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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유물에 있다 - 고고학자, 시공을 넘어 인연을 발굴하는 사람들 ㅣ 아우름 27
강인욱 지음 / 샘터사 / 2017년 12월
평점 :
시간과 인연을 잇는,
고고학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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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자들에게는 화려한 보물보다는
한자리에서 살아온 수천 년 인간의 역사가 더 소중하다.
난 역사를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한다. 어렸을 때부터 역사에 대한 자료를 살펴보는 것을 좋아했다. 위인 전기도 좋아했지만, 세계 박물관 도록을 모아 놓은 듯한 시리즈 책을 이따금씩 살펴보는 걸 좋아했다. 이집트 미라를 사실적으로 찍은 사진들이 있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면 초등학교 1학년이 읽기에 적절한 책은 아니었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 역사 탐구 수업을 방과 후 학교로 들었는데 "역사 스페셜"을 보고 난 뒤에 역사 교과서 외의 역사를 살펴보는 수업이었다. 선생님이 좋았고, 수업은 더 좋았기 때문에 열심히 들었던 기억이 난다. 대학에 진학할 때도 "사학과"를 가고 싶어 했을 정도니. 나의 역사 사랑은 미취학 아동 때부터 10대 시절 내내 이어졌다. 그 사랑 덕에 가졌던 꿈이 "고고학자"였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라 금방이 되고 싶었던 꿈이 되었지만. 지금도 아직 알아내지 못한 시간을 구체화하는 고고학자란 직업을 동경하고 있다.
그러다 우연히 『진실은 유물에 있다』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동경했던 고고학자란 직업을, 매력적인 고고학이란 학문을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고고학의 목적은
화려한 보물 찾기가 아니라
과거 사람들의 삶을 밝혀내는 것이다.
고고학이란 흙무더기에서 보물을 발견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내가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유물이란, 빛나는 것들이라 이런 생각이 자리했는지도 모른다. 『진실은 유물에 있다』를 읽으며 고고학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 고고학은 "다양한 시간과 공간에 살던 사람들의 모습을 유물을 통해 밝히는 학문"이었다. 이렇게 생각을 바꿀 수 있었던 것은 저자 강인욱씨의 '고고학'에 대한 깊은 애정이 깃든 글들 덕분이었다.
고고학의 목적은 황금이 아니며, 고고학은 과거의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밝히는 인문학이다. 거대한 건축물의 화려함이 아니라 건물을 만들고 살았던 사람들을 공부한다. 자그마한 유물에서 과거와의 인연을 찾고, 또 그 속에서 과거의 사람을 찾아내야 한다.
역사를 이해하는 데 유물만큼 좋은 재료는 없다. 우리는 역사를 '글'로 이해한다. 하지만 역사 기록, 글은 사실 중심으로 되기 어렵다. 진실을 오로지 담았다고 믿고 싶지만 이는 바람일 뿐이다. 역사를 아무리 생생히 기록하더라도, 인간만의 삶의 숨결, 짧은 순간 관통하는 복합적인 감정,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까지 다 담기는 어렵다. 글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생생한 삶의 이야기가 담긴 것이 바로 유물이다. 또 동시에 역사의 바탕이 되는 것 역시 유물이다. 그래서 고고학자들은 우리는 무심결에 지나칠 수 있는 공간에 서서 천천히 역사를 찾아보고 기록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땅은 그 이전에 누군가가 살았던 땅이었고 시대마다 공간에 인간은 삶의 자취를 남겼다. 그 자취가 짧게는 몇십 년 길게는 몇 만년의 시간을 지나 분절된 시간을 이어주었다. 역사의 진정한 복원은 우리의 소망일 뿐, 불가능한 꿈이다. 하지만 역사를 기록한 글과 글 유물과 유물 사이에 놓인 시간을 조금씩 채워나갈 수 있는 건 유물과 아직 발견되지 않은 기록이다. 이를 발견할 사람, 그 시간을 이어주는 사람들이 바로 고고학자다. 이렇게 고고학과 고고학자를 바라보니, 조금 딱딱해 보이는 학자 이미지에서 흙냄새 묻어나는 친근한 이웃 같은 느낌이 든다.
고고학자가 무덤에서 발굴하는 것은 대개 말라비틀어진 뼛조각, 그리고 토기 몇 편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무덤에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던 과거 사람의 슬픔, 그리고 사랑이 깃들어 있다. 수천 년간 땅속에 묻혀 있던 유물 속에서 그 사랑의 흔적을 밝혀낸다는 점에서 고고학자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실제 고고학자들의 마음엔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 기여하고자 하는 원대한 포부가 담겨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아주 작은 것, 아주 일상적인 삶의 조각들을 이어 맞추는데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무덤에서 돈을 바란 도굴꾼의 마음이 아니라 소중한 사람들을 잃은 사람들의 아픔을 먼저 생각하고 있다.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던, 옛사람들의 마음이 유물에 어떻게 깃들어 있는지 찾아낸다. 일상 모습은 어떤지 살펴본다. 작은 도구에서, 그들의 일상이 어떤 모습이었고 그 일상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살펴본다. 고고학자들에게는 화려한 보물보다는 한자리에서 살아온 수천 년 인간의 역사가 더 소중하다는 저자의 말이 문장으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글로 다가온다.
이 책을 덮으며 생각했다. "만약 고고학자가 황금을 발굴하길 기대한다면, 그건 도굴꾼과 다름없지 않을까." 또 화려한 유물만을 기대했던 내가 조금은 부끄러웠다. 『진실은 유물에 있다』는 인간이라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마음과 공감대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고고학자라는 걸 여러 글들을 통해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마음으로 찾을 수 있는 게 역사적 진실이란 생각까지 전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