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 감정 오작동 사회에서 나를 지키는 실천 인문학
오찬호 지음 / 블랙피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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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를 보고,
"나도 괜찮지 않습니다"라고 읽었다.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를 읽고 떠오른 단어가 있다. '프로불편러'다. 이 단어에 담긴 뉘앙스와 맥락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이보다 더 적절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다. " '프로불편러(pro+불편+er)'는 사이버 공간에서 '불편하다'는 말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동조를 이끌어내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_ 네이버 국어사전 (오픈사전) "

 

처음 오찬오 교수의 책을 읽으면, 내가 프로불편러가 된 기분일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문장 하나하나가 어찌나 불편하던지. 그의 말에 토를 달고 또 달았었다. "꼭 그렇게 생각해야 하나?"라는 토를 말이다. 하지만 이내, 그의 논리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를 처음 읽고서, 내 생각과 머리를 관통했던 그 울림이 기억난다. 내가 얼마나 다른 사람에게 차별적이었는지. 나를 지킨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해치는 줄도 몰랐다는 사실에 부끄럽고 또 부끄러웠다.


이미 책을 통해 그를 만나서일까.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를 읽고서 "아, 우리 사회에 필요한 진짜 프로불편러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가 말하는 불편함을 불만으로 오해해서는 안된다. 감정적 호소로 토로하는 불만과 다른 "불편함"을 말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가 말하는 불편함은 "사회적·역사적으로 통용된 옳음의 기준을 준수하고, 당연히 받아들여져야 할 이타성이 공존하는 불편함"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불편함은 무엇일까.

 

 

Part 1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만

 

 
첫 장에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걸 하나로 요약한다면, "염치 잃은 우리들"이라고 할 수 있다.


층간 소음 앞에 내세운 이기심, 페미니즘 앞에 날선 논리들, 무뎌진 차별에 대한 인식에 대해 그는 조목조목 이야기한다. 염치 잃은 사회의 단면을 개인적 차원에서 사회적 차원에서 설명한다. 단지 한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도 않고, 사회의 문제로 뭉뚱그려 설명하지 않는다. 누구나 한 번쯤 해보았을 법한 불쾌한 상황이 어떻게 차별로 이어졌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그 논리에 담긴 모순에 대해 문제 제기한다.


어떤 행위에 '선'이라는 정당성을 부여하는 순간, 나 혼자서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끊임없이 의미 작용을 하며 나아가게 된다. 그것이 실제로 옳든 옳지 않든 말이다. 옳지 않았던 일이 옳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으며 개선된다면 참 좋겠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옳지 않은 일을 옳은 일이라 믿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게 문제다. 그리고 그 문제에 거기에 '무뎌진 차별 감수성'은 부채질하며 이를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차별 감수성이 무뎌진 데, 난 혐오가 만연해진 것도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아무 생각 없이 하는 좀비 놀이에 대해 문제 제기에서, 현재 우리가 일상 속에서 혐오 단어가 만연하게 사용되는 점이 떠올랐다. 한때 "(아이유, 쿨) 병, (급식, 진지) 충"이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일상 대화 속에 비난과 비아냥 거리는 단어가 만연해 그 단어의 수준이 점점 더 거칠어졌었다. 난 이 단어들과 그 단어를 사용하는 분위기가 몹시 불편했다. "논리는 결핍되어 있고, 합당한 이유도 없이, 심지어 웃으며 타인을 비난하는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고, 설사 그 이유가 있다 해도 동의하고 싶지도 알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를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 그렇게 하면, 난 "진지충"이 되기에.

나만 이런 불편함을 느꼈을까. 저자만 이런 불편함을 느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사안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누구나 불편함을 느꼈고, 부끄러움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되는 분위기'라서. 진지충으로 낙인찍히기 싫어서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부끄러움은 인간만이 느끼는 감정이며, 염치를 잃은 우리에게 염치를 되찾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그리고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 자신의 아집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말한다.
물론 그 과정은 매우 힘들다.
하지만 그 힘듦은 환희와 함께이기에 마냥 힘든 것만은 아니란 이야기도 저자는 빼놓지 않고 있다.

 

 

Part 2 그게 다 강박인 줄도 모르고

물론 스스로를 헐뜯는 자기혐오의 부정이 있다면 개선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외부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지하여 부당한 것에 대한 '정당한' 감정을 가지는 사람들이 밑도 끝도 없이 긍정부터 하라는 이들의 분위기에 눌려 부끄러움을 느껴야 하는 건 하나도 괜찮지 않은 사회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그럼, 항상 염치없이 사는 것일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부끄러움을 느낀다. "한국인들에게는 '뜨거운 에너지'가 많다고 한다. 그런데 뜨거워야 할 때는 모른다면 그 에너지가 무슨 소용인가."라는 저자의 말처럼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려야 할 때를 모르고, 엉뚱한 때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한다. 문제는 그 부끄러움이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이다. 내가 부끄러움을 느끼는 게, 내가 괜찮기 위한 노력이 우리를 괜찮지 않게 만든다.

'혼자'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시선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혼자'가 우리 사회에서 주목받는 배경을 함께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문제 제기에 공감했다.

"혼자는 중심으로부터 '배제된 홀로'가 아니라 사회적 관습을 잠시라도 거부하는 '적극적 자아'다. 이들은 평범한 사람들하고 함께하지 못하는 소극적 인물이 아니라 평범을 가장한 일상의 폭력을 연속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단절한다."

맥락의 중요성에 대해 저자는 강조한다. 왜 우리가 부끄러워하는지, 그 부끄러움을 긍정의 논리로 포장하는 것이 왜 위험한지. 누군가 성공을 하고, 가난할 수밖에 없었던 맥락, 양성평등이 실현되기 힘든 사회적 맥락, 누군가 혼자서 있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맥락. 그 맥락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맥락은 일부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개천에서 용나는'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 앞에 당면한 현실이라는 맥락이다.

 

Part 3 감정 오작동 사회, 나와 너를 성장시키는 법

 

 

Part 2까지 읽고 나면, 이런 의문이 든다.

 

So What?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해결할 수 있는지 저자에게 묻고 싶어진다. 풀 수 없는 고르디아스의 매듭과 같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말이다.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끊는 방법으로 풀은 알렉산더 대왕 같은 답을 오찬오 교수는 이야기한다.

"개인이 먼저 주체로 서야 타인과의 경계를 인식하여 이를 존중할 수 있고, 책임질 한계가 명확해지며, 집단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에게 최선인 전략을 사고할 수 있다"

여기서 개인이 주체로 선다는 건 무엇일까.
가장 먼저 개인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기준, 정체성을 정의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나만이 할 수 있는, 나만의 정체성"이다. 사회 시류에 휘둘리는 유행 같은 생각이 아니라, 나만의 가치가 담긴 생각 말이다. 내가 나로 존재할 때, 내가 나만의 가치를 결정할 수 있을 때 그때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을 분위기에 따라 하지 않고, 내가 결정하기 위해서 '개인이 주체'로 서는 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용기 내길, 다른 길을 향해 발을 내딛길 저자는 적극 권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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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를 보고, '나도 괜찮지 않습니다.'라고 이야기하는 진짜 프로불편러가 많아진다면. 우리 사회가 진짜 괜찮아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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