에선 적지 않은 분량을 할애하여 적고 있는데요. 그것이 보수적 정치세력과 역사학파로부터 어떤 비판을 받았든,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으로 그것의 입지가 얼마나 좁아졌든, 마르크스 역사철학이 지닌 역사에 대한 설명력을 상실하는 것은 아닙니다. 역사 뿐만 아니라 역사를 보는 관점도 발전해온 것이겠죠.
 
 
 
5. 옛 고전의 인용에서 유시민의 목소리가 들려.
 
" ... 제일 현명한 위정자는 백성의 마음에 따라 다스리고, 차선의 위정자는 이익을 미끼로 [백성을] 이끌며, 그 다음의 위정자는 도덕으로 백성을 설교하고, 또 그 다음의 위정자는 형벌로 백성을 길들이며, 최하의 위정자는 백성과 다툰다."   (51쪽, <2. 신화에서 역사로>에서, 『열전』 「화식열전」인용)
 
 
책에 옛 고전의 인용이 심심찮게 나옵니다. 모든 인용은 저자의 말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죠. 유시민은 고전의 경구를 빌어 역사에 관해 그리고 역사적 사실에 관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고전 인용이 갖는 매력은 날카롭다, 정확하다, 들어맞는다는 말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치 유시민이 말하고 있는 것 같은 인용들입니다.
 
 
 
6. 우리의 슬픈 역사와 역사학계.
 
우리 현대사의 슬픈 출발점, 미군정인 것이죠. 반공주의에 매몰된 것이나 민족반역자들이 득세하게 된 것이나 민족주의 세력을 제도적으로 배척-소외시킨 것이나 미군정이 그 출발점이니까요. 그야말로 '슬픈 역사'의 시작입니다. 유시민은 당연히 이에 관해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향한 몸부림으로 점철된 우리 현대사에 비극의 씨앗을 뿌린 것은 해방 후 3년간 남한을 지배한 미군정이다. 그들은 자기 나라의 이익과 반공주의에만 집착하여 우리 민족의 자주성을 억압하고 민족 반역자와 모리배들이 신생 대한민국을 지배하게 함으로써 적어도 한국의 현대사에 관한 한 역사의 심판을 입에 올릴 수 없게 만들었다.   (223쪽, <8. 그래도 믿어야 할 역사>에서)
 
 
 
그리고 또 슬픈 것으로 '우리의 역사학계'를 빼놓을 수 없죠. 일본 제국주의 치하에서 '중립적이고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역사학을 한다며 현실적으로 일제의 이익에 복무한 '진단학회' 류의 실증사학이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역사학계를 장악했으니까요. 민족주의 사학자들이 주류가 되었다면 우리의 역사학계는 얼마나 다른 모습이 되었을까요? 유시민은 이 슬픈 우리 역사학계에 관한 언급도 빼놓지 않습니다.
 
 
박은식과 신채호 등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이 일제에 맞서 민족의 혼을 지키려고 망명 생활의 고통을 감수하거나 일제의 감옥에서 죽음을 맞이했던 시대에, 그리고 백남운 등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들조차도 조선 사회 정체성론에 대항하여 한반도에 원시 시대부터 봉건제에 이르는 보편적 인류 역사가 존재했음을 주장한 그 시기에, ... 진단 학회는 모든 역사 법칙과 사관을 거부한 채 "과학적인 사료 검증과 개별적 사실의 탐구"에 매달린 것이다. ... 그런데 문제는 ... 이들 '실증 사학'의 창시자와 추종자들이 한국의 역사학계를 거의 독차지해버렸다는 것이다.   (148, 149쪽, <5. 민족사의 발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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