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복 - 누릴 복을 아껴라
정민 지음 / 김영사 / 201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더디게 읽어서 좋았던 책





오랜 시간 간직해온 글이 지닌 가치를 발굴해온 정민 교수
옛 문헌 속에서 발견한 '앎'의 가치를 공유하는, "석복"


내 또래 학생들이라면, 멋모르던 시절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로 한시의 고즈넉한 매력을 어렴풋 느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쓰는 말과 달리 툭툭 토막 나 있는 것 같은 한시에서 생각의 이음새를 발견해주던 정민 선생님의 글은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도 "좋았다"라는 느낌으로 남아있다.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신 이야기를 듣던 내가 이젠 정민 교수님이 말하는 이야기를 읽다니. 《석복》을 읽기 전에 벌써 오묘해졌다.


옛 글이 세상에 잊히지 않도록, 세상이 옛 글이 지닌 소중함을 잊지 않도록 끊임없이 글로 소통했던 정민 교수님이 2018년에 전하고픈 이야기가 담긴 《석복》은 낯설지만 궁금증을 자아내는 책이었다. 책에는 찬선 사자성어가 가득 들어 있다.


석복겸공. 어후반고. 소지유모. 첨제원건. 무소유의. 치이란이...


단어만 봐서는 좀처럼 어떤 뜻이 담겨있는지 예측이 되지 않았다. 역시, 한시 이야기 때처럼 정민 교수님의 해설이 필요했다. 간결하게 하나의 단어로 담은 네 개의 한자어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 그 궁금증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옛 글의 맥락과 이야기에 닿게 된다. 우리나라 역사뿐만 아니라 동양의 역사 곳곳을 자유자재로 종횡무진하는 정민 교수님의 지(知)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그 시간 속 수많은 지식인들의 이야기가 짧은 에피소드 속에 함축하다니,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저자는 그 시간의 간격을 글로 압축한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우리와 한참 다르다고 생각했던, 옛사람들이 마음에 품었던 생각과 이야기는 우리와 참 비슷하단 걸 깨닫게 된다. 일상에서 마주하게 되는 일들, 만나는 사람들, 공부하며 마주한 고민들, 살을 부딪치며 살아가는 삶에서 필연적인 인간관계와 자기 자신을 성찰해야 하는 것까지. 지금 이 시대의 고민과 생각들과 너무도 깊이 닿아있는 화두들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한자가 중간중간 섞여있는 글과 글 사이에 녹인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옛 글 속에 지금이 보이는 기묘한 마주침과 마주할 수 있다. 이렇게 한시의 대중화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저자의 생각은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이 시대를 예리하게 관찰할 수 있는 시각과, 보이는 것을 깊이 사유할 수 있는 사유를 제공해준다.



인생의 지혜가 담긴 글에서 얻은 깨우침


조선시대 문인들의 글을 읽고 시대에 필요한 메시지를 포착해낸 저자는 다양한 동양 고전에서 이 시대에 필요한 이야기를 간결하게 정리했다. 저자가 풀어놓은 글들은 사자성어로 한번 압축을 거쳐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 뒤, 자신의 글로 다시 한번 풀어낸다. 하지만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처럼 촘촘히 생각을 담기 보다, 군데군데 독자들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을 할 수 있는 틈을 만들어준다.





《채근담》에서는 "총욕에 놀라지 않고 뜰 앞에서 피고 지는 꽃들을 한가롭게 본다. 가고 머묾에 뜻이 없어 하늘 밖의 구름이 말렸다 펴졌다 하는 것에 눈길이 따라간다"라고 했다. 사람들은 잠시 총애를 받으면 금세 으스대고 잠깐 욕을 보게 되면 분을 못 참고 파르르 떤다. 경솔함으로 쌓아온 공을 허무느니, 입 다문 만근의 무게를 지님이 마땅하다.


마음 간수 장에 나오는 "총욕불경(寵辱不驚)"을 두고 생각해보아도, 이 메시지가 단지 옛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다. 인생을 조금만 멀리서 들여다보면 일희일비의 연속이다.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하지만, 쉽지 않은 걸 저자는 "총욕불경"이란 단어 속에 담아냈다. 마음을 고요하게 간수하는 것이 마음에 치미는 감정 앞에서는 쉽지 않지만, 조금만 한발 물러서서 들여다보면 내 몸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내 마음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은 때라 그런지 마음을 지키고 감싸주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책이 정말 많다. 저자의 글은 마치 마음의 곳간을 든든하게 지키는 빗장처럼 단단하고 묵직한 감촉이 전해진다.


 




또 다른 예로 마음 간수 편의 조존사망(操存舍亡)은 좀 더 본질적인 마음 간수에 대해 이야기한다.

 

《대학》에서는 "마음이 나가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모른다"고 했다. 정자가 "나가버린 마음을 붙들고 와서 되풀이해 몸 안에 들여놓아야 한다"고 말한 것은 이 때문이다.


줄임말 같은 조존사망은 붙들어야 남고, 놓으면 놓치는 마음의 속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누구나 잡념을 품을 수 있지만, 그 잡념에게 잠시의 틈을 주는 것과 마음을 빼앗겨버리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마음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마음을 지키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잃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담긴듯싶다. 마음을 지키는 것은 슬픔에 마음이 잠겼을 때뿐만 아니라, 기쁨에 마음이 두둥실 떠올랐을 때도 똑같이 지켜야 한다. 마음을 붙들어 간직하는 것이 어려운 건 비단 우리들만의 일은 아니었다고 저자는 심심한 위안을 더한다. 옛 선비들 역시 마음을 지키는 것을 참 어려워했으며 이를 위해 끊임없이 공부를 했다. '끊임없이 경계하고 삼가며 두려워하는 마음가짐(계신공구 戒愼恐懼)'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그들의 거쳐온 시간을 짧은 문장으로 살피다 보면, 마음에 대한 나의 태도를 돌아보게 된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마음에 품고 있는 《석복》 속 단어 하나가 있다.

 





글을 읽고 그 사람이 보여야 좋은 글이다. 글 너머로 작동하고 있는 한 가지 물건이 있어야, 어떤 글을 써도 그 사람의 빛깔이 나온다. 수사가 뛰어나고 주장이 제아무리 훌륭해도 이 한 가지 물건이 없이는 그저 그런 글이 되고 만다. 어찌해야 이 물건을 얻을 수 있나? 우리가 공부를 계속해야 하는 이유다.


내가 쓴 글에는 어떤 자취가 남아 있을까. 《석복》의 문유삼등(文有三等)의 글은 남다른 여운을 주었다. 나의 글은 어디에 속하고 있는가. 나만 감동하고, 읽는 이에 대한 배려는 잃어버리지 않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중등과 하등 그 사이 어딘가에 놓인 글은 아닐까 생각이 깊어졌다. 그 고민을 안고 한 페이지를 넘기니 "글에는 꼭 이래야 한다는 일정한 법칙이란 없다. 다만 그 상황에 꼭 맞게 쓰면 된다."라고 한다. 상황에 맞는 글이라니 더 어렵다. 저자가 내 상각을 읽은 건지 "그게 참 쉽지가 않다."라는 한 마디를 더한다. 결국 글이란 생각의 힘을 길러야 하며, 그때야 글에 힘이 붙는다고 한다.


《석복》 은 내가 자주 읽지 않는 글들이었다. 그렇기에 참으로 낯설었고, 다른 책들보다 더디게 읽었다. 그래서 한 호흡으로 길게 읽은 책이 아니었다. 천천히 읽었고, 어떨 때는 한편의 글만을 읽기도 했었다. 그렇게 내가 평소에 읽는 속도보다 느리게 읽다 보니, 그 느린 속도를 따라붙는 생각들이 있었다. 결국 책을 다 읽고 나니 천천히 내가 읽어온 짧은 글과 글 사이에 채워진 나의 생각이 보였다.


많은 책들이 아름다운 꽃송이와 같다. 저자의 생각이 저마다 자신의 빛깔을 내며 아름다운 결과물을 피워낸다. 그 아름다움은 들여다보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한눈에 보여서 꽃과 같은 책을 많이 읽어왔는지도 모른다. 《석복》 은 꽃보다 '뿌리' 같은 책이었다. 뿌리는 좀처럼 들여다보기 힘들다. 하지만 단단히 식물을 바치며 눈에 보이지 않는 흙 속 틈을 메운다. 그래서 단순히 좋은 이야기를 전하는 책이 아니라, 생각의 바탕을 깊고 넓게 만들어주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