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잘 풀리는 철학적 사고술 - 니체가 알려주는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법 아우름 28
시라토리 하루히코 지음, 박재현 옮김 / 샘터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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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은 올바른 속도로 읽을 때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나의 문장은 모두 천천히 읽혀야 한다.
by. 비트겐슈타인 - 시라토리 하루히코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어떤 주장을 하는 상대와 계속 관계를 이어가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친절, 즉 사랑이 없다면 상대의 주장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지식을 얻어 상대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철학을 어렵게 느끼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 유려한 문장이 인생과 동떨어져 보여서 그런 게 아닐까. 어렵게 배배 꼬인듯한 문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곤 한다. 역사적인 철학 책을 많이 읽은 건 아니지만, 전공 수업으로 근현대 철학자들의 책을 몇 번 읽으며, 난 졸음과의 사투, 무슨 의미인지 생각하느라 사투를 벌이곤 했다. 하지만 치열하고 힘겨운 읽기만은 아니었다. 글을 읽다가 문득 눈에 들어온 문장 하나가 마음에 사르르 번져나갈 때면,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인생이 잘 풀리는 철학적 사고술》의 저자 시라토리 하루히코는 철학을 공부하며 내가 이따금씩 느끼던 감동을 좀 더 많이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는 철학 책을 읽다가 맞이하는 기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곧 잔잔한 밤의 바다를 조용히 나아가는 보트의 노 끝에서 야광충이 빛을 내듯 머릿속의 수많은 별들이 왁자지껄 종알거리기 시작했다.
 
언어가 자신의 머릿속을 울리는 느낌을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하다니, 그가 만난 비트겐슈타인, 니체는 어떤 모습일지. 그가 철학 책을 읽고 생각하며 얻은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왠지 그가 경험한 세계를 공유하다 보면, 나만의 감동과 생각이 전해질 것 같았다.

 


인생이란 도망치는 것이 아니다.
비탄하는 것도 아니다.
강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현실의 생각에 물리적인 언어를 결코 빠뜨릴 수 없다"고 지적한 철학자는 20세기 중반에 활약한 프랑스 철학자 메를로-퐁티이다. 그는 "언어로 이야기할 때 그 사람의 생각이나 주장이 비로소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말했다.

 

철학에 대한 2차 서적은 다양한 종류가 있다. 철학 책 원전 못지않게 어려운 책도 있고 혹은 아주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책도 있다. 《인생이 잘 풀리는 철학적 사고술》는 여느 철학에 대한 2차 서적과 다르다. 오히려 에세이에 가깝다. 저자는 철학자의 말을 옮겨 해석해주기 보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무언가에 가로막힌 듯 답답한 순간에 읽으면 좋을 이야기를 한다. 철학자의 말을 우리의 인생에 밀어 넣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 중에 잠깐 쉬어가듯 볼 수 있는 말로 들려준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언어"에 대한 부분이었다. 어떻게 말을 하고, 어떻게 언어화하는지에 따라 그 존재가 결정된다는 이야기는, 때로 함부로 말하는 나의 언어습관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물론, 직접적으로 말에 대해 경고하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머리 안을 맴돌던 생각이 언어화되는 순간, 글이 되는 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너무 자주 있는 일이라 놓쳤던 부분을 상기시켜 주었다. 하나의 언어로 글로 완성하는 순간은 마음에 담고 있는 때와 머리를 맴돌던 때와 다른 사고가 이루어진다는 말을 지금 서평을 쓰면서 다시금 느낀다. 책을 읽을 때의 나와 책을 읽고 난 뒤 이를 정리할 때 나의 생각은 비슷하지만, 분명 다르다. 예를 들어 타인과 대화를 나누는 것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 속에 누군가 대화를 나누는 것에 대한 의미를 설명한 글을 읽고 수많은 생각을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을 글로 옮기면 또 다른 생각을 만날 수 있다. 생각 속에 저장된 문장을 쓰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에도 계속 생각한 결과물이다. 어쩌면 가장 나의 생각과 가까운 것과 마주할 수 있다.


"인생은 고정관념을 배우고 익히는 시간이 아니다. 내 방식으로 살아가는 시간이고 장소이다."라는 저자의 말에는, '나'가 '타인' 혹은 '환경'에 의해 함몰될 수 있는 요즘 필요한 책임을 알 수 있다. 물론, 고통도 받아들이고 이를 감내해 자신을 윤택하게 만들라는 이야기는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또 좀처럼 자신의 가치관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다. 각자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이 있고, 누군가에게 좌지우지되지 않고 스스로 깊이 생각하고, 타인과 소통하며 내린 삶의 순간이라면 저자는 충분히 이를 존중해줄 것이다.

 

언어라는 것은 그저 되는대로 문법에 맞춰 사용해서는 아름답지도 어떤 힘도 가지지 못한다. 즉, 사람의 귀를 간질이기는 해도 사람의 마음에는 들어가지 못한다.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 그 사람에게 어떤 것을 생각하게끔 하고, 그 사람의 인생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는 언어는. 다듬고 또 다듬어진 사고, 혹은 심오한 인생 경험이나 깊은 고독과 사랑을 이해하는 사람의 붓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인생이 잘 풀리는 철학적 사고술》은 철학을 정리한 여느 책보다 가볍고 쉽다. 우리가 어쩌면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어서 가볍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지만, 그 알고 있는 사실을 마음에 오래 간직하지 못하는 이유는 적절한 말로 정리된 글을 만나지 못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시라토리 하루히코의 글은 그가 마음에 담은 글과 그 글을 자신의 생각으로 정리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글은 그에게 감동을 주거나, 삶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 순 있지만 나의 인생을 바꾸는 글이 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의 글에는 인생을 조금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 깃들어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자신'이 기준이 되어, 인생을 바라보라는 따뜻한 격려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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