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의 일주일
메이브 빈치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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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치키 스타는, 지극히 소박한 곳이지만 자신의 의견으로는 아주 평화로운 치유의 장소라고 말했다. 그녀 자신도 뉴욕에서 일할 때 해마다 그리고 돌아와 휴가를 보냈다고. 걷고 또 걸으며 넓은 바다를 바라보았고, 그러고 나서 미국으로 돌아가면 항상 뭐든 다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손님도 그런 느낌을 받기 바란다고 말했다.

 

마음에 몽글몽글 온기가 사르르 퍼지는 느낌.
기분 좋은 두근거림이 온몸을 간질거리는 느낌.

 

《그 겨울의 일주일》을 읽고 난 뒤 내게 남긴 여운이었다. 오랜만에 가슴이 깊숙이 행복해지는 책을 만났다. 이렇게 책을 읽어본 게 얼마 만인지. 좋은 책을 만났다는 강한 확신이 드는 책이었다. "온갖 사연을 가진 모든 사람들의 치유 공간 호텔 스톤하우스, 이곳의 다음 손님은 바로 당신입니다!"라는 타이틀이 과장이 아님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 겨울의 일주일》는 깊이 고민하며 읽어야 하는 책도 아니었고, 휘리릭 읽는 가벼운 책도 아니었다. 문장은 슥슥 쉽게 읽히고, 마음의 온도를 따뜻하게 올리는 소설이었다. 《그 겨울의 일주일》는 티저 북으로 처음 만났다. 3명의 인물 이야기를 읽었을 때는 지금과 같은 감동을 받지 못했다. 다시 차분히 치기, 리거, 올라의 이야기를 읽고 일주일간 스톤하우스에 머문 손님의 이야기를 읽었을 때 지금과 같은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고로, 혹시 티저 북을 읽고 2% 아쉬움을 느낀 분이 있으시다면, 《그 겨울의 일주일》을 완독하길 강력 추천한다. 나 역시 티저 북을 읽었을 때, 감동을 받기 보다 호기심이 생긴 독자 중 한 명이었다.

《그 겨울의 일주일》을 읽고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왜 이 소설을 읽고 이토록 행복할까?


《그 겨울의 일주일》의 무엇이 날 이렇게 행복하게 만들었을까. 한 권의 책을 읽고 좋았던 이유를 적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지금 받은 감정에 충실하게 그 이유를 적어보려 한다.


옮긴이는 메이브 빈치의 유작인 《그 겨울의 일주일》을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


"그녀의 유작이 된 이 소설은, 그래선지 그녀가 지금껏 살면서 경험한 모든 일과 그녀가 만나온 모든 사람과 그 순간순간의 모든 비밀이 압축된 하나의 집약체라 해도 될 듯하다. 그녀의 눈길이 가닿은 자리마다 한 포기 풀이 자라고 한 송이 꽃이 피어날 것처럼 그녀는 모든 만남을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한 장면이나 인물을 스케치하고 디테일을 넣어 만들어낸 풍경이 하나둘 모여 더 큰 풍경, 점점 더 큰 풍경이 되는 것이다. 반대로, 인간 존재라는 큰 풍겨, 세상살이라는 큰 풍경에서 한 조각 한 조각 떼어내면 그녀가 그래는 장면 하나하나, 인물 하나하나가 커다랗게 부각되어 나타날 것이다."
_ 옮긴이의 말 중에 《그 겨울의 일주일》 464쪽


정연희 선생님은 그림처럼 이 소설을 묘사했다. 원어로, 이를 다시 한국어로 읽어서일까. 참 딱 맞는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난 메이브 빈치가 《그 겨울의 일주일》의 인물들을 그린 종이가 셀로판지가 아닐까 싶었다. 나에게 《그 겨울의 일주일》은 사물과 빛을 투과하는 투명한 색비닐지에 메이브 빈치가 그린 그림 같았다.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을 하얀 도화지에 대해 세밀하게 그려 모든 것을 알 수 있게 그린 것이 아니라 셀로판지에 네임펜으로 투박한 선으로 그리기도 하고 중요한 부분은 섬세하게 그린 느낌. 그래서 그 그림은 한 장 한 장 살펴보았을 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그림과 겹쳐서 볼 때 완성되는 것 같은 느낌. 그런 느낌을 주었다.
치키, 리거, 올라 세 사람의 삶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위니에서 프리다까지)의 이야기로 옮겨질 때,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각 장의 서두는 인물들이 어떻게 삶을 살아왔는지 이야기한다. 사랑하는 남자를 따라가기도 하고, 정육점에서 고기를 훔치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망설이다가, 여행 일정이 어그러져서, 누군가에게 배신을 당하고... 이유는 달랐고, 삶의 모습도 제각각이었지만, 그들은 모두 스톤하우스에 있었다. 12명의 '지금' 그리고 앞으로 1주일 정도의 시간은 스톤하우스에서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각 인물은 자신의 셀로판지 속 주인공이었지만, 때론 다른 사람의 그림 속으로 들어갔다. 배경으로 들어가기도 했고, 결정적인 한 마디를 건네는 조언가가 되기도 했고, 상처를 주는 사람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게 《그 겨울의 일주일》의 이야기를 완성하고 있었다.
어떤 한 인물 때문에 좋았던 게 아니었다. 모든 이야기가 모였을 때, 《그 겨울의 일주일》을 다 읽었을 때 그 순간이 참 좋았다. 왜인지 생각해보았다. 그건, 모든 사람의 이야기가 겹쳐져 따뜻한 빛을 비추는 순간에 마음에 온기가 탁 들어와서, 그래서였다. 마치 셀로판지 한 장 한 장에 손전등을 비추었을 때 다른 색 빛을 내지만 모두를 겹쳤을 때 하얀 빛을 내는 것처럼, 모든 이야기가 모였을 때 새하얀 빛이 마음을 비춘 것 같았다. 그리고 아마 그 빛이 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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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 겨울의 일주일》의 주인공을 굳이 꼽으라고 한다면, '치키'가 아닐까. 모든 인물을 스톤하우스로 모여들게 하고, 그들의 마음을 오가는 이야기를 건네고 있으니까 말이다. 치키의 마음이 단단해지는 걸 가장 먼저 읽어서일까. 그녀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 속에 배경으로, 조언해주는 사람으로, 침묵으로... 다양한 관계에서 그녀만의 존재감을 드러낼 때면 괜스레 마음이 놓였다. 마치 오랜 시간 언덕을 지켜온 '스톤하우스'와 그 바다를 보고 치키가 느낀 편안함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은 그런 편안함이 느껴졌다.


"설명해야겠지요. 아버지는 늘 분명하고 정중했으니까 저도 그렇게 할 거예요. 아버지의 꿈에 대해서는 어떤 비난도 하지 않을 거예요. 다만 그 꿈이 제 꿈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려고요." 그의 목소리는 자신감에 넘쳤다.
치키는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치키는 많이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상대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공감이 주는 위로를 알고 있었다. 아버지의 꿈과 자신의 꿈 사이에서. 성공이라고 믿고 싶은 것과 진짜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한 사람 사이에서 고민하던 안데르스에게 그녀는 몇 마디를 해주었다. 그리고 안데르스 스스로 행복한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한 뒤, 그의 결정에 끄덕임으로 지지를 표했다.
빙긋 짓는 미소 한 번이,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여주는 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새삼 작은 행동이 주는 감동의 소중함을 되새겼다.

 

"그 능력을 뭐라고 부르던 간에요. 미래에 대해 뭐든 모호하고 희망적인 이야기를 해서 사람들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세요. 사람들이 별점에서 기대하는 것도 그런 거예요. 그렇게 하면 그 능력도 길이 들어서 해롭지 않게 될 거예요. 제가 지금 보기로는, 그런 환시 때문에 죄의식에 빠져 계신 것 같아요.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만들려고 해보셔야 해요. 사람들한테 생각이 떠오르는 것처럼, 그것도 그냥 생각이에요. 그뿐이에요."


때로는 겁을 먹고 두려워하는 한 사람의 고민을 가볍게 만들어주는 마법을 부리기도 했다. 그런 사람이 있지 않은가. 나에게 정말 태산처럼 커다란 고민이었는데. 그 사람 앞에만 가면, 별거 아닌 작은 게 되는 신기한 경험.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의 크기를 줄여주는 사람. 치키는 프리다에게 그런 사람이었다. 그리고 프리다 역시, 리키가 가지고 있는 비밀을 작게 만들어주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그 간단한 마법을 알려주는 책이기도 했다.)


모두 잘 될 것이다.


빈 말이 아니라, 정말 다 읽고 나면 모두가 잘 될 것 같은 이야기였다. 마음이 따뜻해져서 힘을 얻는 느낌이다. (비슷한 소설을 찾아보자면,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주는 느낌과 비슷하다.) 크리스마스가 오기 전에 벌어진 일들이지만.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훌쩍 지난 1월의 혹은 2월의 어느 일주일 동안 읽어도 행복해질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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