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
리차드 세넷 지음, 조용 옮김 / 문예출판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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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화는 땅에서, 집단적인 봉기를 통해서라기보다는 개인들 사이에서 심리적 필요에 의해 말로 터져 나오는 것이다. ... 나는 우리가 왜 인간적으로 서로를 보살피며 살아야 하는지 그 소중한 이유를 제시해주지 못하는 체제라면 자신의 정통성을 오래 보존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 215쪽, <우리, 그 위험한 대명사>에서)
 
 
신자유주의라는 고상한 말로 표현되고 있는 사회경제 시스템이 우리의 내면과 품성에 미치는 영향은 없을까. ’필연적으로’라고까지 말할 순 없어도 ’현실적으로’ 우리의 내면과 품성을 황폐화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는 건 아닐까. 이 문제를 세계적 석학이라 불리는 리처드 세넷이 들여다 보면 어떤 이야기를 해줄까. 그런 궁금증과 기대를 품고 펼친 책입니다.
 
 
>>> 리처드 세넷,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 조용(옮김), 문예출판사, 2002.  
* 원저 - Richard Sennett, The Corrosion of Character:The Personal Consequences of Work in the New Capitalism, 1998.

리처드 세넷이 2008년에 내놓은 「장인」이란 책의 매력에 푹 빠져 2010년 가을 구입해 읽은 그의 책입니다. 리처드 세넷의 책이 저에게 늘 그러하듯, 독서의 속도는 절반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읽고 싶고, 그래도 읽어야 할 리처드 세넷입니다. 읽고 나면 머리가 꽉 차고 눈이 한결 밝아진 느낌입니다.
  
 
 
▩ 리처드 세넷이 말하는 신자유주의(뉴캐피털리즘)의 인간성 파괴 코드. ▩
 
 
리처드 세넷,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 신자유주의 경제 시스템은 다방면에서
우리의 자아와 인간성에 상처를 낸다. 필연적으로 혹은 현실적으로.
 
 
 
1. 이 책은? 리처드 세넷은?
 
미국의 사회학자이자 영국 노동당의 정책적 멘토인 리처드 세넷이 ’개인’(person)과 ’품성, 인간성’(character)의 관점에서 신자유주의 시스템을 분석한 책입니다. ’새로운 자본주의’라고 적고 있는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일어나고 있는 개인의 변화, 인간성의 변화를 구체적인 사례를 동원하여 적고 있습니다. 물론, 리처드 세넷은 그 사례들 위에서 세넷 특유의 일반화와 추상화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게 리처드 세넷의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책에서 등장하는 구체적인 사례로 "신경제의 유연성 전략을 몸소 겪고 나름대로의 상처와 위안을 보듬고 살아가는 인물들"이 나옵니다. 예컨대, "벤처 회사의 기술 자문역으로 잘 나가다 구조 조정의 희생자가 된 후 조그만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는 리코, 일에 대한 표면적인 이해밖에 제공하지 못하는 기계를 사용하는 제빵사 로드니, 술집을 경영하다 뉴욕의 광고 회사에 들어간 중년의 여성 로즈 등"이 그 인물들입니다. (알라딘 책 소개에서).
 
리처드 세넷의 책을 읽고 작성한 저의 리뷰가 이미 둘 있군요.
- 장인(Craftsman), 리처드 세넷의 대작, 현대문명이 잃어버린 생각하는 손에 관한 연구.
  ( http://befreepark.tistory.com/1257 )
- 불평등사회의 인간존중(리처드 세넷). 복지정책에 결합되어야 할 존중(respect).
  ( http://befreepark.tistory.com/1123 )
  
 
  
2. 옮겨다녀야 하는 단기 직장, 표류하는 자아
 
... 가정만큼은 신경제[=신자본주의, 신자유주의]의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카멜레온적 가치 대신에 의무, 신뢰, 헌신, 목적 등과 같은 가치를 강조해야 한다 ...
... 신경제의 여러 여건상 ... 이곳저곳 이 직장 저 직장으로 표류하는 경험들만 양산되고 있다. ... 단기 자본주의 때문에 그의 인간성, 특히 다른 사람과 유대 관계를 맺으면서 지속 가능한 자아의 의식을 간직하는 인간성의 특징들이 훼손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33쪽, <표류>에서)
 
 
이 직장 저 직장 "표류"한다는 말이 너무 실감나게 다가옵니다. 더 이상 ’이직’이 자발적 선택이 아니죠. 강요된 선택이거나 원치 않는 강요인 ’퇴직’ 그리고 그에 따른 ’재취업’의 반복. 우리 사회에서도 이미 너무나도 익숙한 모습입니다. 리처드 세넷의 말대로, 우리는 그렇게 직장을 단기 표류하면서 동료들과의 장기적인 유대관계를 박탈 당하고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자아를 갖기 어려워지고 장기적이어야 할 인간성의 특징들을 훼손 당합니다. 한때 ’신경제’라 불렸던 ’신자유주의’ 경제 시스템이 빚어내는 슬픈 현실입니다.
 
 
 
3. 자동화 시스템 앞에서 무력해지는 개인
 
이러한 [자동화] 방식으로 작업하게 되자, 제빵사들은 더 이상 실제로 빵을 만드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게다가 제빵 자동화는 기술적으로 완벽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 [제빵 기계가 오류를 일으킬] 때마다 [제빵사]들은 ... 오류를 수정하느라 모니터 앞에 붙어 서서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문제는 그들이 기계를 고치지 못한다는 점이고, 더 중요한 것은 기계가 종종 고장을 일으킬 때 수동으로라도 장치를 [조작]하여 빵을 구워야 함에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프로그램 의존형 [노동자]들은 실제 손으로 훈련하여 얻은 지식이 없었다. 이러한 면에서 보면 그들은 자신들의 작업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93쪽, <이해 불가능성>에서)
 
 
인건비 절감이라는 신자유주의 경제 시스템의 대전제는 필연적으로 자동화를 수반합니다. 자동화는 그것이 멈추는 순간 더 이상 인간에게 편리함을 선사하지 못하고 무력함만 안겨줄 뿐입니다. 리처드 세넷이 위의 예에서 말하고 있는 제빵사의 예처럼, 기계가 멈추는 순간 빵을 만들 수 없는 그런 시스템.
 
러다이트적인 수준의 사고(思考)가 아니라, 자동화 시스템이 개인의 무력감을 초래한다는 지적은 현실을 적절하고도 충분히 설명합니다. 예컨대, 자동화 시스템은, 제빵사가 아니라 기기 조작자만 있어도 빵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제빵사를 무력하게 만듭니다. 또한 숙련 제빵사가 자동화 시스템에 고용되는 경우라 하더라도 기계가 멈추는 경우 빵을 만들 수 없다는 점에서 제빵사를 무력하게 만듭니다.
 
 
 
4. 길어지는 평균 수명, 낮아지는 퇴직 연령
 
현대 직장에서의 나이에 관한 통계적 기초는 고용된 사람들의 짧아지는 근무 시간을 보면 알 수 있다. 미국의 55세에서 64세 남성 중 [노동자]가 1970년에 80퍼센트 정도였던 것이 1990년에는 65퍼센트로 떨어졌다. 영국의 통계도 이와 비슷하며, 프랑스에서는 중년 후반 남성 [노동자]의 수가 거의 75퍼센트에서 40퍼센트를 조금 넘는 정도로 떨어졌고, 독일도 80퍼센트에서 50퍼센트를 조금 웃도는 정도로 하락했다. ... 사회학자 마누엘 카스텔의 예견으로는 "평균 수명은 75세에서 80세 정도가 되지만 실제적 근로 수명은 30년 정도 줄어들지 모른다(즉 24세에서 54세까지)".   (132쪽, <리스크>에서)
 
그야말로 인간을 파괴하는 시스템인 것이죠. 대한민국만 보더라도 생물학적 평균 수명은 길어져서 80세를 바라보는데 지속적인 일자리를 확보할 수 있는 노동 수명은 60세 안쪽으로 들어선지 오랩니다. 위의 통계와 마누엘 카스텔의 지적처럼 일하고 있는 60대는 전세계적으로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것이죠. 신자유주의 경제는 여러 가지 편리함과 편의성을 들어 젊은 세대 노동자를 필요로 하지만 그것은 나이든 세대의 삶을 황폐화시키는 것의 다른 표현이지요. 일하지 않음 그 자체가 삶을 황폐화시키는 동시에 일로써 얻는 경제적 소득이 사라지게 함으로써 삶을 황폐화시킵니다. 유럽적인 사회보장제도가 확립되지 않은 대한민국 같은 곳에서 그것은 더욱 도드라질 수 밖에 없고요.
 
 
 
5. 유럽형 라인강 모델이냐, 미국형 앵글로-아메리칸 모델이냐
 
[미셸 알베르가 구분하는 바] ’앵글로-아메리칸 모델’은 과거보다는 현재의 영국과 미국의 조건에 부합한다. 이 모델에서는 자유 시장 자본주의가 운신할 수 있는 폭이 훨씬 넓다. 라인 강 모델에서 기업체에 대해 특정한 정치적 책임이 강조된다면, 앵글로-아메리칸 모델에서는 ... 정부가 [노동자]들에게 제공하는 안전망이 느슨해진다. ...
앵글로-아메리칸 경영 체제가 노동 조직에서 더욱 변화를 추구하려 하고 그로 인해 약자가 어떤 대가를 치르든지 계속 밀어붙이는 데 비해, 라인 강 체제는 힘없는 시민들이 고통받는다면 변화에 제동을 건다.   (70, 71쪽, <유연성>에서)
 
우리 사회는 리처드 세넷의 표현으로 "약자가 어떤 대가를 치르든지 계속 밀어붙이는" 앵글로-아메리칸 모델에 가깝습니다. 어쩌면 대한민국의 지배적 수구-보수 정치세력은 앵글로-아메리칸 모델을 이상형으로 설정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힘 없는 시민들이 고통을 받는다면 변화에 제동을 거는" 라인강 체제가 인간성 파괴를 막을 수 있는 현실적 대안입니다.
 
이 라인강 체제를 달리 표현하면 ’유러피언 드림’일테죠. ’유러피언 드림’이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도 회자되기 시작한 것이 불과 수 년 전입니다. 승자 독식, 경쟁 만능, 약육강식의 밀림으로 치닫는 극단적 신자유주의 시스템에 대한 반발이자 반작용입니다. 더 이상 미국형 앵글로-아메리칸 모델은 우리의 꿈이 될 수 없는데 자꾸만 이 땅의 수구-보수 지배 정치세력은 그쪽으로 사회를 몰아 가고자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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